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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an 05. 2022

나무 위에서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다

서평 <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민음사, 2004, 이현경 옮김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언론인이자 작가, 소설가이다. 농학자인 아버지와 식물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과 밀접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이후 토리노 대학 농학부에 입학한다. 칼비노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로도 활약하는데, 그 때의 경험을 토대로 발표한 첫 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1947)은 ‘리치오네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소설 <나무위의 남작>(1957)은 그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하나로 나무 위에서 평생을 보낸 한 인물의 서사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직조한 작품이다. 


1767년, 열두 살이 된 ‘코지모’는 예의범절을 강요하는 부모님에게 반항해 집을 뛰쳐나와 자신의 의지로 나무 위에서 살기 시작한다. 책을 좋아하는 산적 ‘잔 데이 브루기’와의 조우를 통해 독서와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고, 철학자 및 과학자들과의 서신 왕래를 통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푼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과 왕정복고의 역사적 사건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 전체의 유명인사가 된다.


코지모는 일상의 모든 것을 나무위에서 해결하며  땅 위의 생활과 철저한 거리두기를 한다. 물리적으로 땅과 분리된 삶은 객관적인 시점까지도 담보한다. ‘형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형의 세상은 이제 좁고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나뭇잎의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졌다.’ (p.123) 그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땅위의 다른 이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땅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p.248)고 그는 주장한다.


지면과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지만 코지모는 땅 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는 이웃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하며 자신이 습득한 새로운 지식들을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코지모의 자세는 계몽주의의 현신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보편적인 인간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코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세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며 세상 모든 것,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은 세대의 출현으로 세상은 변해버렸다.’(p. 178) 


<반쪼가리 자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와 함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규범과 관습을 거부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작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다른 두 작품과 구별된다. 칼비노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전 생애를 통해 관철하는 인물을 만들었다. 고집스러우면서도 영민하고 사랑에 눈멀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코지모는 인간 본성에 내재된 인성의 지향점을 형상화 한 캐릭터가 아닐까? 타인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인간상은 니체의 ‘초인’사상과도 접점이 있다. 평생을 나무위에서 살겠노라는 의지를 관철시킨 코지모는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의 상징이다. 속세로 돌아오는 ‘차라투스트라’가 ‘몰락’하는 초인의 모습을 그렸다면 ‘나무위의 남작’은 실천하는 의지의 표상이다. 죽는 순간에도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기구와 함께 날아가 버린 주인공 코지모는 ‘나무위에서 살았고 땅을 사랑했으며 하늘로 올라갔노라’(p.374)라는 비석의 말처럼 사라져버린다. 


칼비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이고 가독성이 높다. 그의 자연 친화적 경험 또한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다양한 나무의 습성과 그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는 코지모라는 인물의 구체성에 힘을 보탠다. 나무 위 세계는 그 자체로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소설속 세계관에 힘을 보탠다. ‘형의 세상은 이제 좁고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 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유충들, 꽃자루를 흔드는 약한 바람에 떨리거나 나무 전체가 바람 앞의 돛처럼 휘어질 때 같이 흔들리는 울창하거나 성근 나뭇잎들, 그리고 그 나뭇잎의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졌다.’(p.123)


신념을 지키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거나 규범과 관습이 나를 얽매고 있다고 생각될 때,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불만이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칼비노의 낙관적 태도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으로 태어난 코지모를 통해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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