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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Nov 19. 2022

한 일(一)의 조화? 韓日의 조화!

도쿄비빔밥클럽 - Time Capsule

"이 시국에?"


 2019년 중순부터 한동안 계속 나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던 문장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옆 나라 일본과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것도 모자라 SNS상에 'No Japan' 등을 담은 대놓고 일본을 혐오하는 포스터를 프로필 사진으로 넣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근데 그렇게까지 해서 당신들이 얻는 것은 뭐였을까?


내가 일본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부모님도 알고 내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시국에?'가 가장 많이 쓰였던 2019년에는 "일본 음악을 왜 좋아해?"라는 질문을 숱하게 들었다. "어쩌다가 좋아하게 됐어?" 보다 "왜 좋아해?"를 많이 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두리뭉실한 대답을 늘어놨다. 두리뭉실한 대답을 내놓는 게 차라리 편했을지 모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면 상대방이 자칫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부지께서는 "어디 가서 음악이야기 길게 하면 안 된다. 여자 친구 만들기 어렵다."라는 다소 살벌한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기에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이 시국에?"라는 다소 정치적, 경제적... 다소 복합적으로 시비가 섞인 문장을 자주 들었음에도 나는 꿋꿋하게 나의 루틴을 유지했다. 늘 그랬듯이 음악이 좋은 일본 음반을 주기적으로 구입했고 주변에 많이 추천해줬다. 굳이 나의 사상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루틴'을 언급했는데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루틴이 각양각색이다. 스포츠(특히 야구와 탁구 같은 구기종목)를 즐겨본다면 선수들의 다양한 루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루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출근길을 갈 때 가는 길목으로만 간다던지 화장실은 끝 칸만 사용한다던지 식후엔 꼭 담배를 피운다던지 등의 루틴. 나의 루틴은 출근과 동시에 '식단표'로 시작한다.


"오늘 점심이 뭐지?"


하루에 잘 먹어야 한 끼를 먹는 나에게 점심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이 없다. 출근을 하자마자 나의 책상 위의 컴퓨터 본체에 잘 붙어있는 식단표를 보고 그날 점심이 어떠냐에 따라 나의 기분이 좌우된다. 사실 입맛이 그렇게 고급이 아니라서 대부분 나오는 식단표에 만족을 하는 편인데 '남자의 3대 음식'이라 불리는 제육볶음, 국밥, 돈까스가 나온다고 해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데 그것보다 제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매우 선호한다.


구역이 정해져 있는, 구역을 넘어버리는 순간 본연의 맛이 달아날 것 같은 투박한 식판보다는 모두 담을 수 있는 양푼이에 밥과 채소, 약간의 고기 그리고 고추장까지 넣어서 쓱싹쓱싹 비벼서 한 입! 입안에서 느껴지는 조화는 그저 훌륭함 그 자체다. 말이 필요 없다. 무엇보다 설거지도 간단하다. 나는 그런 한식이 너무도 좋다. 한 곳에 모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얼마 전 점심식사 메뉴에 비빔밥이 나왔을 때 정말 행복했던 것은 덤.




우리는 한마음 한 뜻으로 마치 '비빔밥'처럼~! 도쿄 비빔밥 클럽의 <Time Capsule> 2020년 작.


 도쿄비빔밥클럽의 Art Director는 가끔씩 연락을 드리는 종합예술인 이한주 형님께서 맡으셨다. 2019년 가을쯤, 홍대에 위치한 요기가 갤러리(현, 피터판)에서 한주 형님이 뭔가 작업을 하시는 것을 먼 발짝에서 봤는데 그게 이 음반인 줄 전혀 몰랐다.


"무슨 작업하시나 보네요?"

"응~ 일본에 계시는 형님이 부탁하신 게 있어서 작업 중이지~"


그때 그 형님이 '하찌와 TJ'의 하찌(본명 : 카스가 히로후미) 형님이라는 것도 음반이 나오고 나서 알았다. 찌 형님은 70년대의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Carmen Maki & OZ'의 기타리스트였고 우리나라에서는 강산에와 전인권 등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하시기도 했으며 하찌와 TJ를 결성한 후에 <장사하자>라는 히트곡까지 낸 아주 대단하신 분인데 이분이 도쿄비빔밥클럽에서도 기타를 치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음악적 한계가 전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음반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굉장히 길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유튜브의 힘을 빌렸다. 그렇게 처음 듣게 된 노래가 <도쿄아리랑(東京アリラン)>. 기타, 베이스, 드럼, 장구 그리고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리듬에 1호선에 몸을 맡긴 나는 벌써부터 어깨를 조금씩 들썩 들썩이고 있었다.


