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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Dec 12. 2021

인간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서평 <음악혐오> 파스칼 키냐르 (프란츠, 2017)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1948~)는 음악가와 언어학자가 많은 집안 환경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악기와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오르간 연주가가 되려고 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음악 혐오>(프란츠, 2017)는 그가 1994년 음악을 그만두고 급성 폐출혈로 죽음 일보직전까지 간 1996년 사이에 집필된 에세이다. 


그 어떤 장르에 한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문학 작품을 집필하려 했던 키냐르의 책답게 <음악 혐오>는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정제된 언어와 깊은 통찰의 아포리즘은 여러 역사적 인물들과 에피소드로 풍부하게 변주된다. 베드로에서 아우슈비츠의 음악가로, 헤시오도스에서 백아 종자기까지, 시대와 동서를 종횡무진 누비며 ‘소리가 주는 고통과 음악의 지속적인 관계에 대해 질문’해 나간다. 


‘‘음악 혐오’라는 표현은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이에게, 그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p.189) 한때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던 작가는 왜 증오를 느끼게 될 정도로 음악을 혐오한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독자는 의문을 가진 채 키냐르의 언어를 탐색해 나가게 된다.


‘청각에 휴식이란 없다. 자명종이 귀에 호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각이 일시적으로 기능을 멈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향적 풍경이란 없다. 풍경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일정한 거리두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소리에는 그러한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p.106) 모든 감각 중 청각이야 말로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감각이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듣지 않으려 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고 키냐르는 말한다. 


작가는 베드로와 수탉의 일화를 통해 소리의 고통을 일깨운다. 예수의 예언대로 새벽 수탉의 울음소리에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베드로는 이후 노년까지도 모든 노래하는 새들을 참지 못하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나치에 의해 징발된 음악은 ‘수백만의 인간을 처형하는데 연루’되기도 한다. ‘영혼은 음악에 저항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영혼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 받는다.’(p. 199) 메조 소프라노였던 헤다 그라브케른마이어는 아우슈비츠를 나온 이후로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키냐르는 자신의 죽음에 어떤 노래나 소리도 없이 침묵하는 것으로 작별을 고해달라고 말한다. 


정말로 키냐르가 음악을 혐오했을까? 작가의 음악과 소리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따라가다 보면 더 이상 그 답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음악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고 탐색할 수 있는 독서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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