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자리에 서 있었다2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바라보면, 먼저 낮은 돌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둥글둥글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툭 튀어나온 그 계단은 가운데가 살짝 닳아 있었다. 어린 발로 수없이 오르내리던 자리였다. 여름이면 맨발로 올라서며 돌의 따뜻함을 느꼈고, 비가 온 뒤에는 축축한 냄새가 은근히 배어 나왔다.
돌계단을 오르면 집 앞을 길게 가로지르던 툇마루가 이어졌다. 오래된 나무결이 살아 있는 마루판은 햇빛을 받으면 은은한 갈색으로 빛났다. 어른들은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들판을 바라보곤 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마루 밑에서는 먼지와 풀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나무 문살로 만든 여닫이문에는 하얀 문풍지가 발라져 있었다. 겨울이면 그 종이가 찬바람을 막아 주었고, 햇빛이 비치면 종이 너머로 방 안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비쳤다. 바람이 세게 불면 문풍지가 미세하게 떨며 바스락거렸는데, 그 소리는 지금도 어딘가 귀에 남아 있는 듯하다.
툇마루 안쪽에는 큼직한 나무 뒤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두툼한 나무판으로 만든 뒤주는 늘 곡식 냄새를 품고 있었다. 할머니가 뚜껑을 열면 쌀알이 살짝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집 왼편에는 검게 그을린 부엌이 있었다. 장작이 쌓여 있고, 아궁이 주변에는 재와 그을음 냄새가 늘 배어 있었다. 불을 지피면 장작 타는 냄새와 따뜻한 연기가 천천히 마루 밑으로 스며들었다. 밥 짓는 냄새가 마당으로 퍼질 때면, 그 집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검게 그을린 굴뚝 입구에서도 막 지은 밥 냄새와 타는 장작의 쌉싸래한 향이 섞여 저녁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해가 기울 무렵이면 그 연기는 더 낮게 깔려 지붕의 볏짚을 스치고, 마당을 건너 돌담 너머까지 조용히 번져갔다.
지붕은 두툼한 볏짚으로 덮인 초가였다. 오래된 짚 사이로 잡초들이 드문드문 자라 있었고, 바람이 불면 그 풀들이 먼저 흔들린 뒤 초가지붕 전체가 천천히 물결처럼 일렁였다. 어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집이 숨을 쉰다고 생각했다.
마당 한쪽에는 큰 대봉 감나무가 서 있었다. 가을이면 가지마다 묵직한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나는 그 나무에 자주 올라갔다. 거친 나무껍질을 손으로 짚고 조심스레 가지를 밟아 오르면, 얼굴 가까이 노랗게 익어 가는 감이 보였다. 하나를 따서 쥐면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무 위에서 내려다본 마당은 평소보다 훨씬 넓어 보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감잎들이 서로 스치며 바스락거렸다.
마당 건너편 외양간에서는 소가 느릿하게 여물을 씹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여물통에 여물을 담아 주곤 했다. 마른 짚과 겨가 섞인 고소한 냄새가 퍼졌고, 소는 한 번 나를 바라본 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 옆 돼지우리에서는 돼지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밥과 풀을 섞어 부어 주면, 서로 밀치며 먹이를 먹는 소리가 마당 가득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가끔 마당 한켠에 쌓아 둔 짚단 위에 올라가 눕곤 했다. 짚 냄새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바싹 마른 짚이 몸을 부드럽게 받쳐 주었고,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짚 사이로 바람이 스치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이어졌다. 두 팔을 머리 뒤에 괴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한여름 낮, 매미 소리가 들판을 가득 채우고 햇볕이 마당을 뜨겁게 달굴 때면 나는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얇은 종이부채가 들려 있었고, 천천히 부채질을 하면 바람이 얼굴과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부채 끝이 바람을 가르며 내는 가벼운 소리 사이로, 마루 밑에서는 서늘한 흙 냄새가 올라왔다. 그 시절의 여름은 분명 더웠지만, 이상하게도 지금보다 한결 부드럽게 느껴진다.
툇마루 끝에 앉으면 마당 너머 우물가가 보였다. 둥근 두레박과 물을 퍼 올리던 줄이 늘 제자리에 걸려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이면 할머니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큰 대야에 담아 두셨다. 그리고 나를 불러 세워 등목을 시켜 주셨다.
“가만히 있어라.”
할머니 손에 들린 바가지에서 차가운 우물물이 등에 쏟아지면 온몸이 번쩍하며 시원해졌다. 뜨겁던 공기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묻은 부드러운 손으로 등을 문질러 주시고, 다시 한 바가지 물을 끼얹으셨다. 물방울이 등을 타고 허리로, 다시 발등으로 흘러내릴 때면 저절로 웃음이 났다. 우물가에는 물이 흘러 작은 흙 웅덩이가 생겼고, 그 위로 햇빛이 반짝였다.
등목을 마치고 나면 다시 툇마루에 올라 앉았다. 초가지붕 위의 잡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 들판에서는 매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제는 그 초가집도, 외양간도 모두 사라졌다.
우물도 메워지고 툇마루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봉 감나무만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끔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는 날이면,
짚단의 바삭한 냄새와 감잎 스치는 소리가
어디선가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다.
On the thatched roof, tufts of wild grass swayed in the wind, while from the distant fields the sound of cicadas never ceased.
On days when the sunlight settles down softly,
the dry, crisp scent of straw
and the rustling of persimmon leaves
seem to return from somewhere far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