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음악수집가 Apr 23. 2022

항상 시작은 순수한 마음으로
(가야금 편)

반쪽짜리 음악인이 아닌 반의 반의 반쪽 뮤지션의 삶의 이야기

"가야금 할래? 가야금 하자!"

"누나.. 가야금 배우는 건 둘째고 제가 가야금 살 돈이 어디 있어요?"

"가야금은 내가 빌려줄게! 배우는 것은 걱정하지 마!"

"호오... 그렇다면..?"

"대신, 내 악기 비싼 악기니까 잘 다뤄야 해!!"


 코로나 시국이라 어디에 모이는 것조차 어려운 시기에 동네 이웃 누나는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나서 달콤한(?) 제안을 했다. 하긴.. 제가 음악에 진심이긴 하죠..


"그래서 어떻게 배워요? 저는 기타만 칠 줄 알지 가야금은 완전 처음이에요"

"내가 수요일에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보내 줄게 들어오면 배울 수 있어"


 누나의 달콤한 제안은 삼고초려는 커녕 삼초만에 고려 후 바로 승낙해버렸다. 

투박한 손과 큰 덩치는 분명 콘트라베이스가 어울릴 만 한데 가야금이라..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만 거절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조그만 차 뒷좌석에는 가야금이 실어져 있었다. 받아온 가야금은 역시 '애지중지'가 딱 적절했다. 적어도 내 기타는 그렇지 않은데...


뒤에 나올 단어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야금의 명칭 (출처 : 네이버 악기백과)


"뚕~"

"뭔 소리가... 이게 맞나?"

막상 받아왔는데 가야금과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조율하는 방법도 튕기는 손 모양도 가야금을 다리에 어찌 놓아야 하는 방법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받아온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빌려온 가야금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튜닝 = 다스름'이라는 공식을 앞세우고 유튜브를 켜고 음 하나하나를 튕기며 다스려(?) 갔으나...


아마 딱 이런 느낌이 아닐까? 도움을 주신 디자이너 mean._.ing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악기를 하던 가장 기초가 되는 조율(튜닝)은 정말 중요한데 대중적으로 조금이나마 알려져 있는 악기는 유튜브를 참고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가야금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안족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조율을 해야 하고 안족으로 해결이 안 되면 학슬을 건드려야 한다는 것. 특히나 초보자가 학슬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돌이킬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함을 유튜버들이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더라..

특히 제일 어려웠던 것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음계와 가야금의 음계가 너무 달랐다. 예를 들어 가야금 1번 줄을 '레'로 읽는데 내가 조율한 음은 '솔'이었으니... 머릿속은 '솔'로 인식을 할 지라도 계속 '레'로 세뇌를 시켜야만 했다.


 겨우겨우 수업에 필요한 조율은 맞췄다. 내가 기억하는 음과 가야금의 음계가 다르다는 것도 이때 깨달았다. 튜닝을 할 수 있는 어플을 사용해서 이리저리 줄을 뜯어보고 안족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제대로 음을 맞출 수 있었다. 아직 줄을 제대로 뜯는 방법도 모르는 초보자 일지라도 수업을 향한 열의는 높았다.


 수요일 저녁, 가야금을 빌려준 누나는 잊지 않고 카카오톡 링크를 보내주셨다. 알고 보니 화상회의를 통하여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방식이었는데 놀라웠던 점은 많고 많은 수강생 중에 남자는 '나 혼자' 였다는 것!

'에이~ 성별이 뭐가 중요해 황병기 선생님도 계셨는데'라는 주문을 계속했던 것 같다. 열정 하나만큼은 남 부럽지 않을 만큼 가지고 있으니까!


"잘하고 계세요. 조금 더 손 모양을 다듬으셔야 해요."


 하나하나 천천히 따라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기타 주법 중 '아르페지오'처럼 한 줄 한 줄 뜯는 것을 배우고 악보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아리랑>이 완성이 되었다. 내 손으로 기타가 아닌 다른 악기로 한 곡을 완성한다는 것은 또 다른 희열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움은 있었다. 배워야 할 주법이 너무나도 많았다. 현재 기준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주법은 뜯기, 튕기기, 엄지 뜯기, 1-2 뒤집기, 집기, 누르기 정도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주법 수는 지금 배운 주법의 수의 두배가 더 남았다. 하지만 천천히 하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는 나 자신을 만나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해야 할 텐데...


얼굴을 잘라놔도 '펭수' 후드티를 입고 있으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좋은음악수집가 인줄 알 것이다.


