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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Nov 06. 2019

독서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

서평 <장정일, 작가-43인의 나를 만나다>(한빛비즈, 2016)

책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독자는 책을 통해 저자를 만나고 그의 생각의 편린들을 접한다. 소설가 장정일은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읽은 책의 작가를 인터뷰이로 불러내고 그 내용을 신문칼럼으로 연재했다.  그 칼럼을 엮은 것이 <장정일, 작가-43인의 나를 만나다>(한빛비즈 2016)다. 자기계발, 희곡, 만화, 예술, 역사 등 43인의 작가에 의한 43개의 화두는 읽는 이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장정일은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라고 할 수 있지만 독서가, 서평가로서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가 쓴 독서일기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시리즈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이의 선정은 전적으로 장정일 작가가 맡았다. 문화연구자, 일문학자, 음식칼럼니스트, 사진작가, 정치평론가, 극작가 등 그의 독서는 다양한 분야를 종횡 무진한다. 그중에는 ‘딴지일보’의 김어준,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 등 기존의 미디어를 통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더 많은 편이다. 시대, 교양, 인문학의 세 가지 키워드로 소설이나 시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교양의 세계로 안내한다.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 그것을 문서의 형태로 남긴 사람은 다 작가죠. 다시 말해, 작가는 자신의 사고를 언어와 문서의 형태로 남긴 사람, 그러기 위해 사고와 언어를 갈고 닦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런 뜻에서 작가는 굉장히 폭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소설가와 시인만을 작가라고 지칭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개념이죠.”(p.327)


장정일은 독서의 범위를 문학을 넘어 언어와 문서의 전 방위로 확장하고 낯선 작가를 소개해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 예로, <무감각은 범죄다- ‘저항의 미학’으로서 성 미학>을 쓴 미학자 이희원은 마르크스의 ‘대상적 활동’의 개념을 통해 성행위에 대한 이론을 개진한다. 육체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차원을 던져 쾌락이상의 것을 건져내는 성행위는 고도의 감수성으로 대상과의 융합 또는 소통을 지향한다. “삶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은 ‘정치의식의 잣대’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우리가 고도의 감수성을 마련하는 노력과 성찰의 노고를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경우에만 무감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p.183) 저자는  흥미로운 소재를 흥미롭지만은 않게 풀어가는 이 책을 손에 잡힐 듯 풀어내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동반자로 끌어들인다. ‘오르가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지 마라! 그 사람은 반드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정치를 하게 된다.’(p.185)


신문의 한켠에 연재하는 형식이라 지면 특성상 그 분량은 제한이 있었을 듯하다. 덕분에 각 인터뷰의 분량은 길지 않은 대신 많은 작가를 책에 담았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좀 더 작가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인터뷰가 끝나버린다. 내용이 짧다면 저자소개의 난을 이용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의 배려가 아쉽다. 인터뷰라면 대개 인터뷰이의 생각과 주장을 보여주며 동시에 인간적인 매력도 드러내주기 때문에, 독자가 작가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장정일 작가 본인도 말했듯이 작가들은 ‘서평을 완성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다니 인터뷰보다는 서평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실린 인터뷰에서도 나타났듯이 장정일이라는 렌즈를 통해 굴절 투과된 책의 상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인터뷰는 2007년부터 2015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여기에 실린 작가들과 그들의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면, 또한 인터뷰 이후 그들의 행보에 관심이 생긴다면 그 갈증을 적극적인 탐색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 이 책이 서평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드넓은 책의 세상에서 특히 인문 교양분야의 지도가 필요하다면 이 책이 그 역할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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