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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Dec 15. 2020

7. 마날리 가는 버스 안

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마날리로 가는 날은 폭우가 쏟아졌다. 버스 스탠드로 이동하면서 가방과 신발이 쫄딱 젖었다.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다행히 버스에는 나와 함께 마날리까지 가는 여행자들이 있었다. 여자들도 보였다. 안심했다. 그렇게 폭우 속 빗길을 달리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본래 나는 여행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며 이동하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런 전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 어떡하지? 혹시 버스가 도로를 달리다 이탈하지는 않을까? 버스가 made in India라는 사실은 좀처럼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도로는 곧 유실될 것처럼 엉망이었다. 빗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버스를 보니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버스 안은 대부분 서양인들이었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는 조용히 비오는 흐린 창밖을 바라봤다. 더러운 거리와 시커먼 얼굴을 한 사람들의 하얀 눈동자가 보였다. 그때 다른 정류소에서 버스가 잠시 서더니 몇분 뒤 동양인 여자 한 명이 내 옆에 앉았다.


내 또래의 중국인이었는데, 알고보니 조선족이었다. 어눌하지만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나는 조선족이 사는 지역으로 중국 선교도 다녀온 적이 있어 조선족에게 매우 관심이 많고 호의적이었다. 내게 조선족은 범죄도시에 나오는 윤계상이 아니라,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언어 능력자들이며 중국과 한국을 연결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동티벳에서 만난 멋진 커리어우먼 변호사 애연 언니도 조선족이라 친근했다.


그녀의 북경 라이프를 재밌게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와 친해졌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즈음 나는 그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호기심이 늘 항상 많은 편인 나는 조선족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들의 정체성이 궁금했다. 본인들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호적은 중국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인이고 싶어하는지 중국인이길 원하는지. 나는 그녀에게 내 궁금한 점을 물었고, 그녀의 답은 간결했다.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야”


나는 기대한 답이 아닌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게 뭐야’하고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후로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려했지만 이내 금세 짧게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각자 음악을 듣거나 창문을 바라보았다.


부끄러웠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국적을 초월해 인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왜 나는 이들을 더 명확히 규정 하려고 했을까. 깔끔하고 명쾌한 답을 갖길 원했을까.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더라면 내가 과연 혼잣말이라도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을까. 그리고 나는 천진난만한 호기심을 빌미삼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되돌아봤다.


여전히 버스는 정비되지 않은 도로를 무던히 달렸다. 달라진 것은 한층 어두워졌다는 사실에 창밖은 불빛 하나 없는 어둠 뿐이었다.


델리를 떠나 여행하는 첫 날, 나는 그 불안한 버스 안에서 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새카만 창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똥말똥한 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날이 밝자 희뿌연 안개 뒤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는 녹음이 나를 반기며 마날리에 도착한 것을 알렸다. 청량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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