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스틱 세우고 내 입술에 바르고 아찔아찔 솟은 쇄골 위에 살짝 묻히고. - <오렌지캬라멜 - 립스틱>
처음에 들었던 이 가사도 음반에 동봉된 가사집을 보고 나서 제대로 알았으니 망정이지 처음 얼핏 들었을 땐 그렇게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는 가사와는 별개로 오렌지캬라멜은 유닛으로 구성된 그룹 中 최초로 본진 '애프터 스쿨'을 뛰어넘는 야성을 발휘한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세운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병맛'의 뜻은 '병신 같은 맛'을 줄인 것으로써 한때 유행했던 단어 '엽기'와는 비슷하면서 구분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일상 속에서 특히 MZ세대(1981~2009년에 태어난 사람,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를 합친 세대를 뜻한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단어화가 확실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병맛의 유래는 디시인사이드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거기까지는 여력이 되지 않고... 내가 '병맛'을 처음 본 것은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에서 시작이 되었다. 오죽하면 당시 웹툰 작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를 두고 '기-승-전-병(맛)'이라고 했을까? 어쩌면 고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 까지 지금도 기억나는 웹툰이기도 한 이유는 병맛이 그만큼 강렬했음이 아닐까?
<Lipstick> 이후에도 오렌지캬라멜의 병맛 가득한 영향력은 오히려 더욱 강했다. 왼쪽부터 리지, 나나, 레이나. 그리고 중앙에 조그마한 원에 있는 사람은 개그맨 김대성이다.
병맛이라고 해서 음악이 구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콘셉트가 일반적인 아이돌(혹은 아티스트)의 방향성과 약간 다를 뿐이지 팬들 사이에서는 '선 병맛, 후 중독'이라는 상당히 독특한 단어도 등장했으니 말이다. 특히 서두에 언급한 오렌지캬라멜을 두고 저 말이 굉장히 유행했는데 립스틱 이후에 발표한 '까탈레나'는 약 2년 만인 2014년 3월, 복귀 무대에서 화려한 의상과 도입부의 독특한 추임새와 안무 등으로 제대로 된 (긍정적인 의미의) 병맛을 선사했다. 음악조차 구리지 않은 아주 성공적인 작전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들의 향후 행보가 매우 아쉽다. 복귀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겠지만 한 멤버가 일으킨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재결합과 복귀는 앞으로도 힘들어 보인다.)
병맛을 기준하는 것은 무엇일까? 병맛은 분명 개그적인 요소가 확실히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병맛을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하겠다. 개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부정적인 의미의 병맛은 무의미할 것이다. 진짜 부정적인 의미였다면 '병맛'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1982년에 태어나신 임홍택 작가의 저서 <90년생이 온다>에서는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의 캐치프레이즈가 적혀있는데 이 책의 97~99페이지에 '병맛'을 짧게 다루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파트의 마지막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초기에 만화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정되던 병맛 문화가 빠르게 주류 문화로 편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동의한다. 그렇다고 병맛을 두고 주류(Mainstream)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시하고 넘길만한 수준은 아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만 두고 보아도 '초심'으로 돌아간 싸이의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는 확실히 '병맛'인데 (곡은 정말 싸이 다운 훌륭한 곡이다.) 빌보드 차트 100에서 2위,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를 하며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 되었다. (이후에 발표한 곡들은 빌보드를 너무 의식한 탓인지 진부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술탄오브더디스코의 데뷔 싱글(2008), 무스타파 더거, J.J(저질) 핫산, 압둘라 나잠의 시작은 초라한 듯 화려했다.
인디 쪽을 한번 살펴볼까? 지금이야 실력이 탄탄한 밴드로 알려져 있는 '술탄오브더디스코'는 데뷔 당시만 해도 밴드가 아닌 '홍대 유일의 립싱크(?) 전문 댄스그룹'으로 시작하였고 그 콘셉트 자체가 인디계에서는 흔치 않은 병맛을 주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소속사의 아티스트는 '리듬감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기조를 두고 '촉수 춤'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병맛의)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가 바로 최근에 솔로로 음반을 내면서 독특한 음악세계를 또 한 번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곧 장르화 해버린 아티스트, 바로 '장기하'다.
