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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Oct 25. 2019

인생의 황혼기에서 삶을 바라보다

서평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2010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미국 메인주 출신의 작가다. 1956년생인 작가는 어렸을때부터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 글쓰기에 매진하지만 작가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법학을 전공하고 법률회사에서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다시 글쓰기에 매진하게 해 1998년 첫 장편 <에이미와 이사벨>을 발표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내 이름은 루시바턴>, <무엇이든 가능하다>등을 속속 발표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올리브 키터리지>(문학동네, 2010)는 2009년 퓰리처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세 번째 작품이다. 미국 메인주 바닷가에 위치한 크로스비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쓴 13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작품은 동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입체적이며 단단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각각의 단편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저마다 다르다. 수학선생님으로 은퇴한 올리브는 친절한 남편 ‘헨리’, 외아들 ‘크리스토퍼’ 와 가족을 이루며 때로는 주변인으로, 때로는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약국을 운영하는 헨리와 그 여직원 ‘데니즈’간의 절실한 감정(약국), 자살을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케빈’이 올리브를 만나고 어린 시절 친구 ‘패티’를 구하게 된 사건(밀물), 피아노를 연주하는 ‘앤지’의 이야기(피아노 연주자), 외아들의 결혼식에서 피로를 느끼는 올리브와 그녀의 작은 복수(작은 기쁨), 거식증 소녀를 통해 사랑의 가혹함을 통과하는 ‘하먼’과 ‘데이지’(굶주림), 뜻하지 않은 위기 속에 서로의 아픈곳을 찌르는 올리브와 헨리(다른 길), 충만한 저녁을 보내던 노부부에게 던져진 과거의 파문(겨울 음악회) 등 마을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사건을 통해 인생이라는 태피스트리를 짜 나간다. 


주인공 올리브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며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깊은 슬픔을 보며 자신의 어두운 마음에 한줄기 빛이 비쳐들기를 바라는’(p.310) 심술궂음도 있지만 때로는 아픈 아이를 보고 눈물 흘리는 따뜻함을 가진 캐릭터다. 남편 헨리와 함께 은퇴 이후의 삶에 적응하느라 애먹고, 헨리가 떠난 후에는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p.483) 작가는 올리브를 통해 황혼기에 맞닥뜨리게 된 외로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나이 먹어도 여전히 인생은 녹녹치 않다. ‘결혼생활이라는 복잡하고 기나긴 식사가 끝나고 이제야 근사한 디저트가 나온 것만 같’은 순간(p.228) 과거에서 비롯된 ‘특정하고 친숙한 고통’은 ‘찐득한, 더러워진 은빛 액체가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더니, 이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만다.(겨울 음악회) 모처럼 만난 아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지난 사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달게’ 자고 희망에 찼던 올리브는 자신을 늙은 어린아이 취급하는 아들내외로 인해 지옥에 빠진 기분이 된다.(불안) 인생의 복병은 보이지 않는 곳에 꼼꼼히 숨어 있다가 무방비 상태를 노려 들이닥친다. 


그럼에도 작품은 삶이 아름답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려간다. ‘마치 측량할 수 없는 인생의 어떤 상실이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들어 올려지고, 바위 밑에서 예전의 위안과 다정함을 발견한 듯’(p.162)한 순간들.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 말로 삶의 큰 비결인 것이다. ‘그 가을 공기는 아름다웠고, 땀에 젖은 건장하고 젊은 몸뚱이들은 다리에 진흙을 묻히고 공을 이마로 받으려고 온몸을 내던지곤 했다. 골이 들어갔을 때의 환호, 무릎을 꺾고 주저앉는 골키퍼. 집으로 걸어가면서 헨리가 올리브의 손을 잡던 날들이 있었다.(중략)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사소하지만 손에 잡히는 친밀감의 순간들이 아닐까. 


스트라우트는 중년 이후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펼쳐낸다. 노년의 외로움과 인생의 무게로 고통 받고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묘사는 탁월하다.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p.403) 파편화되는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고독은 기본 장착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에서 올리브는 ‘자신의 자리’가 있음에 기뻐한다.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작가는 <Olive, Again>이라는 제목으로 속편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리브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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