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혹은 아버지라는 표현보다는 나는 늘 '아부지'라는 표현을 쓴다. 나이 서른하나에 '아빠'라고 하면 철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비칠 것이고 그렇다고 '아버지'라고 하면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기에 타협점을 찾아서 '아부지'로 부른다. 그래서 늘 전화통화를 할 때는 "아부지예~"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아버지와의 유대감이 그만큼 잘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하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 몇 분이나 하실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는 가족들(그리고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다 보니, 보고 싶은 날이면 전화기를 들고 바로 전화를 거는 편이다.
특히나 인생에서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인생선배를 찾아 조언을 구해야 뭔가 막히는 부분이 서서히 열리는 느낌이 드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앤 랜더스'의 <나의 아버지는 내가>의 한 구절에서
'서른 살 때,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라는 구절은 지금 시기에 가장 공감이 되고 울림이 있는 구절이 되었다.
인생의 중대사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통화할 때는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길을 걷다가 나오는 음악의 멜로디가 익숙한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나 머릿속을 맴도는 곡들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한다. (아주 좋은 핑곗거리!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건 덤!)
이런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대화를 할 때마다 나 정도의 수준이면 아버지의 음악세계(특히 팝 음악)의 수준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던 나의 자만이 정말 쓸모없음 실감한다. 나의 외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 몇몇 계시고 그분들 중 한 분에게 피아노를 잠시 배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음악적인 세계관을 형성해 주신 분은 아버지셨고 아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도 아마 당신께서도 유심히 지켜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중학생 때 비틀스에 충격을 받아 하루 종일 듣는 음악이라곤 비틀스의 음악뿐이었던 아들에게 "비틀스만 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시며 팝 음악이 무엇인지 당신께서 학창 시절에 들으셨던 팝의 명곡들을 정말 하나하나 알려주시고 특히 ABBA(1972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4인조 혼성 팝 그룹)와 Bee Gees(영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결성되어 영국에서 활동하여 전설이 된 3인조 팝 그룹. 디스코 장르를 세계적인 장르로 만든 장본인)의 음악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는 정말 음악에 진심이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는 어릴 때부터 팝송을 부르고 다닌 거 아나?"
"제가 어릴 때부터 팝을 불렀다고요?"
"기억 안 나냐? ABCDEFG(알파벳 송) 맨날 부르고 돌아다녔는데"
가끔씩 위트 있는 아버지의 농담을 지금은 자주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움이 늘 마음 한편에 있지만 온 가족이 전부 떨어져 살고 있어서일까? 정말 그리울 때 보고 싶지만 너무 멀리사는 나에게는 그 시간이 참 어렵지만... 괜찮다! 나는 어엿한 성인이 된 지 오래되었으니까!
'질풍노도의 시기에 방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현실화시키려 했을 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했던아버지의 속은 부글부글 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들의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을까?'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른다.
내가 첫 자작곡을 들려드렸을 때도 데모 음반을 만들었을 때도 아버지는 반대하시지 않으셨고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첫째 아들이 '좋은 방향'을 잘 찾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좋은 방향은 살다 보니 잘 잡은 거 같은데 여전히 아들은 새로 맞이한 서른한 살에서 즐거운 방황 중이다. 머릿속은 늘 재미난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게 흠이지만 요새 아버지는 "아빠는 이제 아무 걱정 없다."라고만 하신다.
퇴근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사는 이야기.. 아버지랑 통화하면 일단 기본 20분은 넘어가는데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랑요? 어머니가 아니고요?"의 반응들이다. 어머니 이야기가 안 나와서 어머니가 많이 섭섭해하실 수 있겠다. 사실 어머니 하고는 길게 통화해야 5분을 채 못 넘기니까! (그래서 에피소드가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브런치 글 하나 발행할 때마다 가족들이 함께 있는 카톡방에도 공유를 꼭 한다. 몇 달 전에 발행한 <그래요, 12월에는 비가 오겠죠> 편을 아버지가 보시고는..
3형제 (베리 깁, 로빈 깁, 모리스 깁)로 이루어진 트리오, 비지스의 1977년 빌보드 차트 1위에 빛나는 곡이자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ost. <토요일 밤의 열기>에 수록된 'Stayin' Alive'와 'Night Fever'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려놓았다.
비지스를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수많은 명곡 중에서 항상 이 곡을 제일 많이 언급하셨던 기억이 난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개그우먼 조혜련이 '아나까나'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을 따라 부르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표정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부를 거면 부르지 마"라고 하셨다. 그래서 조혜련이 부른 곡이 TV에 나오면 채널을 그냥 돌리기도 했고 한동안 원곡도 듣지 않다가 다시 들으니 그때의 섬뜩한(?) 기억이 난다. 역시 오리지널이 최고다.
<오늘의 질문>
여러분들은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곡이 있나요?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추억하는 음악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