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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an 13. 2021

이미지와 사유의 칼레이도스코프

서평 <일방통행로 사유 이미지> 발터벤야민 (도서출판 길, 2007)

20세기 문화비평가이자 전방위적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지금의 명성에 비해 생전에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원하는 공부를 하며 일생의 대부분을 읽고 쓰는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불화와 1차 세계대전 이후 불안한 정치적 영향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고, 나치를 피해 스페인 국경을 넘는 도중 망명이 좌절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후 게르숌 숄렘과 테오도르 아도르노에 의해 벤야민 전집이 출간되면서 문학, 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인용되고 연구되어 왔다. 


역사, 사상,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그의 글은 너무나 방대해 그를 규정하기 힘들게 한다. 친구이자 동료였던 한나 아렌트는 그의 책 <발터 벤야민>(필로소픽,2020)에서 그를 ‘문인’으로 평했다. 그가 생전에 출판한 책 중 유일하게 비학문적인 책인 <일방통행로>는 그러한 벤야민의 문학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역사적 경험의 차원으로 확대시키려 했다면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길, 2009)는 현대 도시의 길거리 이미지를 통한 아포리즘과 시적 은유의 집합체이다.  


벤야민은 연인의 이름을 따 ‘아샤 라치스 거리’라고 명명한 이 ‘일방통행로’를 따라 이미지와 사유의 만화경을 펼친다. 각각의 글은 제목과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주유소’로 시작된 첫 꼭지에서 벤야민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와 같은 ‘신속한 언어’들은 실천적 글쓰기의 형식으로 사회의 ‘윤활유’와 같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적 이윤추구를 위한 광고의 시대가 열리면서 더 이상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은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각각의 제목은 시적 은유와 같은 역할로 독자로 하여금 어떤 내용들이 펼쳐질지 기대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본문을 읽고 나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끔 만든다. 맥락 없이 전개되는 그의 전복적이고 파편적인 글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게끔 인도하지만 동시에 그런 점이 그의 글을 어렵게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 글에 등장하는 인용문들은 무장을 하고 나타나 한가롭게 지나가는 행인에게서 확신을 강탈하는 도적떼와 같다.’(p.149) 


그의 시선은 이미지를 포착하고 시적 은유를 통해 형상화한다. ‘담배 꼭지에서 담배연기가, 그리고 만년필에서 잉크가, 똑같이 가벼운 필치로 흘러나온다면 나는 문필가로서의 내 직업의 이상향에 있는 셈이다.’ (P.109) 글 쓰는 삶을 지향했던 벤야민의 흔적은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학식이 대단했지만 학자가 아니었고, 종교가 아니라 신학에 이끌렸지만 신학자는 아니었으며, 타고난 작가였지만 최대 야망은 전적으로 인용들로 이루어진 작품을 제작하려고 했던1) 발터 벤야민.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후광들이 벤야민의 작품에 접근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벤야민이 추구했던 ‘자기시대의 문제와 대결하는 날카로운 글쓰기’는 ‘문학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것 들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생산물과 연대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는 것’2)이라고 한다. 해제와 사상으로 독자에 대한 문턱을 높이기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 이미지적인 접근방법으로 책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사상가로서의 그를 접하기 전에 문필가로서의 벤야민을 만나는 통로로서 이 작품을 추천한다. 


1) <발터 벤야민:1892-1940> 한나 아렌트 (필로소픽,2020) p.30

2)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권용선 (역사비평사,2014)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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