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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주고 상처받으며 이어지는 관계들

<사랑과 결함> 예소연 소설집 (문학동네, 2024)

by 엄마오리

<사랑과 결함>(문학동네, 2024)은 예소연(1992~ )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숭실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202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효석문학상,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5년에는 ‘등단 후 최단기간 대상 수상자’, ‘최연소 대상 수상자’ 등의 평을 받으며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되었다. 21년부터 24년까지 각종 문예지에 수록된 작품을 한데 묶은 이 책은 젊은 작가의 반짝이는 패기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책에는 모두 10개의 단편이 실렸다. 30대 비혼인 두 여자가 만나 서로의 삶에 끼어드는 ‘우리 철봉 하자’로 시작해 ‘미정’과 ‘희조’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걸친 애증의 성장담 3부작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가 펼쳐진다. 뒤를 이어 청춘을 바쳐 남동생을 키워낸 고모를 바라보는 조카의 시선이 담긴 표제작 ‘사랑과 결함’, 귀농과 함께 이혼한 아버지를 만나러 내려간 딸의 이야기 ‘팜’, 운동권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그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맏딸이 상주가 되는 ‘그 개와 혁명’, 할머니에서 손녀에 이르는 여성 삼대가 등장하는 ‘분재’, 친구들과의 여행을 계획했지만 낯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게 되는 ‘도블’, 빌린 돈을 떼먹은 친구를 찾아 군산으로 떠나는 ‘내가 머물던 자리’로 마무리된다.


소설집의 등장인물들은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관계를 이어 나간다. ‘아주 사소한 시절’에서 희조는 이름 모를 언니에게 아이스크림 한입을 뺏긴 후 미정 아빠의 자살을 목격한다. ‘비밀 친구’였던 희조와 미정의 관계는 미정의 전학으로 끊어지고, 희조는 지독한 학교생활을 보낸다. 둘은 일탈적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애증의 관계를 이어 나간다.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서로를 염오하고 끔찍한 생활을 반복했지만 결국, 그때의 나도 나일 뿐이었다.”(p.146) 어른들의 비밀을 엿보는 듯한 쾌감과 죽음에 대한 매혹은 희조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던지듯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결국 희조는 미정과 비슷한 ‘현수 언니’를 보듬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다양한 관계로 변조되는데, ‘사랑과 결함’에서는 시누이와 올케, 그리고 조카(이자 딸)로 표출된다. 남동생을 뒷바라지하느라 결혼 적령기를 놓친 고모 ‘순정’은 남동생의 아내인 ‘민애’와 그의 딸 ‘성혜’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사랑의 경쟁을 벌인다. 성혜가 순정에게 사준 로봇청소기가 ‘빈 벽에 제 몸을 부술 듯이 처박고’ 있는 모습은 순정의 맹목적인 사랑과 분노를 연상케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달려가서 끝내 전원을 끄지도 못하고 청소기를 끌어안는’ 성혜의 행동은 불안한 존재에 대한 포용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 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p.25) ‘우리 철봉 하자’의 ‘맹지’와 ‘석주’ 또한 서로에게 상처 주면서도 보듬는 관계를 이룬다. 그들은 크로스핏을 하며 만난 동네친구로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간섭받으며 친밀함을 쌓는다. 불안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서로 타박하던 그들은 석주가 해고되면서 한 집 살이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돌보는데 미숙했던 그들은 서로를 위무하며 마음을 다져나간다. ‘자신에 대한 염오’는 마지막 단편 ‘내가 머물던 자리’의 ‘시연’에게서도 읽힌다. 그는 빌린 돈을 받기 위해 친구 ‘정선’을 만나러 룸메이트 ‘미리내’와 함께 군산으로 향한다. 친밀한 관계를 갈구했던 시연은 비혼 할머니들과 함께 사는 정선을 보며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 p.331)이었음을 깨닫는다.


예소연의 소설은 젊은 여성 청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인생의 쓴맛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의 등장인물들은 세상과, 사람과의 불화에 분노하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 개와 혁명’에는 아버지를 ‘태수씨’라고 부르는 장녀 ‘수민’이 등장해 특별한 장례식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운동권 출신이지만 ‘요즘 여자들’에 대한 편견과 가부장적 태도를 가진 태수씨에게 분노하면서도 수민은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꼭 훼방 놓고야 마는 사람이잖아”라고 말하며 자신이 키우던 진돗개 ‘유자’를 장례식장에 데려오기를 청하는 태수씨의 유언을 지키는 수민에게서 독자는 세대 갈등을 뛰어넘는 사랑의 실천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난 마음을 주워 담는 사람이 되고 싶다”(p.360)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집에는 상처를 주고 받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그득하다. 때로는 그악스럽게 살아가면서도 기어이 곁을 내주는 그들의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가늠하게 해 준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주제의 변주로 이루어진 단편들이다보니 작품집의 통일성은 확보되었을지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약간 반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벼려진 칼처럼 가독성 높은 문장은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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