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 사진을 내 글에다가 올리고 싶었다. 같이 졸업한 친구들과 거쳐간 선후배들에게 좋은 시간(?)을 느낄 수 있도록.. / 실제로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왼쪽 출입문.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그랬다. 매를 많이 맞기는 했지만 '낭만'이 있었고 사제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고 어떤 선생님께서는 "1학년 때는 이 학교 왜 왔지? 하다가 2학년이 되면 그런 감정이 서서히 풀리면서 3학년 때는 사랑하는 마음이 극에 달하죠."라는 다소 살벌한 농담을 던지시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은 사실이었고 지금도 가끔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매를 엄청나게 맞았고 나는 늘 그것을 낭만으로 포장하지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었던 자부심으로 여긴다.
가끔씩 수업 진도가 다른 반보다 빠르면 정규 수업이 잡혀있는 시간일지라도 축구를 하거나 영화를 가끔씩 보곤 했다. 축구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였냐고 하신다면... 내가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교과목이 '영어'였는데 그분도 축구를 같이 하셨고 그 시간에 수업이 없는 선생님들도 나와서 축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선생님 vs 학생'으로 나뉘기까지 했다. 물론 체육대회는 따로 있었다는 것이 공포라면 공포...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축구만큼이나 애정도가 높은 스포츠가 바로 '탁구'였는데 모든 선생님들은 탁구라켓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소위 완제품으로 파는 일명 '장난감 라켓'이 아닌 블레이드와 러버를 따로 사서 붙이는 진정 생활체육인들의 모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탁구대회를 나가는 탁구부의 넘어야 할 산이었고 당시 탁구부였던 나는 절대 넘지 못하는 한분(코치님이자 국어 선생님)을 제외하고 2학년 때 전부 넘어버린 것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수업 진도가 빠른 것 같으니 오늘은 영화를 한편 봅시다."
유일하게 존댓말로 수업을 하셨던 (대신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학생에게는 자비가 없었던) 생물 선생님께서 인사를 받으시자마자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하시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변함없이 사랑했던 것은 수업시간에 보는 '영화'가 아니겠는가? 그때 보여주신 영화는 바로....
놀랍게도 저 영화에서 '세계관 상' 저 남주(주걸륜; 극중명 - 상룬)와 여주(계륜미; 극중명 - 샤오위) 당시의 나와 동갑이었다.....
주걸륜이 주연부터 감독, 각본, 음악까지 다 맡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피아노를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와 풋풋한 고등학생의 사랑, 하지만 어딘가 비밀이 있기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난 후 나를 비롯한 그 영화를 본 모든 학생들이 단체로 그 영화에 매료되었다. 오죽하면 학교에 유일하게 있는 피아노가 탁구장(이라 쓰고 소강당)에 우두커니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ost를 칠 줄 아는 사람이 남학교에 얼마나 있겠냐만 유일하게 제대로 칠 줄 아는 동기가 있었고 옹기종기 모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음악 선생님은 피아노를 열지 못하게 잠가버리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더 이상 직접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의 일상에는 피아노가 근처에 있었다. 당시에는 교회에서 가끔 기타를 치기도 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드럼을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드럼도 쳤다. 물론 드럼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름 1년 가까이 앉아 있었던 걸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피아노 치던 친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깔짝깔짝 대는 정도로만 조금 쳤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나의 고등학교 3학년은 참 추억이 많았다. 학교 도서관에서 무작정 고른 책을 가지고 공부하다가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는데 그때 피아노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펴준 책은 <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 죽이게 치는 방법>이라는, 제목부터 확 와닿으면서 '이거다!'라고 할만한 책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일주일 안에 피아노를 죽이게 쳤다고 자부하기엔 너무 창피한 수준이지만 그 책에서 소개한 존 레논의 불후의 명곡 'Imagine'의 도입부를 비슷하게 쳤다는 것 만으로 고3 때부터 피아노 학원 성인반에 등록하기 전까지 정말 제대로 우려먹었고 수학포기자(수포자)가 집합만 너덜너덜하듯 학교도서관의 그 책도 앞부분만 너덜너덜하게 읽었다. 고3때 읽었던 책이 참 많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학은 갔다는게 기적이다.
안타깝게도 대학생으로 올라와서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학교 4년을 휴학 없이 바로 다녔던 내가 늘 가지고 다녔던 것은 오로지 기타였고 음대도 없는 학교에 기타를 매일같이 가지고 다녔던 사람은 내가 유일할 정도로 기타만 쳐댔으니... 그리고 피아노를 칠만한 곳이 없었다고 해야 맞겠다. 그나마 동아리방에 허름하기 짝이 없는 (피아노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디지털 건반이 있긴 했지만 그것의 타건감은 절대 욕구가 충족될 리 없었다. 결국 우릴대로 우려먹은 형편없는 피아노 실력을 가진 채 멈추고야 말았다. 애초에 멈춘게 당연하겠지만....
나는 기억한다. 추운 겨울에 흠집이 나도 상관하지 않았던 아이팟에 들어있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을..
브로콜리 너마저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데뷔작부터 정규 2집까지 한정)은 대학생이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성가(聖歌)였다. 2010년 가을에 이 음반이 나왔고 나 자신에게 창피하고 브로콜리 너마저에게 죄송스럽지만 당시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의 전곡을 불법으로 다운로드를 하여 아이팟에 넣어 자주 들었다. (물론 이후에 CD를 샀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 신분으로 도서관에서 일을 했는데 정말 추운 겨울방학 때 일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들었던 이 곡은 정말 바깥의 추위도 그저 음악처럼 변하게 만들었다. 귓구멍을 막는 이어폰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까지...
덕원, 류지, 잔디, 향기, 계피로 시작했던 브로콜리 너마저는 1집 <보편적인 노래>의 활동을 마치고 탈퇴한 계피와 오랜 시간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던 향기가 2020년 3월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탈퇴를 하여 세명만이 남았다.
사실 좋아하는 밴드(혹은 그룹)의 해체나 멤버의 탈퇴는 마음 한 구석쯤 자리한 추억에 금이 가는 것 같아서 아프다. 김창완 밴드가 그랬고 오마이걸이 그랬고 서울전자음악단이 그랬다. 그래도 안심이 되었던 것은 남겨져 있는 '음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랬듯 함께한 '음악'이 있었다. 그래서 또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