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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Dec 14. 2020

2. 입국하자마자, 인도 폭동사건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외교부에서 도착한 문자 중에는 이런 게 와 있었다.



찬디가르는 워크캠프 지역까지 최대한 항공편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델리-찬디가르 구간의 국내선을 끊었던 그 지역이었다. 워크캠프를 취소하지 않았더라면 델리로 입국한 뒤 다음날 바로 찬디가르로 국내선을 타야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폭동으로 인해 인도 정부가 찬디가르로 오가는 교통편을 모두 통제했고 인터넷 망도 차단시켰다는 소식이 들렸다. 만약 워크캠프를 강행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더 환장할 노릇은 폭동의 이유였다. 인도 종교지도자 싱 라힘(우리나라도 따지면 사이비 종교 지도자 느낌이다)의 ‘여신도 성폭력 범죄’가 유죄로 판결 나자 그의 추종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생각한 별천지는 이런 종류의 별천지는 아니었는데.


인도라는 나라를 오기까지 지인들의 숱한 만류와 경고가 있었다. 나는 인도를 다녀온 여성 여행 작가의 여러 책을 읽으며 분석하고 직접 다녀온 여성 여행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인도 여행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 뭐 가령 저녁 7시 이후에는 바깥에 돌아다니지 않고, 남이 주는 음식을 함부로 먹거나 함부로 남을 따라가지 않는 등 여행지에서의 안전에 대한 기본 수칙을 지키면 인도가 여행하지 못할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인 지금도 동의하는 바이긴 하다)


이 위험하다고 널리 알려진 나라에 발을 딛기까지, 가족과 지인들을 안심시키며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하니, 속된 말로 현타가 왔다. 내가 못 올 곳에 정말 왔구나. 부끄러웠고 무서웠고 비로소 인도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우선 밤 비행기로 도착했기 때문에 날이 밝을 때까지 공항 노숙을 하기로 했다. 인도 공항은 무장한 가드(경찰 및 군인)가 있고 들어오려면 가드에게 항공권을 보여줘야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그래서 잡상인이나 노숙자 혹은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다. 오히려 공항을 이용하려는 사람조차 공항을 한번 나가면 쉽게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한다.


공항 노숙 중에 만난 일본인 친구 아이요시다가 그려준 우리

공항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잠은 오지 않고 숱한 생각만 번져갔다. 내 판단이 어리석었을까. 워크캠프 취소에 이어 당장 귀국을 해야 할까. 아님 아직 폭동이 번지지 않은 남인도로 국내선을 끊어서 바로 갈까. 수없는 고민이 이어졌다. 차가운 공항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


인도의 빠하르간지는 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 거리로, 여행자 숙소와 음식점들이 밀집해있어 인도에 도착하면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발을 딛게 되는 곳이다. 이전보다 공항에서 빠하르 간지로 가는 길이 많이 순탄해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내 이야기는 아니다.


날이 밝아진 게 느껴졌다. 공항의 창으로 바깥의 사정을 살폈다. 평화롭고 조용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크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공항 바닥에 깔고 누웠던 침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두려웠지만 무섭다고 이대로 도망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바깥 상황이 어떤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수도, 델리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진짜 아니다 싶음 바로 남인도로 토끼면 되는 거야!’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공항 밖으로 나오니 소요 사태로 시끄럽지도 않았고 인도인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듯했다. 마치 남북한 문제가 국제 사회나 외국인 사이에서는 호들갑에 난리인데, 정작 우리는 그 일이 일상 속에 자리 잡아 무감각해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알려진 표면과 그 안의 실상은 다른 이면적인 모습. 어쩌면 그것은 인도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델리 공항을 빠져나왔다.


델리 국제공항에서 표지판을 따라 공항철도로 연결되는 통로를 찾았다. 음침했다. 시설은 깔끔하고 새것이었으나 지하였고 인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폭동사건으로 겁을 잔뜩 먹은 탓에 걸음이 빨라지고 몸이 움츠려졌다. 그래 봤자 남들이 보기엔 앞뒤로 배낭을 메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외국인 여행자였다.


개찰구를 통과해 공항 철도 승강장에 들어서니 그제야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다들 깔끔하게 차려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거나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안심이 됐다. 게다가 탑승한 공항 철도 내부는 까무러칠 정도로 너무나 깨끗했다. 이건 내가 생각한 인도가 아닌데?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진짜 인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인도 종교지도자 성폭행 유죄에 추종자 폭동…200여 명 사상 - 머니투데이 (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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