썸네일은 도쿄비빔밥클럽의 1집 초판의 표지다.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한글로 된 팀명이 인상 깊다.


왼쪽부터 카스가 히로후미, 테라오카 노부요시, 변인자, 기무라 타카노부, 박보 / O에 있는 인물은 오재수. (본인촬영)
허이여~ 허허허 허이예~~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허이여~ 허허허 허이예~~ 도쿄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오!!! 미쳤네 정말!! 이게 뭐야!!'

아주 선명하게 정확하게 들리는 한국어! 그리고 아리랑! 세상 살면서 일본어가 훨씬 익숙한 일본 밴드에게서 그것도 '아리랑'의 소절을 듣게 될 것이라는 상상이나 해봤을까? 그리고 제목부터가 일본의 수도 도쿄와 우리나라의 전통민요 아리랑을 합친 제목, 이것이야 말로 의 조화가 아닐까?


사실 일본에서 결성된 일본의 밴드지만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묻어있다. 그래서 도쿄비빔밥클럽의 음악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중앙에 보이는 사진이 결성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 박보, 카스가 히로후미, 테라오카 노부요시, 오재수, 변인자 (본인촬영)



<트랙리스트>

1. 바람바람 (パランパラン) 작사,곡 카스가 히로후미

2. 꿈에서 조차 (夢さらさら) 작사,곡 카스가 히로후미

3. 도쿄아리랑 (東京アリラン) 작사,곡 박보

4. 이로하 (いろは) 작사,곡 카스가 히로후미

5. 고래사냥 (鯨狩り) 작사,곡 송창식 / 편곡 박보

6. 군밤타령 (やきぐりタリョン) 민요

7. 상마분패 (相馬盆唄 / 소오마본우타) 민요

8.  (唄 타) 작사,곡 카스가 히로후미

9. 성주풀이 (ソンジュプリ) 민요

10. 이제 그만두게 (もうやめにしておくれ) 작사,곡 박보

11. 진달래 (チンダルレ) 원시 강은교 / 역시 이바라기 노리코 / 작곡 카스가 히로후미

12. 위를 보고 걷자 (上を向いて歩こう) 작사 에이 로쿠스케 / 작곡 나카무라 하치다이

13. 제주도 타령 (済州島タリョン) 민요

14. 도라지 (トラジ) 민요


 아쉽게도 11번 트랙부터 14번 트랙까지는 음반에서만 들을 수 있다. 즉 초판에 수록된 곡은 1~10번 트랙뿐! 10곡은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12번 트랙은 사카모토 큐(坂本 九)가 1961년에 발표하여 1963년에는 빌보드 Hot100에 3주 동안 1위에 오른 <Sukiyaki(스키야키)>라는 곡이다.(안타깝게도 사카모토 큐는 1985년 8월 12일,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시간 한국에서 활동한 카스가 히로후미 형님의 감미로운 우쿨렐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11번 트랙은 강은교 시인의 <진달래>를 번역하여 노랫말을 붙였고 13번 트랙과 14번 트랙은 우리나라의 민요를 도쿄비빔밥클럽의 스타일로 소화했다. 정말 듣고 싶은 분이라면 사서 듣는 방법 뿐인데 이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 2곳!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피터판 그리고 역시 홍대입구역 인근 하루뮤직바에 위치한 널판에서 구입이 가능하니 얼른 구입하여 이들의 음악을 찬찬히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좌) 1996년에 묻혔던 타임캡슐이 2020년이 되어 세상에 나왔고 / (우) 그들이 한데 뭉쳐 2020년 3월 9일에 재결성 기념 공연을 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 글을 빌어서 제일 감사한 분은 다름아닌 카스가 '하찌' 히로후미 형님이다. 사실 하찌형님과 홍일점인 변인자 님을 제외하고는 멤버 이름을 전혀 몰랐지만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하여 친절히 알려주셨다. 그러고 보니 알려주신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는구나... 언제쯤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거의 다 끝났는데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는다.



2022년 11월 13일 기준으로 홍대에 위치한 널판(좌측사진)과 역시 홍대에 위치한 피터판(우측사진)에서 재고가 극소량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였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곳은 이 두곳 뿐이니 좋은음악수집가가 추천하는 이 음반을 직접 느끼시는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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