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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an 07. 2022

분열된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하다

서평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옮김 (민음사, 2010)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는 고양이 ‘톰’과 생쥐 ‘제리’가 등장해 이런저런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슬랩스틱 애니메이션이다. 간혹 톰 또는 제리가 내적인 갈등을 일으킬 때, 같은 캐릭터의 천사버전과 악마버전이 등장해 나름의 논리로 그들을 설득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선과 악을 캐릭터로 형상화 해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연출방법인데, 이후에도 여러 애니메이션에서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연출을 소설만의 방법으로 구현한 작품이 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소설<반쪼가리 자작>(1952)에서 선한 반쪽과 악한 반쪽으로 분리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은 갓 청년기에 들어선 인물로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상태에서 투르크인과의 종교전쟁에 참전한다. 그는 육박전 속에 대포로 돌진 하던 중 대포를 맞아 몸이 두쪽이 나버리고, 온전한 반쪽만 살아남아 들것에 실린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작은 검은 망토와 특별히 제작된 안장을 장착한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모든 것을 두쪽으로 만들고,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쉽게 사형에 처한다. 어느날 자작의 잃어버린 반쪽이 선함과 자비로 가득찬 채 마을로 돌아오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는 환상성으로 현실에 대한 거리감을 확보하고, 그를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시도한다. 규범과 관습을 거부하고 나무 위에서 일생을 사는 인물을 그린 <나무위의 남작>(민음사, 2004), 굳은 열망과 이념만으로 갑옷안에만 존재하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민음사, 2010)와 함께 <반쪼가리 자작>은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을 이루며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방법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비평적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분열된 인간의 내면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재현해 낸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반쪽짜리 메다르도 자작은 사악함의 끝판왕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든다. ‘완전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쪽으로 존재해야 하고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조각난 것에만 있다’(p.60)고 강변한다. 반면 뒤늦게 돌아온 ‘착한 반쪽’은 선하기 이를데 없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무례하게 그를 내쫓는 사람에게도 선을 베풀었다.’(p.94) 마을 사람들은 악한 반쪽과 착한 반쪽 사이에서 감정이 무감각해지기에 이른다. ‘비인간적인 사학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p.109) 


분열된 자아는 서로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양치기 소녀 파멜라를 차지하기위해 둘은 연적이 되고, 그녀의 옆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지만 이는 곧 자기 자신과의 결투였다. ‘자신이 존재해야 할 그곳을 고집스럽게 자기에게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들은 끝내 피를 부르고, 선상 의사였던 ‘트렐로니’에 의해 조각났던 두 몸이 비로소 합체되면서 ‘완전한’ 인간이 된다. 작가는 온전해짐으로 현명해지며 올바른 통치를 하는 자작을 보여주지만,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수 없다’고 말한다. (p.119) 파시스트 정권시기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통과했던 칼비노는 그 어느쪽도 우리를 구원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며 도덕적으로 분열된 현실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한 자작의 어린 조카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흥미롭다. 그는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라고 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혼자 흥분하지만 자신이 만든 환상을 부끄러워 하기도 한다. 테랄바를 떠나는 트렐로니를 따라가지 못하고 ‘의무와 도깨비불만이 가득 한 우리들의 세계에 남아있다’(p.121)며 한탄하는 모습은 마치 냉혹한 현실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작가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는 듯 하다. 흔히 환상소설은 현실도피의 판타지를 지향한다고 하는 일부 시선도 있지만, 칼비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를 통해 현상을 직면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120여 페이지의 길지 않은 작품으로, 재미도 놓치지 않는 동시에 다양한 함의를 품고 있는 <반쪼가리 자작>은 칼비노 작품세계로의 입문서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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