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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May 06. 2023

록스타의 일탈로 드러나는 20세기 미국의 민낯

서평 <그레이트존스 거리> 돈 드릴로 (창비, 2013)

이탈리아 이민 2세로 뉴욕에서 태어난 돈 드릴로(1936~ )는 1971년 장편소설 <아메리카나>로 데뷔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5년 소설 <화이트 노이즈>가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하며 현대사회의 문화 현상과 대중매체의 실상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1973년 발표된 소설 <그레이트존스 거리>는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어느 로큰롤 스타의 행적을 통해 미국 사회의 병폐와 새로운 권력으로 대두된 대중문화의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록큰롤 스타 ‘버키 원덜릭’은 순회 콘서트 공연 중 갑자기 팀을 떠나 뉴욕 그레이트존스 거리에 있는 여자친구 ‘오펄’의 아파트에 칩거한다. 팝스타의 잠적은 다양한 소문을 낳고,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차례로 버키를 방문한다. 매니저인 ‘글롭키’는 소속사와 함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압력을 가하고 반체제 조직 ‘해피밸리’ 농장 공동체는 마약운반에 그를 이용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오펄이 죽고 그녀가 남긴 버키의 녹음 테이프는 그의 복귀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지만 해피 밸리는 버키에게 자살을 종용하며 침묵을 강제한다. 


버키 주위의 인물들은 타인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글롭키의 조수 ‘헤인즈’는 버키의 꾸러미를 가로채 마약중개를 시도하다가 해피 벨리에게 쫒기고 마약 거래담당 중개인으로 ‘승진’한 오펄은 자신을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된다. 버키를 추종하는 팬들은 로큰롤의 우상으로서 스타의 자살 또는 죽음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p.149)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레이트존스 거리의 아파트에 틀어박힌 채 두문불출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자신에 대한 가십거리를 마음대로 지어내도 상관없다는 버키의 수동적인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버키가 머무는 곳의 아파트 위층은 살아가기 위해 어떤 글이던 닥치는 대로 쓰는 소설가 ‘페니그’가, 아래층에는 정신지체를 가진 아들을 키우는 엄마 ‘미클 화이트’가 산다. 힘들게 삶을 꾸려가는 그들은 버키의 삶과 접점이 없는 ‘일반인’이다. ‘문학 전체를 통틀어서 아직 안 다뤄진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에 ‘아동 포르노 문학’을 쓰려고 하는 페니그(p.71)는 대중문화에 포섭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미클 화이트의 아이는 집을 털러 들어온 부랑자들조차 공포를 느끼고 철수시킬 정도로 심한 돌연변이다. “그는 우리가 항상 두려워해오던 것, 암흑을 가로질러 퍼져있는, 완전히 박탈당한 우리 자신이었다”(p.226)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존재는 의지의 상실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암시한다. 


돈 드릴로는 대중문화와 자본주의의 결탁에서 벌어지는 20세기 미국의 만화경을 펼친다. 반전과 저항, 자유의 상징으로 출발한 로큰롤은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스타를 배출하고 산업으로서도 성장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만다. “로큰롤 스타는 한편으로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으라는 자본주의 특유의 요구와 압력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적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폭력적 청중들의 애꿎은 과녁이 되곤 했다.”(p.374) 작가는 1950년에서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큰롤을 통해 대중문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자본주의에 잠식되는지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50년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유효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대중문화의 첨병인 팝스타와 그를 둘러싼 인간군상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돈 드릴로의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은 특유의 블랙유머와 구어적 표현으로 소설 속에서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작가의 신랄한 묘사와 설정은 대중문화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대의 독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강렬함으로 뇌리에 남는다. 그의 소설을 통해 대중매체의 복마전 속을 살고 있는 지금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획득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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