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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15. 2022

상처받기 쉬운 예민함의 시절

서평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문학동네, 2021)

즐겨 듣는 음악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많은 경우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 좋아했던 노래들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청소년기에 접했던 문화는 두껍게 찍힌 도장자국처럼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더불어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저 밑바닥에 가라앉은 기억 중 가장 강렬한 사건은 역시 누군가를 좋아했던 감정의 경험이 아닐까?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 2021)는 소설가 박상영의 첫 장편소설로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10대들의 사랑 이야기다. 그는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고 2019년 중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젊은작가상 대상, 2021년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술뿐 아니라 방송 예능과 라디오 게스트 등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으로 지금의 한국 문학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심리상담사인 주인공은 자신의 경험담을 실은 에세이집과 인터뷰로 유명세를 타던 중 ‘1004’라는 아이디의 사람에게 D시의 수성 못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지난 기억을 떠올린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외고를 준비하던 중학생인 ‘나’는 텅 빈 독서실에서 ‘윤도’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아무도 모르게 윤도에게 초콜릿을 전해주려던 나의 시도는  ‘무늬’에게 발각되고, 동성의 상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공감대가 형성된다. 나를 잘 따르는 동네 동생이던 ‘태리’는 여성스러운 행동과 취향으로 같은 또래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나는 그런 태리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윤도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지만, 자신의 성적취향이 발각날까봐 두려웠던 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태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만다.     


예민하고 치기어린 청소년 시절의 캐릭터들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 속 문화적 배경으로 장치된 만화책과 음악, 싸이월드와 미니홈피, 그리고 ‘캔모아’와 같은 공간의 디테일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Let 다이>와 <뉴욕 뉴욕>을 읽으며 남성들의 사랑을 배웠고, <별빛 속에>와 <노말 시티>에서 SF를, <X>와 <성전> <악마의 신부>에서 오컬트 문화를 흡수했다. 세상에 나를 위한 서사가 이토록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p.55) 작가가 촘촘하게 쌓아올린 세밀한 설정은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데 일조한다. D시의 수성구라는, 아마도 대구의 수성구로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배경 또한 당시의 입시와 부동산의 상관관계 속에서 특정 지어지는 사회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월드컵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독자라면 자연히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의 청소년기를 소환하게 되며 인생에서 가장 예민했던 시기의 향수에 젖어들게 된다.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퀴어 성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장편에서도 동성의 인물을 사랑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박상영의 작품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문학계에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의 등장’(김건형)이라는 사건을 일으킨다. 퀴어 청소년이라는 캐릭터는 안그래도 예민한 시기의 등장인물에 더 상처받기 쉬운 정체성을 부여하며 독자에게 증폭된 감정선을 부여한다. ‘맞아, 강태리 너처럼 약점을 세상에 드러낸 채 짐승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물어뜯기게 될까봐 두려워.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워. 두려워서 잠도 못 들어. 태리 너처럼 될까봐. 두려워 미칠 것 같아.’(p.322) 주인공이 갖는 강렬한 공포와 또 그만큼 절박한 연애감정은 독자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 전작에서 보여준 유머와 위트, 수다스러움 속에 숨은 우울함은 이번 작품에서 그 정도가 조금 약해 진 듯 하지만 장편 서사의 단단함은 기대이상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여전히 존재하고 문단에서조차 거북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고 하지만 박상영은 특유의 ‘되바라짐과 발칙함’으로 전진하고 있다.1)      


소설의 시작은 수성못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스릴러적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연애소설의 미덕을 충실히 따른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사랑은 절절하다. “그럼,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너와 나라는 점, 그 두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p.130) 작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구원이 되는 서사를 쓰고 싶었다고 후기를 남긴다. 청춘의 방황과 우울을 박상영 표 유머로 표현해 재미를 놓치지 않았던 작가의 전작들과는 약간 다른 결을 가진, 약간의 스릴러 적 요소 속에서 성장 서사의 몰입감이 탁월한 이 작품은 어쩌면 박상영의 작품세계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지도 모른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1) 박상영 되바라진 발칙함이 젊은 작가 미덕!”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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