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그렇게 오늘도 혼자 빠간에서 끼니와 시간을 때우다 보니 벌써 저녁 7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인도에서 내 나름의 안전 수칙을 지키며 여행하리라 다짐했었기 때문에 저녁 7시까지는 숙소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인도인들의 인상도 험상 궃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방 안에 아무도 없잖아?!
내 숙소는 한 방에 4개의 이 층 침대가 있는 여성전용 도미토리였다. 사실 이 도미토리 숙소는 빠간에서 거리가 좀 있었다. 단 5분만 걸어도 혼이 쏙 나갈 지경인 빠간에서 무려 15분이나 떨어진 곳이었고 가는 길은 어두운 터널이 있어 터널 밑의 노숙자들과 껄렁껄렁 해 보이는 무리들 때문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짐을 푼 이유는 도저히 어둡고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인도의 싱글룸에서 혼자 묵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도록 한 명도 보이지 않다니 이상하다. 내가 시간을 잘못 봤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시계는 분명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미토리에 몇 사람 머물지 않나 보다 라는 나 혼자의 결론을 내고 샤워 도구를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혼자 여유롭게 한참 흥얼거리면서 샤워를 하고 나왔지만 여전히 방 안에는 아무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때 복도에 숙소 매니저로 보이는 한 인도 남성이 지나갔다. 갑자기 이 방에 나 외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섬뜩해졌다. 공포감에 휩싸인 나는 핸드폰을 가지고 숙소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에는 투숙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소파에 등이 아닌 어깨를 기대며 비스듬히 앉아 할일 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인도에 와서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는 건가. 인도 여행 카페에도 오픈 단톡방에도 동행에 대한 글을 달리지 않았다. 인도에 간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며 호기롭게 떠났는데 정작 인도에 있는 내 모습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못했다. 댓글이 달리지 않는 인터넷 카페의 창을 반쯤 풀린 눈으로 계속 새로고침을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Are you Korean?"
놀랍게도 내게 말을 건 여자는 일본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바로 인도인이었다!
그녀는 혹시 내게 309호에 묵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뜻밖에도 내가 사용하는 침대가 원래 자기 침대라고 했다. 알고 보니 숙소 매니저가 자꾸 새로 온 사람에게 자신의 침대 번호를 알려준 탓에 그녀는 이틀 내내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나는 놀라운 마음에 내가 너의 침대를 사용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침대에 한국어 가이드북이 올려져 있는 걸 보았고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한국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아니 한국어와 카톡까지 알고 있는 인도인이 있을 줄이야! 더 놀라운 건 이 인도 친구 루다가 한국말을 너무나도 유창하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루다는 내가 본 외국인 중 가장 한국말을 잘 구사하고, 잘 쓰는 외국인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헐', '쩔어', '개쩔어'까지 알고 그 말을 사용했다. 이국적인 외모에서 그런 한국어의 은어들이 남발되자 나는 매우 당황스러우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루다는 현재 남인도의 벵갈루루라는 곳에서 사는데, 원래 고향이었던 델리를 둘러보기 위해 잠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침대가 겹치는 우연으로 말문을 트게 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통점이 굉장히 많았다. 우선 동갑이라는 사실과 집 안의 하나뿐인 귀한 외동딸인 것, 그리고 연애를 잘 못하고...(생략)
낯을 가리는 나와 달리 루다는 나를 대하는데 스스럼이 없었고, 처음에는 그 점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 덕에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로비에서 루다의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잠든 와중에도 침대에 달린 조명에 의지해 서로의 나라에 대한 궁금증으로 지칠 줄 모르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렇게 인도의 거리에는 많은 소들이 다니는지, 인도 사람들은 영어를 어떻게 다 잘하는지, 인도에는 신이 얼마나 많은지.
인도 현지인에게 너무나도 유창한 한국말로 이리 명쾌하게 대답을 들을 수 있다니! 나는 그 사실에 감동한 나머지 정작 대답의 내용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더 감격스럽게도 인도에서의 첫 동행이 인도 현지 친구가 되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