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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un 08. 2023

자신의 언어로 영화보기

서평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교양인, 2018)


“종합 예술인 영화가 선사하는 인식의 다중성(多衆性, 多重性)은 영화라는 매체의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영화는 현대사회를 비추는 렌즈고,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정치적인 매체이다.”(p.14)


<혼자서 본 영화>(교양인, 2018)는 여성학 연구자이자 다학제적 관점에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정희진(1967~ )의 ‘영화 에세이’다. 그가 1997년부터 계속 쓴 ‘영화감상문’은 20년의 세월동안 포개져 한 권의 책으로 묶였고, 가족, 사랑, 외로움, 상처와 고통, 젠더와 정치에 관한 28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와 글쓰기를 지향”하는 그의 글처럼 자신만의 시점으로 다양한 영화읽기를 보여준다. 


실제로 극장에서 혼자 본 영화도 많았지만, ‘나만의 대면, 나만의 느낌, 나만의 해석’(p.13)또한 중요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몸은 없다. 그러므로 자기 몸(뇌)에 자극을 준 영화에 대한 해석은 모두 다를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회는 각자의 해석이 가시화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이어지는 사회다.’(p.13) 정희진은 영화라는 텍스트를 통해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했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 리스트는 국경과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작가는 영화와 다큐멘터리(「송환」, 「끔찍하게 정상적인」 등), 연극(「슬픔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논한다.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다큐멘터리 「송환」(김동원,2003)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읽으려는 시도에 작가 스스로 무모하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의 남성성에 관한 콘텍스트를 파헤치며 그 물적 토대가 된 여성들의 존재와 노동, 고통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에 등장하는 북한 남성 역할을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들이 맡은 것은 남한의 여성 관객을 겨냥한 판타지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펼치며 남북화해라는 ‘정치적 올바름’은 포장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며 고통을 직면하는 작가의 시선 또한 도드라진다. “‘침묵당함’은 또 다른 폭력이다. 상처를 숨기는 대신, 「거북이도 난다」(바흐만 고바디, 2004)에서처럼 고통에 대한 설명 불가능성을 향해 돌진하는 것, 자기 상처를 응시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p.160) 관계의 역학 속에서 생기는 고통과 상처를 마주하며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아물기 위한 최우선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다양한 영화에 등장하는 고통들을 자신의 몸으로 통과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신학자 C.S. 루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샤도우 랜드」(리처드 애튼버러, 1993)를 보며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고통을 투사하는데, 영화는 작가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정희진의 문장을 보며 위로를 받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영화 제작에 있어 감독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관객에게 보여준다. 모든 컷은 의도되었고 편집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전복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p.97) 관객이 존재함으로 비로소 영화는 완성되는 것이라도 말해도 좋지 않을까? 저자는 「문라이트」(베리 젱킨스,2016)의 결말을 놓고 전혀 다른 시점(사랑이 이루어졌다 VS 이루어지지 않았다)으로 읽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관객의 삶과 경험이 어떻게 스펙트럼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영화를 좋아해 ‘중독’이라고까지 말하는 작가는 영화를 통해 삶을 통찰하며 ‘정희진 식 영화 사용법’을 전파한다.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적을지 모르지만 작가의 시선이 오롯이 담긴 각각의 감상은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보는 것이 곧 나를 세우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TV나 컴퓨터, 심지어 휴대폰에서도 내가 원하는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OTT 구독료는 내야 한다) 장안의 화제로 떠오르는 작품들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어떤 스펙트럼으로 영화를 볼 것인지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언어로 영화를 읽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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