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0대가 지나고 30대가 왔다.

어찌나 '불안함' 투성인지, 좋아하는 것을 해도 싫어하는 것을 해도

by 좋은음악수집가

20대를 꾸역꾸역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20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시오.'라는 문제를 낸다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다르겠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이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4:6 정도지 않을까? 늘 부정적이진 않았으니까.


대부분의 20대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거나 대학에 가지 않고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청년들일 것이며 그 속에서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쾌락을 즐기면서 현실을 자각하고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대학시절은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 살벌(?)했다.


나의 대학생활 4년 중 3년은 도서관에서 일을 했고 1년은 학교 카페에서 일을 했다. 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시는 대신에 용돈은 벌어서 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특히 학교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봤던 600번대의 예술 파트에서 당시 학교에 있던 한국 대중음악, 재즈, 록 관련 서적들은 거의 다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살벌한 음악적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아르바이트였던 셈... 그리고 남들이 전공서적에 나오는 심리학에 관련된 자료를 달달 외울 때, 나는 국내외 음악적인 역사를 외우고 있었으니 어쩌면 전공을 살릴 마음이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군대에 가기 전 나의 음악 성향은 '아이돌'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섞을 때 아이돌의 음악을 듣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편협한 사고방식을 뒤바꾼 곳이 바로 군대였다. 굳이 훈련병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자면 야간 불교 행사 시간에 시간이 남아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는데 당시 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스텔라현아는 '아이돌이 무슨...'이라는 생각을 사라지게 했고 모두가 하나 되는.. 마치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극강의 사기를 뽐냈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불교시간에 그걸 틀어줬다는 것...




훨씬 나의 음악세계가 넓어진 것도 10대보다는 20대였다. 남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시기에 나도 뛰어들었고 음반을 구입하는 것도 월급이라는 것을 고정적으로 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금이라도 아는 음악이 있으면 음반을 사기 시작했고 피아노가 주를 이루는 재즈 음반도 빼먹지 않았다. 당시 빌 에반스 트리오, 데이브 브루벡 쿼텟, 셀로니어스 몽크 등의 피아노 선율이 들어있는 음반을 많이 들으면서 쌓은 얕은 지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주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카카오 브런치에서 나의 소개글에 '27세 클럽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으나 아쉽게도 실패한...'이라는 문구를 적은 적이 있는데 딱 27세가 되었을 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7세를 넘긴 시점부터는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의 음악을 조금 알려주기도 하고 특히 홍대에서 알게 된 형님들과의 밤샘은 이제는 추억만이 남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직장인 밴드를 경험할 때, 당시엔 피아노를 건드릴 일은 거의 없었지만 당시 밴드 음악을 다시 시작한 후 홈레코딩에 대한 것을 접하면서 작업실에서 키보드를 조금씩 뚱땅거릴 때 신문물을 접한 사람처럼 신기해했다는 것뿐이었다. 제일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밴드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


밴드도 오래가지 못하여 아쉬움 속에 계속 일을 하다가 오랜 연인과 이별을 고하고 코로나19가 오더니 20대가 훌쩍 끝이 나버렸다.




세상의 모든 30대, 30대를 거친 사람들이 30대가 왔을 때, 과연 준비를 하고 30대를 맞이 하였을까? 나는 하나도 준비가 되지 않은 채 30대를 맞이했다. "그래도 아직 젊네"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아직은 젊다는 생각을 유지 중이고 20대들과 대화할 때, 조금은 나이가 있음을 실감하고 10대들과 이야기할 때는 '꼰대' 소리도 어느 정도는 듣게 되었다. 물론 인정한다. 고지식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가려운 곳은 꼭 긁어줘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줘야 하는 것이 어쩌면 삶의 본질인데 30대가 되어서도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다면 모든 것에는 '동기부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 중요하고 말고... 재미있게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20대가 지나고 30대가 왔다.



Duke Jordan - No Problem (1973)


오랜 인내가 필요하다. 마치 듀크 조던처럼. 물론 그의 불행했던 삶은 오롯이 그의 탓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는 다시 자신의 음악을 위해 '존버'를 한 셈이다. 재즈의 본토 미국에서 자신을 고용한 찰리 파커(1920-1955)가 세상을 떠나고 60년대에 접어들며 재즈의 인기가 식어갈 때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없었던 탓에 10년이 넘는 시간을 택시운전사로 보냈다.


다시 돌아온 재즈신에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미국이 아닌 덴마크, 약속의 땅인지 기회의 땅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재기한 그의 <Flight to Denmark>는 타이틀만 봐도 유추할 수 있듯 덴마크에서 발표했으며 그의 전성기를 또 한 번 가져다 주기도 했다.


이 곡을 내게 알려준 누나 한분과 맞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유일하게 내가 스물아홉에 담배를 시작했을 때 부정의 언어나 우려의 말들을 해주던 사람들과 달리 그분은 내게 "축하해!"라고 해주신 분이다. 담배는 몸에 나쁜 것이지만 정신건강에는 분명 좋다. 그리고 묘한 동질감과 함께 이 곡을 함께 들었을 때 추웠던 날은 그저 No Proble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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