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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04. 2022

‘나’를 찾아가는 어두운 길

서평 <작은 동네> 손보미 (2020, 문학과지성사)

소설가 손보미(1980~)는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담요>가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편 <디어 랄프 로렌>,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작은 동네>(2020, 문학과지성사)는 2018년 11월부터 교보생명 인문학 서비스 프로그램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를 통해 연재되었던 작품을 묶은 결과물이다. 


일본어 번역을 하며 대학에서 강의하는 ‘나’는 어린 시절 경기도 광주의 ‘작은 동네’에서 살았다. 부모님과 단란한 시절을 보내지만 ‘어떤’계기로 인해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와 단 둘이 서울로 올라온다. 어머니는 담낭암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의 인생을 복기하듯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데,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송년회에서 소속 영화배우 윤이소가 사라졌다는 사실과 함께 나의 기억속 기폭제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어머니가 죽기 전 남긴 많은 이야기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한동안 어머니가 남긴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닷 속에 던져진 사람처럼 말이다’(p.13) 어머니가 나에게 남긴 것은 과거였고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수 있었던 지나간 일들은 어느덧 벗어날 수 없는 늪으로 변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과거의 삶이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관계를 끊고 고향 섬을 벗어난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녀는 자신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었던 ‘분별력을 쉽게 잃는’ 이웃집 여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고 여기지만 언제나 우리가 그 일을 선택할 가능성은 백 퍼센트인 거야.’(p.235) 어쩌면 숙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그 선택은 과거가 되어 부지불식간에 현재를 장악한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주인공은 ‘실종’이라는 뉘앙스가 주는 신비스러움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행동에 옮긴다. 엄마의 친구였던 이웃집 여자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등진다. 관계의 소멸을 통해 자신을 리셋하려는 시도들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현재의 윤이소에게까지 이어진다. ‘사라져버린’ 윤이소는 과연 고통받고 있을까, 아니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사라진 윤이소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감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윤이소가 불행하게 살고 있을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지속하고 싶어서 무모한 도박을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삶은 그런 식으로 매 순간 판돈을 걸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p.310) 작가는 그런 선택을 하는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입장을 되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가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촘촘하게 쌓은 단서들과 서서히 벗겨지는 진실은 추리극의 형식을 띠며 흥미를 더한다. 분단 현실의 역사적 맥락인 간첩 조작 사건은 소설 속 개인사를 왜곡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충분치 않은 배경묘사로 인해 장치로 사용된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로 인한 아버지의 행동에서도 개연성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어린시절 주인공이 살았던 ‘작은 동네’에 대한 묘사는 마치 영화의 회상장면을 보듯 아련하고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인, 표백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며 몰입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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