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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Jan 29. 2022

아부지와 나

반쪽짜리 음악인이 아닌 반의 반의 반쪽 뮤지션의 삶의 이야기

아빠 혹은 아버지라는 표현보다는 나는 늘 '아부지'라는 표현을 쓴다. 나이 서른하나에 '아빠'라고 하면 철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비칠 것이고 그렇다고 '아버지'라고 하면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기에 타협점을 찾아서 '아부지'로 부른다. 그래서 늘 전화통화를 할 때는 "아부지예~"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아버지와의 유대감이 그만큼 잘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하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 몇 분이나 하실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는 가족들(그리고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다 보니, 보고 싶은 날이면 전화기를 들고 바로 전화를 거는 편이다.

특히나 인생에서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인생선배를 찾아 조언을 구해야 뭔가 막히는 부분이 서서히 열리는 느낌이 드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앤 랜더스'의 <나의 아버지는 내가>의 한 구절에서


'서른 살 때,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라는 구절은 지금 시기에 가장 공감이 되고 울림이 있는 구절이 되었다.




인생의 중대사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통화할 때는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길을 걷다가 나오는 음악의 멜로디가 익숙한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머릿속을 맴도는 곡들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한다. (아주 좋은 핑곗거리!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건 덤!)


"아부지예~"

"어이!~ 그래 와 전화했노?"

"(흥얼흥얼) 이 노래 제목이 뭔지 아세요?"

"이야~ 니 아직도 그 곡을 모르냐?"

"아니 아니 아니... 노래는 알죠 근데 제목이 생각이 안 났죠."

"Lobo의 <I'd Love you to want me>(1972년 작.) 아이가"


Lobo가 1972년에 발표한 음반. 이 음반에 그 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런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대화를 할 때마다 나 정도의 수준이면 아버지의 음악세계(특히 팝 음악)의 수준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던 나의 자만이 정말 쓸모없음 실감한다. 나의 외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 몇몇 계시고 그분들 중 한 분에게 피아노를 잠시 배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음악적인 세계관을 형성해 주신 분은 아버지셨고 아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도 아마 당신께서도 유심히 지켜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중학생 때 비틀스에 충격을 받아 하루 종일 듣는 음악이라곤 비틀스의 음악뿐이었던 아들에게 "비틀스만 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시며 팝 음악이 무엇인지 당신께서 학창 시절에 들으셨던 팝의 명곡들을 정말 하나하나 알려주시고 특히 ABBA(1972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4인조 혼성 팝 그룹)와 Bee Gees(영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결성되어 영국에서 활동하여 전설이 된 3인조 팝 그룹. 디스코 장르를 세계적인 장르로 만든 장본인)의 음악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는 정말 음악에 진심이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는 어릴 때부터 팝송을 부르고 다닌 거 아나?"

"제가 어릴 때부터 팝을 불렀다고요?"

"기억 안 나냐? ABCDEFG(알파벳 송) 맨날 부르고 돌아다녔는데"


가끔씩 위트 있는 아버지의 농담을 지금은 자주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움이 늘 마음 한편에 있지만 온 가족이 전부 떨어져 살고 있어서일까? 정말 그리울 때 보고 싶지만 너무 멀리사는 나에게는 그 시간이 참 어렵지만... 괜찮다! 나는 어엿한 성인이 된 지 오래되었으니까!


'질풍노도의 시기에 방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현실화시키려 했을 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했던 아버지의 속은 부글부글 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들의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을까?'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른다.

내가 첫 자작곡을 들려드렸을 때도 데모 음반을 만들었을 때도 아버지는 반대하시지 않으셨고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첫째 아들이 '좋은 방향'을 잘 찾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좋은 방향은 살다 보니 잘 잡은 거 같은데 여전히 아들은 새로 맞이한 서른한 살에서 즐거운 방황 중이다. 머릿속은 늘 재미난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게 흠이지만 요새 아버지는 "아빠는 이제 아무 걱정 없다."라고만 하신다.



