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디 Dec 15. 2020

6. 지루함이 두려움을 이기다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루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취소되는 바람에 나와 함께 델리 시내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루다와 함께 델리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델리포트를 다녀왔고 그리고 저녁에는 로컬 마켓을 다녀왔다. 그곳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들과 옷들 그리고 아름다운 조명을 팔았고 나는 저렴한 가격에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물갈이 때문에 입에 대지도 않았던 길거리 음식도 루다를 따라 먹어 보기도 했다.


다음날 루다는 늦잠을 잔 내가 아침을 먹는 걸 지켜봐주었다. 루다는 원래 살던 벵갈루루로 떠나야만 했다. 우리는 세달 뒤 루다가 살고 있는 남인도 벵갈루루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나도 그녀도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갖진 못했다. 나는 입국 후 겨우 델리에만 머물러 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과연 북인도를 무사히 여행하고 남인도 벵갈루루까지 내려가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3개월 뒤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여유 있는 여행자의 모습일까 아님 그 전에 지쳐 도망가 인도를 떠나 있을까?



루다가 없는 델리는 더욱 허전했다. 루다가 내게 선물로 주고 간 벵글팔찌, 힌디 반죽, 빈디 스티커만 내 손에 남았다. 내가 모두 해보고 싶다, 갖고 싶다고 은연 중에 말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고마운 마음이 이는 동시에 외로워졌다.


루다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델리에 계속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델리에서는 성폭행 범죄자의 유죄가 판정됨에 따라 그의 신도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어 인도정부와 주한대사관에서는 사람들의 외출을 자제시켰다. 그날은 밥 먹으러 가는 것 외에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심지어 밥 먹으러 외출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숙소 앞 슈퍼에서 우유와 시리얼을 사서 숙소에서 먹는 걸로 끼니를 때웠다. 결국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산사태, 폭동에 이어 물갈이까지 마친 나는 호된 인도 입국 신고식을 끝낸 나는 나는 한동안 멍했다. 더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일을 했다. 약국에 가서 처음으로 항생제를 샀고, 마날리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혼자라고 해서 더 이상 델리에 묶여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인도에 입국한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델리를 떠나는 날, 겨우 지친 몸을 이끌고 한식당으로 향했다. 그나마 입에 맞는 음식이라도 몇 입 주워 먹으면 기운이 차려질까 하고. 그곳에서 생각 외로 재밌는 사람들을 만났다.


티베트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근 5년간을 한국과 인도를 오간 남자, 인도를 오기 전 태국의 외딴 섬에서 남자친구가 생긴 여자 등 간만에 와우 카페는 이야기꽃이 피었다. 인도에 와서 루다를 만난 것 다음으로 제일 즐거울 정도였다.


어떤 이가 누가 이렇게 같이 레를 갔어도 재밌었겠네요 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로 그랬으면 싶었다. 하지만 다들 레를 여행하고 난 뒤 귀국을 앞둔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나 혼자만 이제 여행을 막 시작한 여행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부러워요. 나도 다시 여행하고 싶다.


도대체 이들이 보낸 한두 달의 시간이 뭐길래 길다면 긴 시간을 여행하고서도 아쉬워하고 부러워하는 걸까. 마치 이별을 앞둔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부러워요 나도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말하는 것 같이.



흥미로운 시간과 사람들을 두고 짐을 챙겼다. 마날리로 가는 버스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안전한 여행을 빌어주었다. 따뜻하면서도 외로웠다. 원래 나는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 자석인데 인도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나보다. 아까부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썼는데도 폭우에 신발은 물구덩이에 담가졌고 배낭은 너무 커서 우산에 가려지지 않았다. 그때 당일치기로 타지마할을 함께 보러 갔던 민우 씨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소진 씨 충전하고 있던 보조배터리 놓고 갔어요!"


'아 이럴 수가 여행 초반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여행에서 생명과 같은 보조배터리를 찾기 위해 나는 왔던 길을 거슬러 물구덩이 속을 헤쳐지나갔다. 감사하게도 민우 씨가 비를 맞아가며 내게 보조배터리를 전달해주러 뛰어오고 있었다.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고 나는 미지의 세계로 다시 떠날 채비를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5. 처음이자 마지막, 나의 인도 친구 '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