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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Nov 10. 2019

볼 수 없는 수많은 빛 중 하나

서평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앤서니 도어 (2015, 민음사)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민음사, 2015)은 앤서니 도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역사를 전공하고 순수예술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단편집 <조개껍데기 수집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1973년생인 그는 10여년의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세계 제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 2014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2015년 퓰리처상 문학부문과 카네기 메달 상을 수상하고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연속 134주 머물렀다.


눈먼 프랑스 소녀 ‘마리로르’와 독일의 고아 소년 ‘베르너’의 이야기는 1944년 생말로의 폭격으로 시작되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두 주인공의 자라온 여정을 소개한다.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쇠장인으로 일하던 마리로르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자신이 사는 마을을 모형으로 재현한다. 마리로르는 그 모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형을 익히고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를 읽으며 세상으로 나가는 힘을 얻는다. 동생 ‘유타’와 함께 보육원 ‘아이들의 집’에서 살아온 베르너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라디오를 통해 바깥세상에 눈뜨고 과학에 심취한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마리로르의 아버지는 박물관의 보물인 133캐럿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를 숨기기 위해 파리를 떠나고 베르너는 나치의 엘리트 소년 부대에 들어가 고된 훈련을 받는다. 전쟁은 점점 깊어지면서 두 사람의 세계를 조금씩 중첩시킨다.


소설은 두개의 시간 축을 갖는다. 1944년 8월 미군의 대대적인 생말로 공습 시기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두 주인공의 유년시절에서 시작된 과거의 시간이다. 같은 공간 가장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에 있던 마리로르와 베르너의 스토리는 촘촘히 쌓아올려져 설득력을 갖는다. 작가는 하나하나의 챕터를 쌓아 마리로르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파리 시내와 생말로의 거리처럼 단단한 구조를 가진 소설로 만들었다. 두 주인공이 서로 만나는 순간은 2권의 거의 마지막 부분, 단 하루의 시간이다. 하지만 독자는 이 견고한 성과 같은 소설의 구조 안에서 길을 잃는 법 없이 그들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중의 하나를 보게 된다. ‘그가 벽돌로 한 번 내리치자 칼끝이 캔에 구멍을 낸다. 그러기 무섭게 그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향은 몹시도 감미로워서, 정말 충격적일 만큼 감미로워서 그는 기절이라도 할 것만 같다..... 첫 번째 복숭아가 그의 목구멍 너머로 사르르 넘어가는 것이, 정말로 황홀하다. 마치 그의 입속에 태양이 떠오르는것만 같다.’(2권 p.373)


‘빗발치는 문자, 파도처럼 들고나는 핸드폰 메시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메일에서 광섬유와 전선의 광대한 네트워크가 도시 위아래로 얽힌 채 건물들을 지나고, 지하철 터널 속 송신기들을 활모양으로 잇고 무선송신장치를 내장한 가로등 기둥에서 나오는 가운데’(2권 p.458) 누구나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세계 제 2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눈먼 딸에 대한 극진한 사랑, 고아들에게 울타리가 되는 엘리너 아주머니, 레지스탕스의 원형을 보여주는 마네크 아주머니, 아이들을 위한 과학 라디오 방송을 띄워보내는 에티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수학 상으로는 어떤 빛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가는 전쟁과 역사라는 망망대해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작은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세기의 보물을 쫒는 나치 원사의 추격과 생말로 동네 아주머니들의 레지스탕스 활동 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박진감의 요소 또한 소설의 매력중 하나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가능한 이런 장치들은 페이지 터너의 역할을 한다. 다만 7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니?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역사를 전공했다는 작가의 전력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미국인에게 2차 대전은 수많은 이야기와 무용담의 원천이 아닐까?  어쩌면 미국인들에게는  2차 대전이 승리한 전쟁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발매된 이 책이 큰 인기를 얻고 퓰리처상까지 타게 된 것이 그런 점을 뒷받침한다.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다분히 미국적인 작품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한 개인은 작고 연약할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빛 그 자체다. 잘 짜여진 스토리의 구조와 인간성에 대한 선의의 믿음을 지닌 이 작품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도 나무랄데 없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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