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뭔가 하려면 '동기부여'가 확실해야 한다.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갈 때 먹어본 솜사탕도 엄마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갔는데 마침 솜사탕이 '맛있었기 때문에' 또 솜사탕을 먹기 전의 동기부여가 확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사에서 동기부여에 대한 예시를 들어보라고 하라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현재 무엇을 하든지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SNS는 나의 욕구(?)를 아는 것인지 광고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끔씩 광고로 띄워준다. 내가 피아노 학원을 등록할 때도 그러했다. 성인들이 많이 가지는 취미가 피아노라는 것을 광고하는 게시글을 보면서 마음에 있는 불씨가 톡! 하고 튀었다. 그동안 피아노를 두고 내밀었던 핑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실 용기를 내는 데 시간을 오래 잡아먹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20대의 넘치던 패기가 겁을 먹고 들어가 버린 게 분명했다. 노크를 해도 몰래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았다.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삼고초려 했는데 내 마음은 '피아노'라는 단어에 문을 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이모 두 분과 삼촌 한분이 계신데 그중 막내 이모도 악기를 전공하신 분이다.
작은 이모의 말씀에 '삼고초려'가 '삼초고려'가 된 순간이었다. 그래! 배우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일단 한번 문을 두드려 봐야 뭐라도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꿍하게 있으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성인반도 받나요?
정말 큰 용기를 낸 것 치고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는 오히려 후련했다. 답장이 오면 그때 또 생각하기로 했는데 답장은 생각보다 매우 느렸다. '지금 쯤 답변이 와야 하는데??' 하는 시점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답변이 와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았다. 시간이 괜찮을 때 방문하시라는 메시지가 왔을 때 마음이 놓였다.
"안녕하세요??"
"메시지 주신 분이시죠??"
"그렇습니다."
"피아노를 쳐본 적은 있으세요?"
"아... 그... 초등학생 때까지 쳤는데..."
"그럼 체르니 까지는 치겠네요?"
"아뇨... 바이엘만 오래 쳤고 체르니는 구경도 못했습니다."
"그럼 바이엘부터 하셔야 하나...."
"그... 그거 말고... 저는 피아노를 코드 반주로 하고 싶은데요..."
자신감을 냈다. 물론 악보를 보고 칠 줄 알아야 함이 기본이고 현란하게 치는 것도 멋져 보였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만든 노래를, 피아노가 들어가는 팝 음악을, 대중음악을 해보고 싶었기에 코드 반주를 원했다.
"다른 악기는 해본 적이 있으세요?"
"네! 기타도 쳤고 우쿨렐레도 쳤고 요새는 가야금도 배웁니다."
"칠 줄 아는 피아노 곡 있으면 한번 쳐보세요."
아주 당당하게 존 레논의 <Imagine> 도입부를 쳤다. 유일하게 제대로 칠 수 있는 그것! 기타를 오래 쳐서 코드를 조금 알았다. 악보를 전혀 볼 줄 모르는 것은 덤. 그래도 짤막한 실력(?)을 보신 선생님께서는 교육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코드 반주'를 원했던 나의 염원을 충분히 수렴하시고 레슨 일정을 잡았다. 나의 1주일이라는 시간에서 평일은 상당히 타이트했는데 일단 피아노 수업은 주 2회, 연습 1회로 잡았고 화요일에 배우는 가야금과 금요일은 학원 사정상 힘들다고 하셔서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이 되었다. 즉, 퇴근 후의 정말 나만의 시간은 금요일과 주말뿐!
대망의 첫 레슨, 나의 발목을 오랜 시간 붙잡았던 '바이엘'과 처음 맞이하는 '반주법'을 번갈아 가면서 시작했다. 사실 악보를 아예 볼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높은 음자리표는 사실 미취학 아동 때부터 배웠기 때문에 그 감각이 있었을 뿐 낮은음자리표는 아주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추구하는 나만의 습득 방법은 결국 '반복'이다. 근데 이걸 피아노 앞에서 깨닫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조금은 서글펐다. 적절한 동기부여와 가야 할 방향을 선정하여 계속 반복하는 방법을 일찍 알았다면 참 좋았으련만... 그러기엔 내가 피아노를 처음 맞이 했던 나이가 겨우 여섯 살, 그런 이치를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으니 그냥 어렸던 나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실이 여러 개 있는데 나는 꼭 2번 연습실을 고집한다. 2번 연습실에 누가 있으면 괜히 불안할 정도로.
그런데 부작용(?)이 있었다. 혼자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선생님이 옆에서 레슨을 하실 때면 온몸이 경직이 되는 듯한 느낌과 어깨는 올라가고 목은 점점 숙여지는 거북이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노랫말을 불렀던 김수희의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선생님 옆에 앉기만 했는데 나는 왜 굳어가는가! 그건 지난 세월 동안 겪은 많은 선생님들의 무서움이 한몫했을 것이다. 아! 저를 가르쳐주신 모든 선생님들 기뻐하세요! 저는 여전히 저에게 영향을 주시는 선생님을 하늘로 생각한답니다.
그래도 다행히 발전이 있었다. 악보를 보고 차근차근히 나아가는 어린 친구들이 반주법을 어려워하는 반면 여러 건반을 동시에 누르며 전진하는 반주법에서 나는 매력을 느꼈다. 기타를 비롯한 여러 악기들을 천천히 익혀 나가며 적응된 코드들이 피아노에도 그대로 적용되니 코드가 적은 음악을 조금은 칠 줄 알게 되었다. 아! 나의 첫 자작곡인 <12월의 비>도. (모르신다면 꼭 <그래요. 12월에는 비가 오겠죠.>를...)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나고 나서 오랜 숙적인 '바이엘'을 제압할 수 있었다. 사실 말이 제압이지 바이엘을 떼는데 나의 머리와 손이 화합을 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하나를 넘으면 작은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고 헐 떡 헐 떡 거리며 정상에 오른가 하면 점점 오르막 길뿐이었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선생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저... 치고 싶은 곡이 하나 생겼어요."
이츠와 마유미 (五輪真弓) - 恋人よ (1980)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이츠와 마유미가 1980년에 발표한 싱글. 그리고 정규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시원시원한 가창력은 물론이고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고 특히 이 곡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암암리에 알려진 일본 음악들 중에서 절절한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이츠와 마유미의 프로듀서였던 키다 타카스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는데. 이츠와 마유미가 장례식에 참석해서 그의 아내의 모습을 보고 지은 곡이 바로 이 곡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이곡이 담긴 음반들이 중고 음반 시장에 약간 높은 가격(30000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었는데 내가 일본에 갔을 때 100엔 코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던 음반이라서 황당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언젠가 이츠와 마유미가 피아노를 직접 치며 이 곡을 부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절절한 표현력이 그녀의 손가락부터 표정까지 드러나는 것을 보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