눈뜨고 코베인, 청년실업 등을 거친 장기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 발표와 더불어 붕가붕가레코드에게 돈을 벌어다 주었다고 하며 내는 음반마다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긍정적 의미의) 병맛은 아티스트 자신 혹은 그룹이 B급 감성을 몰래 감춘 독특한 창의성을 발휘할 때 제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 구리면 안된다.
글을 가만히 보다가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구린 음악'을 어떻게 분별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결국 그것에 대한 답은"대중들이 판단할 문제입니다."라고 밖에... 창의성이 넘치는 모든 아티스트들의 건투를 빈다!
최근에는 병맛이 조금 사라졌나 싶었으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9인조 걸그룹 '네이처'는 2022년 1월, <RICA RICA>를 발표했는데 라이브 영상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고 입소문으로 듣게 된 안무를 보면서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꼭 뮤비를 보시라... '층간소음 복수 춤'으로 불리는 이 안무... 표정 변화 없이 추는 것이 가히 압권이다. 아이돌이 성공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어떻게든 병맛이 첨가된 곡은 유행이 돌고 돌듯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사실 다양한 콘셉트가 나와서 독특한 모습으로 튄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처음엔 충격이 클 테지만 독특한 콘셉트조차 애정을 가지고 환호해 줄 좋은음악수집가 같은 팬이 나올지도?
병맛 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서태지가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시절 당시의 멋지게 휘날리던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 후 <난 알아요>를 통해 데뷔를 할 당시, MBC 특종 TV연예에 출연하여 평균 7.8점을 받았다.(다른 가수들의 데뷔 무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점수다.) 물론 당시의 대중음악계에서 서태지를 두고 '이단아' 같은 모습과 익숙하지 않았던 음악 장르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도 90년대 초는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경쟁을 하던 시대였으니까!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심사위원들 중 가수 전영록은 "평은 저희가 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 여러분들이 하는 거니까 그분들께 저는 맡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결국 모든 것의 판단은 대중의 몫이다. 아티스트의 다양한 방향성이 청각적으로 시각적으로 더욱 폭발하기를 이 글을 빌어 소망해본다.
평범한 것은 가라! 병맛 음악 애호가, 좋은음악수집가가 선정한 (긍정적 의미의) 병맛 돋는 음악 BEST 5!
(지극히 좋은음악수집가의 취향이 담겨있습니다.)
2012년에 나온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데뷔작, Zynthar를 어떻게 읽어야 하냐고? 그건 바로 찐따!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라는 명제 아래에 탄생한 희대의 명작은 80장이라는 극히 적은 수량으로 발매되어서 정말 구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심지어 요한 일렉트릭 바흐에게 직접 DM으로 재고가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았으나 '본인도 가지고 있는 게 없다.'라고 하시니 구할 길은 아예 없어 보인다.
사실 이 곡은 원곡이 따로 있다. 원곡의 제목은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다소 기괴한 제목을 가지고 있으며 1996년, 김정일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곡 내용은 대충 '김일성이 쓰던 축지법을 김정일도 쓸 수 있다.'는 흔히 말하는 '구라'만 있는 곡인데 이것을 국내 정서에 잘 반영하여 비정상적 구조를 가진 대형교회에 일갈하듯 적절하게 대입시켰다. 특히나 전주와 간주에 무차별적으로 깔리는 '목사님 방언기도 샘플링'은 아주 인상적이며 대형교회와 군소교회를 다니면서 경험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서 PTSD가 올뻔했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유튜브만 들어가도 그가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상당히 많으니 한번 그의 음악을 탐독(?)하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곡마다 달려있는 댓글도!
잭 스타우버의 세 번째 음반(2017), LP로도 발매 되었을 때 국내의 많은 팬들이 열광했다.
