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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r 01. 2022

미래를 향해 내딛는 연대의 한 발

서평 <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문학동네, 2021)

세상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사건 중심의 흥미진진한 페이지 터너 소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캐릭터의 힘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특정 시대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역사물로 영역을 나눌 수 있기도 하고 또는  그런 여러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작품도 있다. 그렇다면 소설가 박솔뫼(1985~)의 신작 <미래 산책 연습>(문학동네, 2021)은 어떤 경우일까? 부산이라는 공간과 8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배경으로 부유하는 주인공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형식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로 내리기는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소설은 연관성 없는 두 인물이 각각의 이야기를 펼치는 형태로 진행된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작가로 회사를 다니며 글을 쓰고 있다. 부산에 방문하던 중 충동적으로 아파트를 월세로 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최명환’과 그의 지인들, 이웃의 P등을 알게 된다. 또 하나의 축인 ‘수미’의 이야기는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이모(이지만 언니로 불린) ‘윤미’와 수미의 친구 ‘정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무 연관 없는 두 그룹을 희미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다. 나는 부산 용두산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미문화원 건물을 보며 그날의 사건을 곱씹는다. ‘백화점 건물 6층에서 미국에 80년 5월 광주에 관한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뿌리던 남자는 자신의 동료들이 건물 일층으로 들어가고 이후 계획대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건물을 에워싸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p. 51) 나는 방화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을 붙인 학생 중 한 사람인 김은숙 씨에 대해 생각한다. 교도소에서 나온 언니 윤미와 지내게 되는 수미는 윤미에 대한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다. 학교 담임선생님은 윤미에 대해 묻고 수상한 행동을 하면 자신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고, 누군지 모를 전화는 윤미를 찾으며 욕을 퍼붓는다. 친구 정승만이 수미의 곁을 지킨다. 


작가는 공간과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부산 중구 대창동의 부원아파트와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바뀐 부산 미문화원, 영도의 봉래 성당, 아파트 사이에서 보이는 호텔 토요코인 등의 묘사는 실제로 지도와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한 현장감을 준다. 부산의 공간들은 이곳의 길을 걷는 지금의 나에게 30년 전의 그 사건을 되새기게 한다.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p.91) 과거의 사건을 계속해서 소환하며 미래를 이야기 하는 작가는 ‘끌어온 미래도 이미 일어난 과거로 혹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로 믿을 수 있는가’(p.96)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러한 시간의 전복은 일어나버린 사건의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타임라인 속에 옹이처럼 박힌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는 여전히 미래로 여겨지고 내가 그리는 미래도 미래에는 다시 되살리고 싶은 미래가 될 것이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p.18) 암울한 현대사의 한 조각을 소환하지만 작가는 부채의식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쾌함을 잃지 않고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미래를 말한다. 최명환은 나에게, 수미는 정승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하며 소설은 끝난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작가는 밝히지 않지만 그들의 연대는 미래를 향해 내 딛는 한 발에 순풍의 역할을 해 주는 듯 보인다. 


작가 박솔뫼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한 후 2009년 소설 <을>로 제 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문지문학상, 김승옥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우리의 사람들>, 장편소설 <도시의 시간>,<인터내셔널의 밤>,<고요함 동물> 등을 발표했다. ‘낯섬, 전위, 구어체와 비문, 문체와 사유의 리듬감, 일상과 생활’이라는 박솔뫼표 소설의 특징은 이번 <미래 산책 연습>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 들을 끊임없이 풀어 쓴 듯한 문장들은 마치 독자가 주인공의 의식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인과관계가 뚜렷한 사건으로 이루어진 서사가 아니라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부산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연결되는 인물들의 존재감을 느껴보며 감상한다면 박솔뫼 스타일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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