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간의 좌충우돌 인도 네팔 여행기
레를 가는 길이 워낙 높고 험준해 몇몇 중간 도시를 들려야 했다. 그 중 제일 첫번째로 들리게 되는 곳이 마날리였다. 입국한 이후 내내 여전히 동행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대로만 있다가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고민 끝에 홀로 마날리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딜 가도 푸르른 녹음이 우거져 인도의 스위스라 불리는 마날리는 걷기만 해도 기분이 참 상쾌해지고 건강해질 것 같은 도시였다. 나는 마날리에서 일단 혼자서라도 나름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레와 마날리는 살인적인 더위의 인도에서 피서지 역할을 할 만큼 한여름에도 서늘한 날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특히 레는 8월만 넘어가도 판공초에서 칼바람이 불어와 여행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레를 가기 위해서는 따뜻한 옷이 필요했다. 우선 털모자와 망토를 인도 물가치고 꽤 값을 주고 구입했다. 이 더운 나라 인도에서 이게 과연 쓸 일이 있을까 자문하면서.
배가 고팠다. 동행을 알아볼 겸 마날리에 있는 한식당을 찾았다. 송어 요리가 맛있다고 알려져 있는 집이었다. 마날리 한식당 사장님은 레를 간다고 하는 한국인 여행자 한명을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인도여행 커뮤니티, 인도여행 오픈채팅방과 인도카페에 마날리에 머무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모두 이미 갔다 왔다는 사람들과 앞으로 갈 거라는 사람들만 있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데 옆방 문 앞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남자 한 명을 마주쳤다. 인상이 좋지 않아서 그냥 방에 들어가려다가 한마디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그가 바로 레를 가는 여행자였다.
그런데 그는 레를 가긴 가는데 버스비가 굉장히 저렴한 로컬버스를 타고 갈 거라 했다. 그는 내게 동행을 제안했다.
마날리에서 레를 가는 방법은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지프를 빌려 타고 가는 것이고, 두 번째 여행객 전용 투어리스트 버스를 타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현지인들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로컬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지프는 개인 운전기사를 고용해 4~5인의 소그룹 여행자들만 태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더욱이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등 언제든 멈춰서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장 비쌌다. 그래도 동행만 있다면 지프를 빌려 레를 가고 싶었으나 내겐 고민해볼 수도 없는 선택지였다. 나에겐 선택지가 하나뿐인듯 했다. 로컬버스보다는 안전할 것 같고 지프보다는 저렴한 투어리스트 버스.
레를 가는 길이 워낙 험하다는 사실은 레를 가려는 여행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때문에 차 안에서 디스코 팡팡을 타는 줄 알았다느니, 고산병 때문에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는 후기들은 익숙한 터였다. 낡고 느린 로컬버스를 타도 괜찮을지 걱정이 됐다. 인도 입국 10일 만에 눈앞에 나타난 동행을 포기할 것인가. 내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투어리스트 버스 탈 생각은 없으세요?"
그는 완고했다.
외롭지만 안전하게 혼자 갈 것인지, 위험하지만 동행과 함께 로컬 버스를 타고 갈 것인지 인도 입국 이래 최대의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본 후 그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다.
나는 저녁에 한식당에서 만난 한 여학생과 먼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티베탄 식당에는 모모, 뚝바, 뗌뚝이라는 걸 주로 팔았는데 모모는 우리나라로 치면 만두였고 뚝바는 칼국수, 뗌뚝은 수제비였다. 모양 뿐 아니라 맛도 비슷해 여행 내내 아주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심지어 이 티베트 식당은 한국인들을 호객하기 위해 뗌뚝과 뚝바가 아니라 대놓고 수제비와 만두국을 판다고 가게 문 앞에 적어 놓기까지 했다. 메뉴판에도 칼국수(Tuppa), 수제비(Thentuk)이라고... ‘여기가 대체 한국이야 인도야?’
뗌뚝과 뚝바, 모모를 먹으면서 그 여학생이 일반 학교가 아닌 여행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행학교? 그런 데가 있어요? 난생 처음 듣는 단어네”
알고보니 대안학교의 일종이었다. 평소에는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에서 수업을 듣고 틈틈이 유럽, 동남아, 인도 네팔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돈이 부족한 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모금 같은 걸 진행해서 여행자금을 마련하다고 했다.
‘말도 안돼 이런 학교가 있었다니. 내 생애 들어본적이 없는데’
그녀는 전국에 이런 여행학교가 몇군데 있다며, 마날리 한식당의 벽화도 다른 여행학교의 학생들이 와서 그리고 간 것이라고. 여행학교를 다니면 학교 수업도 재밌을 뿐더러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도 매우 크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 학교의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인턴 기간을 거쳐 원하는 분야에 취업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건지 어떻게 이 학교를 다니게 됐냐고 묻자, 진학할 학교를 찾아보던 중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부모님께 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고 했다. 무척이나 더 놀라웠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내 인생의 항로는 대학입시 한 길 밖에 알지 못한 나와 달리 일찍부터 자아를 찾기 위한 생각이 빨리 트인 친구들이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다니고 있다니. 나도 아마 여행 학교를 알았으면 부모님께 여기를 다니고 싶다고 했을까? 아니면 제도권 교육의 이탈이 두려워 그대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했을까?
지금도 내가 여행을 떠난 이 시점에는 친구들은 공무원 준비를 하고 대외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고 있었다. 나 또한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했지만 살짝 뒤로 하고 배낭 여행을 떠났다. 여태껏 입시 경쟁에 시달렸고 이제는 취업 경쟁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론 결혼-육아-노후 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이상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다. 현재 행복한 사람이 미래도 행복할 거라고 믿고 싶었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여행이 제도권을 따라가지 못한 내가 벌이는 일종의 도피행각이 아닐까 두려웠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낮에 만났던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동행도 동행이지만 나는 사실 로컬버스의 '로컬'에 끌렸었다. 투어리스트 버스에서 느껴지는 딱딱하고 안정적인 인상이 아니라 좀 더럽고 불편해도 사람 냄새가 나는 진짜 인도를 경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내게 있었다.
결국 혼자서면 엄두도 못 냈을 로컬 버스를 타고 레를 가기로 결정했다. 큰 배낭은 마날리에 있는 숙소에 맡기고 작은 배낭에 최소한의 짐만 챙겨 채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