 비대면 레슨이 마무리되고 이제는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자리를 옮겨 여전히 비대면인 인터넷 강의를 통해 계속 그 열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음속에는 늘 '레슨 받고 싶다..'만 한가득이다. 결국 '악기'라는 것은 나보다 앞서 나간 사람에게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이 제일 좋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서는 나의 어색한 모습이 보일 테고 교정을 할 수 있게 조언을 해 줄 테니까.


 목표를 높게 잡았다. 지금 보고 있는 교재에 거의 끝 부분에 있는 '침향무'! 이 곡은 가야금의 명인으로 잘 알려진 故 황병기 선생님의 작품으로 조선시대가 아닌 훨씬 이전의 신라시대의 무용가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언젠가 이 곡을 칠 줄 알게 되는 시기가 되면 혹자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인가요?"라고 할 때 아주 당당하게 "가야금이요." 하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좋은음악수집가가 주제넘게 추천하는 '가야금'이 있는 대중음악 or 독주곡!

가야금은 여전히 초보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듣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소개한 곡 중 한곡 정도는 칠 수 있겠지'하는 생각과 '와! 정말 명곡!' 하며 극찬을 한 곡을 엄선해 보았습니다.


황병기 4집 <춘설> 1993년 작.

황병기 - 춘설

 9분 가까이 되는 곡에 '조용한 아침 - 평화롭게 - 신비롭게 - 익살스럽게 - 신명 나게'라는 식의 파트만 5가지나 된다. 특히 '평화롭게' 파트는 대전광역시 지하철 효과음에도 삽입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제목에 걸맞게 딱 지금, 이 시기에 어울리는 가야금 독주가 아닐까 한다. '春雪'... 눈이 내린다는 것은 썩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이 곡이라면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황병기 3집 <미궁> 1984년 작.

황병기 - 미궁

 이 곡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많다. '들으면 귀신을 본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등의 평이 난무한데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층간소음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였다. 확실히 난해한 음악이다.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분은 무용가로 아주 유명하신 홍신자이다.

첼로 활로 도입부를 표현할 때 과연 가야금의 소리가 맞는가 귀를 의심하게 되고 현만 건드리지 않고 가야금의 몸통을 이리저리 긁기도 한다! 특히 중반부에서 거문고의 술대로 현을 이리저리 갉아대는 신기한 소리는 청자의 신경을 긁으며 뒤이어 나오는 홍신자의 목소리가 더욱 '미궁'으로 빠트리게 한다. 경고하듯 읽어 내려가는 홍신자의 가사는 더욱 공포감을 더 극대화하기도 한다. 이 음악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난해'하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고 그게 곧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국내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에 삽입되어서 더욱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좋은 화질의 사진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오갑순과 문하생의 <신민요와 가야금 병창> 1979년 작.

오갑순과 문하생 - 진여사의 여승

 동편제로 유명한 남원 출신의 오갑순은 동편제의 특징을 잘 살려서 힘이 있고 담백하다. 이 음악이야 말로 K-소울의 시초가 아닐까? 베이스 기타와 드럼, 색소폰의 소울이 적절하고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가야금과 해금도 거든다. 오갑순 혼자만이 아닌 그녀의 문하생들이 힘을 모아 만든 이 음반을 2022년 2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콜렉터를 통해 구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지출은 컸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최고의 퓨전 음반이라 생각한다. 역시 어떤 음악이던 사서 들어야 한다.


숙명 가야금 연주단 3집 <Let it be> 2003년 작.

숙명 가야금 연주단 - Let It Be

 아마 가야금을 대중화시킨 제일 유명한 팀이 아닐까 생각된다.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생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기차를 타면 제일 많이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여 많은 분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이 아닐까 생각된다. 좋은 방향성을 가진 음반이라 생각하는 작품! 국악기의 장벽을 조금은 허물어 준 좋은 시도의 음반이다.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들로 꾸며진 가야금의 선율은 정말 아름답고 가야금만의 매력을 더욱 강조하여 '와~! 나도 가야금 배워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저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저도 배우는 입장이니까요!



음악그룹 놀이터의 태교음반 <품> 2013년 작.

음악그룹 놀이터 - 선물

 찾는데 가장 애를 먹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 곡이 나왔던 예능프로그램을 계속 되뇌어야 했고 무한도전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2002년에 결성하여 2005년에 데뷔한 놀이터는 멤버 모두가 KBS 국악관현악단에 소속되어 있는 검증된 아티스트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태교'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일까 수록된 모든 음악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멤버는 하가영(가야금), 전지현(대금, 소금), 김혜진(타악), 황영자(해금)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는 활동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래도 좋은 음악이 세상에 남겨져 있으니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것 같다.



혹시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가야금 곡이 있으면 알려주실 수 있나요? :)

매거진의 이전글 항상 시작은 순수한 마음으로 (오키나와 악기 산신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