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디 Dec 14. 2020

4. 호된 입국 신고식, 델리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인도에 입국한 지 수일이 지났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인 동행을 구하지 못하였다. 인도가 익숙해지고 안전한 곳이라는 판단이 들기 전까지 혼자서는 다니지 말고 동행을 구해서 여행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빠간은 한국인 여행자는커녕 서양 여행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방콕의 카오산로드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활기차고 떠들썩한 여행자 거리를 상상했는데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반대로 빠간은 정말 사람의 혼을 쏙 빼놓았다. 어마 무시한 자동차 경적소리에 귀가 먹먹했고 길에선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라 온 신경을 좌우와 앞뒤에 쓰느냐 길 하나 맘 편히 걷지 못했다. 정말이지 길을 건널 때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커다란 용기를 내서 절묘한 타이밍에 딱! 아니 다른 인도인들이 건널 때 얼른 눈치껏 따라붙어 나도 건너야 한다. 절대 혼자서는 그 타이밍 못 만든다.


길을 걸을 때도, 릭샤를 탈 때도, 물건을 구경할 때도 조금이라도 한눈팔면 코 베어 갈까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정말 멀쩡한 사람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 정도의 귀를 때리는 경적과 소와 차가 뒤섞인 정신없는 혼잡함. 숙소에서 밖을 나올 때마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그런 곳.



알고 보니 델리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은 도시였다. 여행자들이 많아 사기꾼들이 많고 더럽고, 쉼 없이 릭샤꾼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통에 혼을 쏙 빼놓았다. 내가 델리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5일이나 머물렀다고 하니 여행에서 만났던 누군가가 손을 내젓고 혀를 내둘렀다. 유독 다른 곳보다 혼잡하고 정신없는 탓에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출입국 때문에 하루 많으면 이틀밖에 있지 않는 곳이라며 자기는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 난다고!



빠간에 있는 한식당 와우 카페에서 끼니를 때웠다. 한식당인데 인도인 리키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 여행사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하다고 했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의 맛은 역시나 한식을 먹고 있지만 한식을 먹고 있지 않은 듯한 맛이었다. 맹숭맹숭한 그런 맛.


종종 한식당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밥도 먹고 그들에게 상비약도 건네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하다 보면 다들 아쉽게도 하루 이틀 뒤에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입국한 8월 말은 한두 달 동안 여행한 사람들이 여름 방학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시기였다.


며칠이 지나도 함께 여행할 사람을 찾지 못해 의기소침해졌다. 와우 카페를 오가던 중 근처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가 커피를 마셨다. 내가 한국을 떠나서 이게 뭐 하는 건지…. 현실 자각도 잠시, 겨우 숨 돌릴 곳을 찾은 사람처럼 맥이 탁 풀렸다. 델리에서 그곳만큼은 주변의 소음이나 혼잡한 풍경이 보이지 않았고 은은한 조명과 음악 아래 착 가라앉아 있었다. 외딴섬처럼 조용했다.



카페에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후 사장님께 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네요? 카페에서도 나 외에 다른 손님이 없었다. 사장님은 예전에는 이 빠하르간지가 한국인들이 80% 일 정도로 바글바글 가득 찼었는데 요새는 많이 줄었다고 했다. 여행에도 유행이 있다고 한다. 한참 10년 전만 하더라도 인도 여행 붐이 일어나서 한국 사람들이 많았는데 예전 같지 않다고. 지금은 다 방학 때 여행 온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기라 더 없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후 인도 여행 중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내가 여태껏 여행했던 모든 국가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그럼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는 걸까?)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얘기를 해주셨는데, 여행지의 유행 패턴이 일본인이 왔다간 다음, 한국인에게 붐이 일어나고, 그다음엔 중국인이 몰린다고 했다. 중국인이 몰리면 이제 그 여행지는 여행지로서는 끝난 것인데, 그 말은 즉, 순수한 본연의 지역의 색깔과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몰려오는 여행자들 때문에) 때 묻을 대로 때 묻은 여행지가 된다는 말씀이셨다. 그럴듯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일본에도 인도가 유행했을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보다 훨씬 더 몇십 년 전이었고, 지금 일본인은 인도에서 게 눈 감춘 듯 자취를 감췄다. 지금도 한국에 서서히 알려지고 인기 있는 여행지는 이미 서양 배낭여행족이나 일본 사람들이 한차례 휩쓸고 간 곳이 많았다.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에게 여행 붐이 일어난 것이 반해,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이제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경제가 어려워진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요즘 일본 청년 세대들은 멀리 나가서 어마어마한 것을 보겠다고 큰돈을 쓰는 대신, 집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데 시간과 돈을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소확행과 자취방 꾸미기 등이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데 점점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듯도 하다. 여행에 사족을 못 쓰는 여행 중독자면서, 한편으로는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과 영화를 보는 일이 제일 좋은 집순이인 사람으로서 미래의 우리나라의 청년 세대들이 모험심과 소박한 모습이 공존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3. 인도인을 조심하라! 악명의 빠하르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