퇴근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사는 이야기.. 아버지랑 통화하면 일단 기본 20분은 넘어가는데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랑요? 어머니가 아니고요?"의 반응들이다. 어머니 이야기가 안 나와서 어머니가 많이 섭섭해하실 수 있겠다. 사실 어머니 하고는 길게 통화해야 5분을 채 못 넘기니까! (그래서 에피소드가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브런치 글 하나 발행할 때마다 가족들이 함께 있는 카톡방에도 공유를 꼭 한다. 몇 달 전에 발행한 <그래요, 12월에는 비가 오겠죠> 편을 아버지가 보시고는..


"그때 교회 다닐 때 만난 아이지? (헤어진 후) 너 위로한다고 뷔페 데려갔는데."

"맞아요 기억해요! 그때 그곳"

"기억하는구나~"

"그때도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앞으로도 많을 거야.' 하셨지요"

"좋은 사람 만나야지~ 하늘에 맡겨라 인간의 지혜로는 구별이 어려워"


역시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이 더욱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고 계신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뭐 언젠간 만나지 않겠어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저의 아버지께 카카오톡으로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부지예~ '아버지와 아들', '가족'하면 떠오르는 곡이 무엇이 있을까요?"

5분도 걸리지 않아 답장이 왔습니다!


"Anthony Quinn의 곡인데....... 번안곡........."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 맞죠?!"

"OK~!"


저의 아버지의 추천곡은 앤서니 퀸과 어린이 가수 찰리가 부른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는 1981년에 발표되어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곡입니다.



그리고.. 보너스!


<아들내미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가 사랑한 팝송 명곡!!>

Bee Gees - How Deep Is Your Love

3형제 (베리 깁, 로빈 깁, 모리스 깁)로 이루어진 트리오, 비지스의 1977년 빌보드 차트 1위에 빛나는 곡이자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ost. <토요일 밤의 열기>에 수록된 'Stayin' Alive'와 'Night Fever'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려놓았다.

비지스를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수많은 명곡 중에서 항상 이 곡을 제일 많이 언급하셨던 기억이 난다.


Chicago - Hard To Say I'm Sorry/Get Away

1982년, 시카고는 16집을 발표하게 되고 미성의 보컬이자 베이시스트 피터 세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한 이 곡은, 온 가족들과 함께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아버지께서 "시카고의 최고의 곡은 단연 이곡!"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곡이다.

물론 당신의 아들은 뒤에 이어서 나오는 'Get Away'까지 좋아해서 두곡이 합쳐진 곡을 올려본다.


Jackson Browne - The Load Out/Stay

어쩌면 공허한 공간을 천천히 자신의 음악으로 채워나가는 잭슨 브라운과 그의 밴드는 정말 천천히 쌓아 올리는 멜로디가 마냥 공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 아버지께서도 이곡을 처음 들으신 날, 그날을 천천히 여유롭게 보내셨으리라...


ABBA - Dancing Queen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버지가 이 곡을 처음 듣고 느끼셨던 팝의 충격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다. "비틀스만 들어서는 안 된다." 하시면서 제일 먼저 들려주신 곡은 이 곡이었다. 언젠가 SNS에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세련된 노래는 언제 나와도 언제 불러도 그 세련함이 유지된다.'

이 말에 정말 적합하며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영원한 세련!


Dooleys - Wanted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개그우먼 조혜련이 '아나까나'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을 따라 부르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표정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부를 거면 부르지 마"라고 하셨다. 그래서 조혜련이 부른 곡이 TV에 나오면 채널을 그냥 돌리기도 했고 한동안 원곡도 듣지 않다가 다시 들으니 그때의 섬뜩한(?) 기억이 난다. 역시 오리지널이 최고다.


<오늘의 질문>

여러분들은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곡이 있나요?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추억하는 음악이 있나요?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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