유튜브의 Shorts 영상이나 틱톡 등을 자주 시청한다면 이 곡을 무조건 들어봤으리라...! 잭 스타우버의 보이스부터 범상치 않다. 중요한 것은 실제 라이브에서도 이렇게 부른다는 것을 잊지 말자. 2017년 3월 25일에 발표한 그의 세 번째 음반은 다행히 음반으로 소장하고 있고 LP로 발매된다는 알림을 받았을 때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음반을 구하는 것이 늦어졌거나 웃돈 주고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유튜브를 통해 보여준 2D, 3D 애니메이션을 보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일상의 문제를 엿볼 수도 있다. 그의 정신세계를 엿본 후 세상의 모진 풍파를 다 맞은듯한 광기 어린 작품에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그가 젊은 아티스트(1996년 생)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더욱 놀라웠다. 앞으로 어떤 음악과 영상으로 대중 앞으로 나타날지 더욱 기대가 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황'당하고 '신'기하고 '혜'성같이 나타났다 하여 그들의 밴드명은 황신혜밴드가 되었다.(배우 황신혜를 좋아한다는 말도 있다.) 사실 시기상으로 보았을 때 이들의 음악은 병맛보다는 '엽기'에 가깝지만 나의 취향은 늘 한결같이 이 곡을 원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짬뽕보다는 그래도 짜장면이...'라고 하며 음식에 있어서는 일관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이 곡의 가사에서 짬뽕 대신에 짜장면이나 탕수육을 넣으면 가사의 맛이 전혀 살지 않는다! 햇살이 가득한 5월의 어느 날, 사랑은 깨졌어도 쏟아지는 외로움과 추위(?)를 이기기 위한 짬뽕을 먹으면 풀리지 않을까? 그래! 짜장면을 더 선호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비가 온다면 이 노래를 틀어놓고 꼭 짬뽕을 먹어야겠다.
실제 판매되었던 모양 그대로다. 종이 케이스에 재킷을 붙인 모습. 붕가붕가레코드의 수공업 소형 음반은 모두 이런 형태다.
청년실업은 장기하, 이기타, 목말라로 구성된 3인조 포크그룹이었다. 하지만 장기하의 군입대로 인하여 이기타와 목말라는 눈뜨고 코베인의 프런트맨 '깜악귀'를 섭외하는 데 성공하고 라디오 방송과 뮤지컬을 합친듯한 곡을 들려주었다. 어쩌면... 젊은 남녀가 겪을 수 있는데 막상 꺼내긴 거시기한 그런 내용이다. 어쩌면 이 곡을 깜악귀 혼자 소화한다는 것 그 자체가 경이로울 수도? (심지어 클라이맥스에서 들리는 더블링 효과도 깜악귀의 목소리다.) 대학생 때 처음 듣고 친구들에게 불러주었을 때(??!) 친구들은 박장대소와 경악을 동시에 했다. 무엇보다도 가사가 독특해서 웃었을 것이고 이런 노래를 기타를 치면서 직접 부른다는 것에 경악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그래... 나도 어른이 되긴 했구나.
엑스트라 캐릭터를 주인공처럼 만들어 놓으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줄 알겠다. 아, 물론 뮤비에서는 주인공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요즘 EBS는 '가장 도핑테스트가 필요한 방송국'인 것 같다. 펭수도 딩동댕 대학교도 심지어 이곡도 EBS를 통하여 나왔는데 모두 보통이 아니다. 녹음에 참여한 사람들도 전문 성우가 아닌 애니메이션 제작을 담당하는 직원이었고 영상에 나오는 캐릭터조차 <포텐 독>에서는 '엑스트라'다.
이 곡의 작사와 작곡을 맡은 '이달' 감독은 이 곡을 녹음하기 위해 "짜장면 먹을 사람?"에 "저요!"라고 외친 직원에게 짜장면을 사주고 녹음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입부에 나오는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달' 감독이다....) 공감되는(?) 가사와 K-pop에서 한가닥 했던 춤을 짜깁기 한 안무는 영상의 백미! 안무를 짜신 분은 다름 아닌 '이달' 감독의 딸이라고 하니.... 부녀가 제대로 작정하고 만든 퀄리티가 상당하다. 나도 아부지와 뭔가 하나를 만들어야 하나...?
(시간을 쪼개어 미천한 저의 아이디어를 받아 흔쾌히 표지를 만들어주신 귀한 디자이너 mean._.ing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