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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타래 Sep 05. 2019

슬럼프를 벗어나는 방법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유

왜 갑자기 늦바람이 불었냐?


오늘 퇴근하기 전에 옆자리에 있는 형에게 들은 말이다. 아마도 신기함과 짜증이 조금은 섞여 있는 말투였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오늘 점심 먹고 나서 퇴근할 때까지 설비 도면을 펼쳐놓고 설비의 기초인 요소기술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계속 물어봤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비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그런데 커버를 열고 안을 살펴보면 밀도가 엄청 높다. 3cm도 안 되는 부품들이 사람 키보다 더 큰 설비 안에 아주 빽빽하게 들어가 있다. 그 부품들을 큰 분류로 나누면 구동을 담당하는 모터와 공압부, 프로세스에 도움을 주는 Air와 Water Line, 신호와 전기를 전달하는 전장부, 두뇌의 역할을 하는 보드 및 CPU 부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모터와 관련된 부분을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시로 물어보니 이상하면서도 짜증도 났을 것 같다. 그것도 입사 2년이 지났고 Shift leader를 하고 있는 후배가 그랬으니.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재작년 6월에 입사하고 부서 배치를 받아 처음으로 설비를 봤을 때 엄청 신기했다. 얇은 공책만 한 두께의 웨이퍼가 설비에서 나오면 종이 한 장보다 얇게 가공되어 나왔다. 설비를 만지고 고치며 궁금한 점은 선배들에게 물어보았고, 스스로도 이것저것 해보면서 설비를 익혀갔다. 설비에서 에러가 나는 원인을 찾고 분석해서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뿌듯함을 느꼈고, 한 사람의 몫을 하겠다는 첫 목표에 다가가고 있는 모습에서 성장하는 내가 보였다. KPI 항목을 분석하는 개인 업무까지 맡으면서 인정받는 기분이었고 그렇게 즐거운 1년이 지나갔다.

압박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설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후배들이 급격하게 많이 들어오면서 입사 순서가 빠른 내가 Shift leader가 되었다. 보통은 최소 7년 차부터 시작하는 직책을 맡으면서, 후배들을 잘 키우고 싶다는 것과 함께 부담감이 생겼다. 게다가 누구를 지도해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엔지니어로서 잘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출근시간에 출근했다 퇴근시간에 퇴근하는 날도 있었고,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즐거움, 의미, 성장, 이런 단어가 흐려지고 있었다. 


"왜 일을 하는가?"


최근 들어서 일이 재미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결과가 덜 나오기 시작했다.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에서는 일을 하는 이유에 성과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보상은 단기적으로는 행동을 유발하지만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일하는가'하는 이유가 그 사람의 성과를 좌우한다.
-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11페이지 -

저자들은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동기를 직접적 동기, 부정적 영향을 주는 동기를 간접적 동기라고 말한다. 직접적 동기에는 즐거움, 의미, 성장이 있다. 일 자체가 보상이고 자신의 가치가 업무의 결과이며, 자신의 목표와 연결할 수 있는 동기들이다. 반면에 간접적 동기는 정서적 압박감, 경제적 압박감, 타성이다. 부담감이나 보상 혹은 처벌을 피하기 위함, 또는 말 그대로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단 한 가지 내용만 기억해야 한다면 즐거움, 의미, 성장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조직문화는 가장 높은 수준의 성과와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39페이지 -


직접적 동기가 줄고 간접적 동기가 늘었다.


첫 1년 동안은 직접적 동기가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설비를 많이 만지면서 궁금한 것을 해결했었다. 즐거움 동기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호기심과 실험이다. 덕분에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설비를 조치하면서 성장하는 내 모습이 보였고, 정상적으로 가공된 웨이퍼들이 잘 팔려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데 공헌했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직접적 동기 3개가 모두 충족되었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간접적 동기가 늘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찾아온 책임감은 부담감으로 바뀌었다. 경력 차이가 최대 1년이라 아직까지 실력면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대도 불구하고 쉬프트를 이끌어가고 운영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부담이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걸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타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저번 달에 이런 내 모습이 참 한심했다.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한다.


한 달 동안 과거에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즐거움, 의미, 성장 동기를 느꼈었는지 곱씹어 봤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비를 파고들고 이를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낄 때 직접적 동기를 느꼈다. 이런 이유로 다시 설비의 기초인 요소기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더 깊게 설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더 깊은 요소기술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각각의 요소들과 우리 설비에 적용된 방식을 이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것은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실력이 쌓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할 수 있다. 즉 실력을 키워 성과를 내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할 때 즐거움, 의미, 성장 동기를 느끼는가?

정서적 압박감, 경제적 압박감, 타성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어떤 때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 의미, 성장 동기를 활용해 동기부여를 하는가? 아니면 정서적 압박감, 경제적 압박감, 타성을 활용하는가?

      -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51페이지 -


그리고 성과를 퍼뜨리고 싶다.


또 다른 목표도 생겼다. 직접적 동기를 높여 결과를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회사 일이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지만 즐거움을 찾는 것은 자신의 몫이고, 일을 통해서도 즐거운 순간이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내일은 공압부를 파고들어야겠다. 옆자리 형에게는 미리 미안하다고 말해놔야겠다.





참고 :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생각지도, 닐 도쉬 •린지 맥그리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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