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한번 해볼래?"
"글쎄..."
당기지도 않았던 것에 혹했던 것들이 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거액을 빌려달라는 제안은 모두 뿌리쳤다. 어차피 부자도 아니고 나 살기도 바쁘고 내가 음반을 구입하는 것도 벌벌 떨면서 구입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솔직히 (이제는 언급하기도 정말 짜증 나는) 코로나19로 삶이 많이 외로웠다. 타인과의 거리를 둬야 했고 걸리지 않으려고 퇴근하고 집에 틀어 박혔다. 그러다가 거리두기와 여러 가지의 제한들이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밖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왜냐? 안 그러면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
그동안 쌓여간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었으니 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웠던 1년 이상의 시간이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여기저기 발생하는 화(禍)를 두고 화(火)만 계속 냈다. 아무튼 그때, 신경에 거슬리는 모든 족속들의 '뚝배기를 깨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잘 참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잘 참았으니 칭찬스티커 10개)
나는 거절하는 방법을 여전히 익히고 있다. 사실 거절하는 방법을 가정이, 학교가, 혹은 국가에서 주도해서 나섰다면 각박한 세상이 되었겠지만 아직까지는 인류애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안타깝게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으로 자라나고 말았다. 거절하지 못하는 제안도 처음부터 거절할 마음을 단단하게 먹으면 괜찮은데 원래 제안이라는 것은 훅 들어온다거나 은밀하게 들어온다는 것, 그렇다고 매일 출근하면서 "거절! 거절! 거절!"을 외치면서 출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최근 들어 거짓말을 많이 했다. 잘 지내고 있냐는 말에 잘 지내고 있다는 그런 뻔한 거짓말. 사실 "잘 지내고 있어."에서 '잘'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튼 잘 지내건 못 지내건 나는 늘 잘 지낸다고 답을 한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라, 잘 살아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말하자. 목소리에서 티가 날 테고 만나면 얼굴에 다 써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하고 살아야겠다. 대신 선은 넘지 말기로 한다. 꼬리가 너무 길면 잡히니까, 천하의 좋은음악수집가가 혓바닥이 왜 이리 기냐고 물으시면 정말로 후달릴 것 같으니까...
거짓말은 그래도 거짓이라는 명확한 답이 있다. 내가 여전히 답을 못 내리는 것이 있다면 아래의 음악 중 4번 트랙 <딱 중간>의 가사 속에 있는데 그 노래가 내게 던진 질문은 이러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과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인 걸까 알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어.
이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가 2009년이고 곧 있으면 2023년이니 참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답을 못 내린 것이 내가 음악을 계속 듣고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계속 곱씹으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끝까지 답을 내리지 말자. 어차피 용서를 못하는 사람이나 용서를 받지 못하는 사람 둘 다 나쁜 사람일 테니!
아주 감사하게도 데뷔 EP 전곡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 올려주셨다. 특히 대부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들을 수 없는 4번 트랙 <딱 중간>을 이 영상에서 제대로 들을 수 있다!! (1~3번 트랙은 정규 1집을 통해 재녹음되어 나왔고 4번 트랙은 디지털 싱글로 재녹음한 버전으로 들을 수 있지만 처음의 그 느낌이 살지 않아 아쉽다.)
아침(Achime) - 거짓말 꽃 (2009)
01. 불신자들
02. 거짓말 꽃
03. 불꽃놀이
04. 딱 중간
참여 멤버 : 권선욱(보컬, 기타), 김수열(드럼), 박선영(베이스), 이상규(기타) / 김경주 (객원 키보드)
붕가붕가레코드의 12번째 수공업소형음반 Achime의 <거짓말 꽃> (본인 소장) 붕가붕가레코드의 작업방식은 수공업 소형 음반과 공장제 대형 음반으로 나뉜다. 전자는 붕가붕가레코드에 소속된 아티스트 및 전 직원이 모여 종이 CD 케이스에 라벨지를 붙이고 음악이 담긴 CD를 대량으로 구워서 포장까지 직접 한다. EP에서 반응이 좋으면 정규 음반 형식의 공장제 대형 음반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는 공장으로 보내기 때문에 전 직원들의 수고를 덜게 된다. 장기하와 얼굴들 1집이 나오기 전 <싸구려 커피>도 수공업 소형 음반의 형태로 세상에 먼저 공개되었다.
음반에 붙어있는 스티커, 참여한 멤버와 프로듀서 그리고 곡의 목록들이 꽤나 상세하게 적혀있다.
고등학교 3학년의 끝자락, 수능도 끝났고 수시를 지원한 두 곳의 대학교를 갈 수 있느냐 마느냐의 기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심지어 그 두 군데의 학교 중 한 군데는 면접을 가지 않았다.) 수시의 결과는 참혹했고 내 위로 35명이 있었다.(근데 그 학교를 추가합격으로 들어갔다.) 이제 막 인디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붕가붕가레코드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며 성인이 되기 전의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붕가붕가레코드 2군(Achime, 치즈스테레오) 아티스트들이 전국투어를 돈다고 하여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고 그들이 대구로 내려오는 날에 맞추어 어차피 수능이 끝나서 학교도 일찍 마치겠다 자유도가 꽤나 높았던 나는 망설임 없이 모아놓은 용돈으로 대명동에 위치한 계명대학교로 가야 할 것을 성서에 위치한 계명대학교로 가버리는 매우 어마어마한 실수를 해버린다.
뒷면에는 나의 본명이 적혀있어서 따로 찍어 올리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의 사인은 뒷면에 있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서 성서에서 대명동으로 도착 후에 남아있는 돈이 약간의 차비와 음반을 살 수 있는 돈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공연 시작 전에 도착했고 좋아하는 두 밴드의 공연을 본 후에 그들의 음반을 사서 사인까지 받은 후 지금도 잘 가지고 있다. 이후에 Achime은 2년 후에 다시 만났는데 대학생활에 절어있던 나를 보고 보컬 권선욱 형님은 "왜 이렇게 불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이후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아마 홍대를 돌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을까?
Achime은 잊을만하면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여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물론 그들이 해체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좋은 음악을 위해 쉬고 있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