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일, 조카가 세상을 안으며 밖으로 나왔다. 예정보다 2주나 빠르게 나왔고 자신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조금 더 빨리 보여주려고 나온 것 같았다. 그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생은 딸의 귀엽고 깜찍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가족들이 있는 채팅방과 SNS에 남길 때마다 가족들은 환호했다.
사실 가족 중에서 내가 가장 멀리 산다.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가족이 그리울 때가 오면 꼭 가족을 만나야 한다. 아니면 그리워지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먼 거리를 내려가서 만나는 것이 좋다. 그만큼 가족은 내게 소중하고 방전되기 직전의 나를 충전해주는 유일한 보금자리니까.
가족이 소중한 나에게 가족이 한 명 더 생겼다니 그 자체가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가! 1년 동안 나의 기조(基調)는 '조카는 사랑이어라!'였다. 정작 동생은 나의 기조를 보면서 엄청 웃었지만 정말이지 조카는 정말 사랑이었다.
조카와 삼촌의 첫 만남. 첫 만남에서 유일하게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다.
작고 소중한 조카, 서윤이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 본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울지 않고 오히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동생이 보고는
"하긴.. 오빠 얼굴이 신기하게 생기긴 했지." 하며 흐뭇해했다. 서윤이가 접한 낯선 사람 중 유일하게 울지 않았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영광이 아닌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진 한 장을 남긴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행복이었다.
2022년 9월의 마지막 날, 서윤이의 돌잔치를 하루 앞두고 아침 일찍 출발하여 경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도 엄마도 서윤이도 참 반가웠다. 동생의 집에 들어서면서 조카를 사랑해주는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선물들이 참 감사했고 나의 선물도 잘 보이는 곳에 있어서 아주 흡족했다.
"오빠야, 뭐 먹을래?"
동생이 내려오면서 핫도그 한 개밖에 먹지 못한 오빠에게 동생이 한턱 쏜다고 하니 그때부터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사겠다는 말이 나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잠시 후 엄마와 나와 동생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서윤이도 배가 고팠는지 칭얼댔다. 동생은 먹던 밥을 후다닥 두고 분유를 타고 오랜 시간 딸을 챙긴 후 다시 식사를 하러 왔다.
분유를 먹은 서윤이가 컨디션을 회복했는지 내 앞에 있던 된장국을 엎어버렸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긴 나와 달리 동생은 단호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동생이 대견스러우면서 놀라웠다. 엄마는 확실히 강하구나..
그러다가 내가 울음이 터졌다. 동생이 서윤이를 가질 때부터 낳고 나서 육아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데 동생은 애써 덤덤한 척 "왜 우는데~" 하다가 같이 울었다. 눈물이 많아져서 참 큰일이다.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본 서윤이가 엄마의 마음을 외삼촌의 마음을 알 까나? 지금은 몰라도 된다. 언젠가는 알지 않을까? 모든 것은 순리대로 움직일 테니까.
조카를 사랑한다면 좋은음악수집가 처럼! Uncle's Airplane!
대망의 돌잔치 날, 서윤이가 태어났을 때 기쁨으로 만든 <마카롱 베이비>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였지만 삼촌의 진심이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칠 때 서윤이도 박수를 쳤다. 그래! 나중에 삼촌과 대화가 통할 때가 오면 한번 더 불러줄게! 삼촌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단다.
엄마가 내게 "조금 더 크면 데리고 다니고 싶어 지제?"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이 정답이었다. 내가 어릴 적 이모들과 삼촌이 나를 많이 데리고 나들이를 다니셨던 것처럼 내가 받았던 사랑을 조카에게 쏟을 차례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잘 커가는 모습을 멀리서 사진으로 지켜보고 말이 통하는 시점이 오면 삼촌을 엄청나게 귀찮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난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서윤아~ 삼촌이 마술 보여줄게!" 하찮은 재주를 보이는 31세의 좋은음악수집가와 그것을 지켜보는 1세의 이서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생과 전화를 했다. 동생은 오빠에게 서윤이를 위해 만든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해주고 오빠는 동생에게 앞으로도 더욱 힘내자고 격려를 했다. 가족은 세상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귀하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서의 첫 조카는 어쩌면 내가 밝게 살아야 하는 삶의 이유가 아닐까?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떳떳한 외삼촌이 되도록 하자! 그거면 된다.
(사진을 따로 첨부하지 않았지만 서윤이를 위해 많은 인형을 선물해주신 연천군 청년공동체 '닻별쉼터'와 홍대 최고의 뮤직바 '하루뮤직바'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음악수집가가 소개하는 아티스트가 조카를 위해 만든 음악! 보통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 아티스트가 자식들을 위한 음악은 많이 있어도 조카를 위해 음악을 만든 사례를 찾으려고 하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곡을 준비하였습니다!
임성용 - 사랑하는 아이에게 (2017)
2014년에 데뷔한 뉴에이지 아티스트 임성용의 다섯 번째 싱글. 이 곡을 검색하면 장르는 태교로 되어있고 스타일은 자장가로 되어있을 정도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4분의 3박자로 이루어진 자장가다. 실제로 임성용 님께서 당시 태어난 조카를 위해 쓴 곡이라 한다. 자장가답게 자기 직전 하루 사이에 받았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들으면서 자보는 것은 어떨까?
JP Jofre · 이승희 - Sweet Dreams (2022)
비교적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곡, 아르헨티나 출신의 반도네오니스트 JP Jofre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는 연주자로 그의 밴드 '하드 탱고 챔버 밴드(Hard Tango Chamber Band)'는 팀 이름에 탱고가 있을 만큼 아르헨티나의 고유한 음악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그의 의지가 돋보인다. 이 곡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JP Jofre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더니 '이 곡은 뉴욕시티에서 아르헨티나에 사는 자신의 조카 Julia를 위해 썼습니다.'라며 답장을 보내주었다. 조카를 위한 자장가라는 말을 듣고 다시 음악을 들으니 정말 조카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질 정도다.
Bill Evans Trio - Waltz For Debby (1961)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Waltz For Debby는 재즈 입문곡으로도 매우 훌륭한 곡이며 최초의 녹음은 1956년, <New Jazz Conceptions> 음반에 1분 20초 정도 되는 짧은 길이로 녹음이 되었고 1961년, 자신과 함께하는 영혼의 파트너 베이시스트 스캇 라파로와 드러머 폴 모시앙과 함께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음반이 두장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그 음반이 바로 <Live At The Village Vanguard>와 <Waltz For Debby>다.
Debby는 빌 에반스의 친형 해리 에반스의 딸이며 나중에 빌 에반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데비 에반스가 삼촌을 추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록 영어라서 제대로 알아듣질 못했지만) 삼촌이 조카를 향한 사랑을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여담으로 이 곡은 어느 인터넷 라디오 방송의 엔딩곡으로 쓰였는데 그때마다 늘 아쉬웠던 것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