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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Nov 21. 2021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두 음악가의 이야기

서평 <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문학과 지성사, 2013)

파스칼 키냐르(1948~)는 프랑스의 작가로 1969년 에세이 <말 더듬는 존재>로 문단에 데뷔했다. 음악가와 언어학자가 많았던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5개 국어를 습득하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은밀한 생>, <떠도는 그림자들>, <음악 혐오> 등이 있으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 공쿠르상 등을 수상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 (문학과 지성사, 2013)은 199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와 ‘마렝 마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음악과 인생, 예술 창작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소설로 엮었다.


‘나는 내 인생을 뽕나무 회색 나무판자에 맡겼소. 비올라 다 감바 7현의 소리와 내 두 딸아이에게 맡겼소. 추억이 내 친구들이오. 버드나무가 있고, 강물이 흐르고, 잉어와 모샘치가 뛰어놀고, 딱총나무 꽃들이 피어있는 곳이 내 궁이오.’(p.25)


‘생트 콜롱브’ 씨는 아내를 잃고 두 딸을 키우며 시골에 칩거하고 있는 음악가다. 뛰어난 작곡과 연주로 왕의 부름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평화롭고 고요한, 정원이 딸린 자신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에게 사사하기를 원하는 젊은 음악가 ‘마렝 마레’가 찾아오고, 콜롱브는 유예적인 태도로 마레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어느 날 마레가 왕 앞에서 연주를 한 것을 안 콜롱브는 그를 내치고 마는데….


아내를 잃은 생트 콜롱브는 상실의 아픔에 괴로워하고, 마레는 변성기로 인해 망가진 목소리로 성가대에서 쫓겨난다. ‘자네의 망가진 목소리가 나를 감동시켰네. 자네 고통 때문에 받아들였지, 자네 기교 때문이 아닐세.’(p.53) 마레를 제자로 받아들인 콜롱브는 그에게 바람에서, 사람들의 대화에서, 소년의 오줌 소리에서 음악을 발견하게 해 준다. 두 사람은 각자의 결핍으로 인해 음악에서 구원을 찾는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전신으로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바로크 시기에 귀족사회에서 즐겨 연주되던 악기다. 몸통을 바닥에 고정시키지 않고 다리사이에 끼워 연주하며 부드럽고 온화한 음색을 가진 악기로 알려져 있다. 몸에 밀착되어 부드럽게 연주되는 비올라 다 감바의 음색처럼, 키냐르는 음악에 진심인 두 예술가의 만남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그들은 노트를 바라보고, 다시 덮고, 앉아서, 조율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현을 짚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눈물들>을 연주했다.’(p.122)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이지만 음악 안에서 그들은 동지가 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생트 콜롱브와 마렝 마레를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본질을 탐구해간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p.75) 살아가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무엇을 얻거나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해야만 하는, 존재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 자체 또한 예술에 가까운 무엇이 아닐까?


120여 페이지의 중편 분량인 이 소설은 키냐르의 초반 작품으로, 담백하고 단순한 문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구성 또한 단순하지만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와 성찰은 예술이 갖는 의미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준다. 비올라 다 감바의 명장 조르디 사발의 연주를 들으며 예술과 인생에 대한 사색에 잠기는 독서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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