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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타래 Feb 02. 2020

우리는 왜 악인에게 끌리는걸까?

Succeeding you, father

Warcraft 시리즈와 World Of Warcraft (와우)를 통틀어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명대사이다. 아서스 메네실이라는 성기사는 인간 국가인 로데론의 왕자이자 백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국가와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정의감이 잘못 발휘되고 리치왕의 검인 서리한을 얻은 후로 사악해졌고, 결국에는 아버지인 국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스승인 우서를 살해하고 백성들을 학살하였으며, 기존의 리치왕이었던 넬쥴을 패퇴시키고 스스로 리치왕에 오르게 된다. 아서스 메네실은 명실상부한 워크래프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메인 캐릭터이다.



한편 아서스 메네실에게 죽임을 당했던 실바나스 윈드러너도 대표적인 폭군이다. 하이 엘프의 순찰대 사령관이었던 실바나스는 아서스의 침공을 저지하다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아서스는 그녀를 그대로 놔두지 않고 의식은 남겨둔 채 밴시로 만들어버려 자신의 육체가 동족을 학살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 후 아서스에 대한 복수만 꿈꾸며 살아간다.



아서스 메네실과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대표적 악역이며 폭군이다. 행적은 어마어마하다. 아버지인 왕을 시해한 패륜을 저지르고 백성을 학살해 언데드로 만들기도 했다. 얼라이언스의 로데론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역병을 살포해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힌다. 잠재적 적군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생명의 나무인 탈드레실을 방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 캐릭터는 또한 매력적인 악역이다. 아서스 메네실은 워크래프트 3의 주인공이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확장팩인 리치왕의 분노에서도 메일 빌린 이자 최종 보스로 나온다.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그 후 여러 확장팩에서 메인 역할을 하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시네마틱의 최다 출연 캐릭터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이런 악역들에게 매력을 느낄까?



우리는 악인을 보면서 도덕적 휴가를 즐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인 주인공인 경우가 종종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동의하지 못하고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분명히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연극, 소설에서는 일종의 일탈로 느껴진다. 이런 현상을 도덕적 휴가라고 한다.

그런데 아주 괴상하게도 이 악당이 여러 세대의 배우, 연극 관람자, 독자들을 매혹해 왔다. 우리의 내부에 있는 뭔가가 그가 왕좌에 오르는 저 끔찍한 과정을 매 순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들의 운명이 섬뜩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남들보다 한 수 위의 술수를 보이고, 거세게 몰아치고 음모를 꾸미고 배신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도덕적 휴가를 즐기게 된다.

- <폭군> 115 ~ 119 페이지 -



내가 보고 있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평소에 억압하고 있던 도덕적 가면을 잠시 벗어두고 주인공이 휘두르는 온갖 전략과 술수를 즐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 스스로 그 악역과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폭군의 특징


폭군의 특징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특징은 무한 이기주의, 멋대로 법률 위반하기, 남에게 고통을 가하며 즐거워하기, 남을 제압하러는 충동적 욕망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 <폭군> 77 페이지 -

자기 자신만이 중요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든 괴롭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에만 집중한다. 오히려 남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도구로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하듯이, 여기에서도 독재자의 행동 노선은 병리적인 나르시시즘에 의해 촉진된다. 다른 사람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 자신이 '온전'하고 '단단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 <폭군> 145 페이지 -


이러한 특징은 낮은 자존감과 소시오패스적 공감능력 부재로 인해 나타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주변을 이용만 해서 성공해 나가지만, 성공의 이유는 실력이 아니라 주변을 무너뜨리는 비열한 전략이었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다. 게다가 소시오패스는 사회의 이집단성(집단을 위하는 성질) 을 해치기 때문에 집단은 소시오패스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경계하게 된다. 이런 성격 때문에 폭군들은 더더욱 사람을 믿지 못하고 악순환에 빠지게 되어 결국 몰락하게 된다.


사회는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소시오패스(Sociopath : 바 사회적 인격장애자)로부터 그 자신을 보호한다.

(중략)

공동체는 그 내부의 특정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위협을 경계하면서 그들을 고립시키거나 축출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독자 체제는 사회적 조직의 규범이 되지 못한다.

- <폭군> 208 페이지 -
그들의 고립, 의심, 분노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오만하고 과도한 자신감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마침내 그들의 몰락을 촉진한다.

- <폭군> 192 페이지 -



우리 모두 폭군이 될 수 있다.


폭군의 최후는 대부분 비슷하다. 자신이 만든 결과를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은 몰락하게 된다. 아서스 메네실은 리치왕이 된 후 악명을 떨치지만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연합, 그리고 플레이어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호드의 족장이 되었지만 내부의 혼란과 신임을 얻지 못하고 사울팽이란 호드의 영웅에 의해 죽음의 결투인 막고라를 통해 패퇴하게 된다.


아서스와 실바나스는 엄밀히 따지면 타고난 인물들이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폭군의 후보는 아니다. 폭군의 특징인 이기주의와 반사회적 행동을 가진 누구나 작은 권력을 가지는 순간 폭군이 될 수 있다. 공정한 평가를 하지 않는 부장님, 고압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아빠, 후배에게 강요하는 선배 등 우리 주변, 그리고 나 조차도 폭군이 될 수 있다.


영영 사전에는 "자신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 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따라서 왕이 아니어고,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곧 독재자가 된다.

- <폭군> 255 페이지 -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변의 폭군을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독재자가 생겨나는 법이고, 권력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읽고 그런 독재자를 경계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폭군> 264 페이지 -


<폭군>, 스티븐 그린블랫,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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