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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Oct 26. 2019

반백살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통해 만나는 인생의 변곡점

서평 <레스> 앤드루 숀 그리어 (은행나무, 2019)

퓰리처상은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상이다. 신문왕 퓰리처(J. Pulitzer)의 유지에 따라 제정되었으며 1918년 이후 매년 문학, 저널리즘 등 19개 부문에 걸쳐 우수한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된다. 언론 부문은 미국 언론계에 종사하는 언론인만을, 그 외 예술 부문은 미국 국적의 작가만을 대상으로 한다. 매년 4월에 수상자가 발표되며 5월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상식이 열린다. 2018년 퓰리처상 위원회는 게이 소설가의 사랑과 인생을 그린 <레스>(은행나무, 2019)의 작가 앤드루 숀 그리어를 픽션부문 수상자로 선택한다. ‘나이 듦과 사랑의 본질에 관한 경쾌한 소설, 음악적인 산문과 광활한 구조의 책’ 이라는 평을 받으며 선정 사상 가장 과감한 선택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주인공 ‘아서 레스’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가다. 9년동안 같이 지냈던 연인 ‘프레디’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언하고 청첩장을 보내자 그의 결혼식에 가기 껄끄러웠던 레스는 그동안 미뤄왔던 문학관련 행사 초대에 모두 응하는 것으로 거절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유명작가와의 인터뷰(뉴욕),컨퍼런스 초청(멕시코시티), 문학상 참석(토리노), 겨울학기 강의(베를린), 모로코 횡단여행(사하라사막), 작가 레지던시(인도), 요리에 관한 기사작성(교토)등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세계여행이다. 그의 여행은 크고 작은 해프닝 속에  꿋꿋하게 진행되고, 그 모든 소동을 지나 레스는 집으로 돌아온다.


작품속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아서 레스’ 그 자체다. 그는 마음이 너무 여리고 ‘바보 사랑꾼’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다른 면으로는 평범’(p.140)하고, 생긴 것도, 행동도 어린애 같다. ‘가끔씩 다른 사람을 건드려 자기 신경계의 불꽃을 그들의 신경계로 송출할 수 있는’(p.141) 감수성의 소유자다. 어리바리한 독일어로 그의 독일인 학생들에게 ‘피터 팬’으로 불리는 그는 자라지 않은 어른아이 같지만 동시에 ‘늙어버린 첫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 이전 세대들은 에이즈로 죽어버리고 ‘레스 세대는 종종 쉰 살 이후의 땅을 탐험하는 첫 세대처럼 느껴진다.’(p.46) 전 애인인 천재시인 ‘로버트 브라운번’이 노년이 되고 그의 곁을 떠난 것처럼 레스는 자신의 늙어감에 당황하며 ’프레디’를 떠나보낸다. 그의 젊음의 상징과도 같은 파란 정장은 여행의 끝 무렵 ‘아름다운 회색정장’으로 바뀌게 되고 레스는 늙어버린 자신을 긍정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작가 앤드루 숀 그리어는 1970년생으로 작품 속 레스와 비슷한 나이다. 그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자) 배우자와 동거중이며 많은 부분 주인공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렸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과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강의 했으며 이탈리아의 ‘프레미오 그레고르 본 레초리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독자는 소설속 아서 레스의 행적에서 작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작가로서의 삶이라는 그 미친 조각보, 충분히 따뜻하긴 하지만 절대 발가락을 제대로 덮어주지는 않는 그런 조각보를 여기저기 때우고 기워야 했다.‘(p.41) 다른 수많은 소설들도 작가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유달리 이 소설에서 그런 부분에 예민해 지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의 성정체성 때문일 것이다. 사전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접하게 되는 독자는 남자들의 러브스토리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작가의 유쾌하고 발랄한 감각은 읽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게이(gay)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명랑한, 즐거운’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충분히 게이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쉰 살 생일을 맞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는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지나며 겪게 되는 한 인물의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삶의 모든 것을 겪고도, 굴욕과 실망과 상심과 놓쳐버린 기회, 형편없는 아빠와 형편없는 직업과 형편없는 섹스와 형편없는 마약, 인생의 모든 여행과 실수와 실족을 겪고도 살아남아 쉰 살이 되었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p.215) 중년의 위기를 겪는 레스를 통해 독자는 나이먹어간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기쁨을 잃지않는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인정, 세월이 만든 관성의 벽을 부수고 나와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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