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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디 Jan 04. 2023

현명한 여행자가 되는 건 어려워

룸비니, 카트만두


일주일 남짓했던 포카라의 방탕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흔적이 없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포카라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이곳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소만 방문하기로 했다. 트레킹 전후로 계속 머무르고 있는 유리코 게스트하우스에 잔금을 치르고 숙소 1층 테이블에 앉아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서 마지막 한 끼 식사를 한다면 어디일까 생각해 봤는데, 단연 소비따네였다.




만족스럽게 먹고 돌아오는 길에 지름신이 들게 만들었던 의류 편집샵엘 들렀다.


숙소 가는 길이기도 했다. 포카라를 다시 찾고 싶은 이유 중 하나에 이 가게도 있을 정도로 초록 넝쿨로 둘러싼 이곳은 사랑스러웠다.




그다음 들린 곳은 숙소 바로 앞 카페였다. 술을 깨기 위해 알딸딸한 기분으로 혼자 새카만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바보처럼 실실거렸던 나날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만큼은 조금 망가지고 제멋대로인 나를 꿈꿨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우스워서.


아메리카노 대신 특별히 카페 모카를 시켰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그토록 염원했던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니까. 그동안 마음을 주고 몸을 쉬었던 곳을 모두 들리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늦어 한식당 제로갤러리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쉬웠다.




네 시간이면 도착한다는 룸비니는 일곱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배도 무척 굶주렸고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라 하늘이 어스름하더니 깜깜한 어둠으로 변했다. 낯선 곳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떠나온 터라 조금 걱정이 됐지만 신성한 공간이니만큼 위험한 일은 없으리란 생각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는 룸비니는 네팔의 대표 불교 유적지다. 이곳에는 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원이 모여있는데, 한국의 대성석가사도 그중 하나였다.


대성석가사에는 하루에 600루피만 내면 숙식을 제공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예전에는 아예 무료였는데 기부금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심지어 식사가 한식이다. 사람들에게 물어 대성석가사로 향했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건축 형태가 보였다. 네팔에서 보는 한국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절에는 와이파이도 있었다. 역시 한국 절은 다르구나. 너무나 한국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첫 템플스테이를 네팔에서 하게 될 줄이야.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올라 사원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밤이 늦었고 어둠 때문에 쉽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을 뒤로하고 잘 공간을 안내받았다.


숙소 내부는 꽤 넓었다. 침대 같은 건 없었지만 이불이 깔려 있었고 한 사람이 눕는 공간마다 모기장이 설치돼 있었다. 이 정도면 만족이다 만족!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절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모기장 안으로 지친 몸을 던졌다.





다음날 일찍 눈이 뜨여 대성석가사를 한 바퀴 돌았다. 상쾌한 고즈넉함이 밀려왔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고 오직 나 홀로였다. 야자수와 우리나라 전통 문양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니 묘했다. 분명 네팔인데 한국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국적인 풍경에 정신이 팔려 Y는 생각나지 않았고 아주 낯선 공간에 떨어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에는 여타 도시들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이 있었다. 한국 말고도 밖에 세계 다양한 나라의 절이 있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더는 시간 끌지 말고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절의 입구 앞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뚝뚝이 기사 아저씨들이 자신을 선택해달라는 듯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한 번도 보지 못한 디자인의 뚝뚝을 가지고 계신 기사님께 함께 가자고 했다. 기사님의 애처로운 등을 보며 캐나다 절, 그다음은 태국 절, 베트남 절, 중국 절 등을 방문했다.




조금 지겨워질 무렵이었다. 또 다른 사원을 가는 길에 뚝뚝 아저씨와 시비가 붙었다. 애초에 처음 협의했던 금액에서 추가로 돈을 더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에 말했던 사원을 시간 내에 모두 둘러보지 못한 것도 아쉬웠는데 돈을 더 달라고 하다니 순간 화가 났다. 분명 그 안에 절들을 모두 둘러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 처음에 얘기한 돈보다 더 받으려는 계획된 수법.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인도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이미 그런 사람을 수없이 만났고 그럴 때마다 못 이긴 척 넉넉한 돈으로 처음부터 얹어주거나 처음부터 그 돈은 못 준다고 확실히 못 박았다. 하지만 네팔에서는 그런 일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계획된 수법에 휘말리기 싫어 처음에 이야기  돈만 지불하고 내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스름돈이 없다는 거다.


‘또 개수작이지!’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괘씸해서 눈물까지 났다.




결국 나는 아저씨한테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기분으로 그냥 있는 돈을 주었다. 아저씨는 분개한 나를 보고 다른 지나가던 상인을 붙잡아 무어라 이야기하더니 내게 남은 돈을 건넸다. 씩씩대면서 숙소에 돌아온 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눈물이 났다.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지?’


여행하면서 많이 만났던 유형이었다. 보통 한쪽이 안된다고 하면 적반하장으로 서로 같이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근데 저 아저씨는 나를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한결 같이 기운 없는 태도였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주지 않으려는 돈 몇 푼이 아저씨의 하루 생계비는 아닐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돈이 아닐까. 큰돈을 내미는 내게 아저씨는 정말 거슬러줄 돈이 없었던 게 아닐까.


숙소에 들어온 나는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대낮부터 하루종일 잠만 잤다. 꿈쩍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싫었다. 뚝뚝 아저씨와 약속한 시간보다 오버됐으니 돈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신비스러웠던 룸비니가 싫어졌고 한껏 가라앉은 기분이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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