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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05. 2020

책과 영화를 통해 보는 한 자유인의 고난 서사

서평/영화리뷰 <노예12년> 솔로몬 노섭 (글항아리,2014)

19세기 초 미국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남부의 ‘노예주’와 임금노동에 기반을 둔 북부의 ‘자유주’로 나뉜다. 노예무역이 금지되기 시작하면서 노동집약적 플랜테이션 산업이 주를 이루었던 남부에서는 인력부족현상이 나타난다. 더 이상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납치해 노예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흑인 대상의 인신매매가 극성을 부리게 되고, 도망친 노예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는 ‘도망 노예법’ 또한 여기에 일조한다.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 <노예 12년>(글항아리, 2014)은 자유인임에도 불구하고 납치되어 강제로 가족과 헤어진 채 노예생활을 해야만했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함으로서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함께 노예제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1808년 뉴욕 주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솔로몬 노섭’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지낸다. 남부럽지 않던 삶을 살던 그는 1841년 바이올린 연주가를 구하는 백인 두 명에게 속아 워싱턴 DC에서 노예상인 ‘제임스 버치’에 의해 남부로 팔려간다. 자유인의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한 지은이는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포드’, ‘티비츠’, ‘엡스’ 세 명의 주인을 거친다. 1853년 캐나다 출신의 목수 ‘배스’를 만나 자신의 상황을 북부의 지인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하면서 솔로몬은 12년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혹한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지은이는 자신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놓지 않는다. 인디언 크리크 강가의 인디언 부족, 목화와 사탕수수 재배와 수확법, 제당소와 설탕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 노예들의 크리스마스 휴가에 관한 묘사 등 19세기 미국의 미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인간에 대한 통찰이다. 그가 거치는 세 명의 주인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선악의 논리에만 갇혀있지 않다. ‘포드보다 더 친절하고 고상하며 솔직한 기독교인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하지만 포드가 평생 살아오며 영향을 받고 관계 맺어 온 주변 사람들과 환경이 노예제 밑바탕에 내재한 악을 보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p.87) 개인의 사고와 그에 따른 행동은 사회의 속성에서 자유로울수 없고, ‘그가 속한 제도 자체의 잘못’은 노예주들이 그토록 잔인해 질 수 있는 원인에 한몫 하고 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영화 <노예 12년>(2013)또한 솔로몬의 노예 상황을 충실히 묘사한다. 그가 겪어야 했던 감정적인 굴곡은 치웨텔 웨지오포의 연기로 생생하게 표현된다. 감독 스티브 맥퀸은 빠른 호흡과 감각적인 편집대신 감정을 전달하는 롱테이크를 사용한다. 백인 목수 ‘티비츠’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목매 달리게 된 솔로몬을 잡은 컷은 2분 이상 계속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상황의 부조리함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장례식에서 그가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는 컷과 천신만고 끝에 쓴 편지를 태운 후의 절망적인 표정을 잡은 컷 또한 인상적인 롱테이크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을 넘어가지만 흡인력 있는 이야기와 연출로 관객을 끝까지 집중시킨다.


음악 감독 한스 짐머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음악의 힘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노예들을 앞에 놓고 부르는 티비츠의 노래는 보이스오프(voice off)1)로 이후 노동하는 장면과 전도사였던 포드의 예배장면까지도 이어지며 억압된 노예들의 삶을 암시한다. 노예들이 농장에서 일할 때 부르는 노동요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반주로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로도 힘이 있다. 육체적인 고통과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음악으로 인한 감정의 증폭을 억제하고 대신 매미 등 벌레 소리와 따뜻한 남부의 공기를 느끼게 하는 풍부한 앰비언스(ambience)2)를 사용해 임장감을 높인다. 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음악에 대한 감독의 자세는 감정적인 편파성을 띠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만듦새는 더 할 수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자유인인 노섭이 노예로 전락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86회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예술적인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만 절박한 노예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과도한 폭력장면은 관객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솔로몬이 납치된 직후 받게되는 린치나 ‘팻시’가 채찍을 맞는 장면은 날것의 폭력에 관객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여기에는 어떤 상상도 들어갈 여지가 없다. 고난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그러한 장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세부적인 사항에서 영화와 책은 차이를 보인다. 솔로몬이 세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영화에서 두 아이로 바뀌었고 실제로 노예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법적 도움을 준 헨리 노섭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솔로몬을 찾아 남부로 온 사람 또한 헨리 노섭이 아닌 파커씨로 등장한다. 책은 모든 서술이 사실에 근거했음을 강조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지향한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다면 솔로몬의 구출과정이나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루이지애나에 대한 세심한 관찰기 등 시간의 제약으로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디테일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캐릭터가 보이지않고 목소리만 화면 밖에서 들림

2) 특정공간에서 들리는 잡음, 백색소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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