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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Sep 18. 2019

인간 내면의 심연을 바라보다

 서평 <인 콜드 블러드> (2013,시공사) 트루먼 커포티

1959년 11월 15일 일요일 아침 캔자스 서부 홀컴마을 리버밸리 농장의 자택에서 클러터 일가 4명의 시신이 발견된다. 존경받는 시민이었던 ‘허버트 윌리엄 클러터’와 심약한 부인 ‘보니’, 착하고 예쁜 딸 ‘낸시’와 내성적인 사춘기 소년인 ‘케니언’의 죽음은 평화로왔던 시골마을의 일상을 뒤흔든다. 원한관계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던 이 가족을 대체 누가 죽인것일까? 미궁에 빠질듯하던 사건은 6주만에 범인을 잡아낸다. 클러터 가족과 아무 관계도 없던 두 사람, ‘딕’과 ‘페리’는 돈을 위해 일가족을 무차별하게 사살했던 것이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두 사람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작가는 이들의 행적과 주변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설의 모티브를 삼는다.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2013,시공사)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논픽션 소설이다. 저널리즘과 문학의 결합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 소설은 커포티 문학의 결정체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은 크지 않은 박스기사로 처음 신문에 등장했지만 커포티에 의해 작품화되어 발표되고 동명의 영화 <인 콜드 블러드>(1967)로도 만들어진다. 실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출간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논픽션 소설로서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커포티는 이 작품으로 대단한 호응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부와 명성을 얻는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허버트 일가 구성원에 대한 스케치 ‘그들이 살아 있던 마지막 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범인들의 행적과 마을사람들, 수사관들, 관계된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된다. ‘어떻게 그런 노력과 소박한 미덕이 하룻밤 사이에 이런 연기로 변해, 모든 걸 삼켜버릴 듯 공활하게 펼쳐진 저 하늘로 올라가 스러질 수 있단 말인가?’(p.126) 인과관계를 찾기 힘든 잔인한 범죄는 인간의 적의가 어디까지 어떻게 표출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커포티는 다층적이고 풍부한 인터뷰를 통해 범인인 딕 히콕과 페리 스미스의 심리에서부터 사건이 지역사회와 관계자에게 미친 영향까지 촘촘하게 구성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노트나 녹음이 아닌 기억력에 의존해 집필했다는 점에 의해 진실성의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어왔지만 발표 후 5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단순한 르포를 넘어 유려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문장으로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쳐 들어가는 작가의 집념어린 결과물이다. 


우리는 흔히 악명높은 범죄자들의 본성이 악의적이고 잔인하다고 믿고 보통사람들과는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이라고 분리해 버리기 쉽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이지만 페리는 희생자를 죽이기 직전까지도 ‘클러터 씨는 친절하고 좋은 신사분 같’다고 생각한다. “아주 깊은 곳, 마음 밑바닥에서는,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런 짓을 말이야.”(p.171) 작가는 범인들이 도주행각 중 히치하이크 하는 소년과 할아버지를 태워주는 장면 의 배치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년과 같이 빈병을 모아 돈으로 바꿔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은 다정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악의와 선의가 혼재하는 인간내면의 모순을 통해 그것이 결국 모두 인간 안에 존재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악인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인간인 것처럼 우리 또한 인간이고,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의 내면을 보는 것으로 연결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니체 <선악을 넘어서>중)  베넷 밀러 감독의 영화 <카포티>에서 보안관 앨빈 듀이는 자신의 책 제목이 <인 콜드 블러드(냉혈한)>가 될 것이라 말하는 커포티에게 ‘범죄를 지칭하는 말인지 아니면 범죄자들과 얘기하는 커포티 자신을 말하는지’ 되묻는다. 독자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잔혹한 범죄의 현장이 아니라 특정되지 않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의 발현이다. 


커포티는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주목받는 작품을 내지는 못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쳐 작가로서의 성공과 부와 명성 등 모든 것을 가진 듯 했으나 결국 알코올과 약물중독으로 삶을 마친 트루먼 커포티. 그의 <인 콜드 블러드>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복잡한 내면의 모습을 심도 있게 보여준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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