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타래 May 02. 2020

나의 연대기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있었던 일

<한달자기발견> 2일차 미션은 나의 연대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삶에서 주요 에피소드 50개 이상을 목록으로 만들고 시기별로 구분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면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출생 ~ 유치원


- 울산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오전 11시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나는 꽤 오랫동안 새벽 2시에 태어났다고 알고 있었다.

- 원룸같은 집에서 방이 2개나 있는 작은 빌라로 이사를 갔다. 어렴풋이 엄마랑 같이 지어지고 있던 빌라를 구경간 기억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가 한명 더 같이 갔었다. 동생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 아니라고 하는게 아마 친구였나보다. 누군지는 기억이 안난다.

- 내가 3살일 때 동생이 태어났다.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간호사인 이모들이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왔을 때 초인종 너머 갓난아기인 동생이 보였다. 

- 빌라가 3개 동이 있었는데 내 또래가 많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먹고 밖에 나가면 누군가가 있거나 조금 기다리면 나왔다. 아니면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면 나와서 함께 놀았다. 놀이터도 없고 시멘트 바닥뿐이었는데 도대체 뭘 하고 놀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하루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 물탱크 같은 큰 사각형 시멘트가 있는데 그 위에 올라가서 뛰어 넘으면서 술래잡기를 했다. 동생이 물탱크에서 뛰어 내렸다가 착지를 잘못해서 왼쪽 눈 위가 찢어졌다. 마침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이라서 바로 응급실에 가서 상처를 꾀맸다. 지금도 동생의 왼쪽 눈 위에 상처가 있다.

- 장난인지 몰라도 엄마가 내 턱에 수염이 났다고 했다. 아마 솜털인데 우쭈쭈해준 것 같다. 그런데 수염이 났다고 면도해야 된다면서 면도기를 들었다가 턱에 상처가 났다. 꽤 크게 베였는지 지금도 자세히 보면 그 흉터가 보인다.

- 5살에 유치원에 들어갔다. 백합반인가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학예회 같은 걸 했는데 산부인과 의사로 나와서 춤 추면서 공연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 집에 가면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한다.

- 유치원에서 어떤 여자애를 좋아했나보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그랬던 기억조차 없는데 엄마의 말에 의하면 걔랑 결혼한다고 했다고 한다. 여자애도 싫어하거나 그러진 않았다고 하는거 보면 짝사랑은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일찍 연애를 했으면서 그 이후에는 왜그랬지?

- 6살에 학원에 갔다. 웅변 대회에 나가려고 학원에서 웅변 연습을 했다. 어떤 친구랑 싸웠는데 내가 그 친구 앞자리였다. 계속 뒤에서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다가 내가 뒤를 돌아보면 앞에 보라고 하면서 약을 올렸다. 그냥 그렇게 끝나기는 했지만 내가 논리적으로 말을 하는 능력이 뛰어나진 않다는 걸 느꼈다.

-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다가 굴러서 팔꿈치가 부러졌다. 관절이 부러진 것이라서 대학병원에서 핀을 밖는 수술을 2번 하고 물리치료까지 했다. 왼팔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때까지 1년이 걸렸다.

- 탈장 수술을 했다. 아픈 곳은 없었는데 엄마가 이상하다고 해서 검사를 받았더니 탈장이라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cm 가량 개복을 했기 때문에 아물때까지 입원을 했는데 운동한다는 핑계로 살살 걸어서 1층까지 간 다음 바나나우유와 과자를 사먹는게 즐거웠다.


초등학생


-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빠른년생이라 7살에 들어갔다. 내가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민학교여서 공책에 OO국민학교 1학년이라고 적었는데 엄마가 이제 초등학교로 바뀐다고 다시 적으라고 했다. 국민학생이 될 줄 알았는데 초등학생이 되었다.

- 1학년 담임 선생님은 40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좋은 분이었던 것 같다. 4교시가 끝나고 집에 갈 때 교문 나가기 전 한줄로 서서 왼쪽으로 가는 사람은 가면서 왼쪽손으로 하이파이브,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은 오른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교문을 나섰다.

- 2학년 교실은 서쪽동이었는데 우리들 사이에서는 귀신이 나오는 건물이라고 해서 다들 무서워했다. 청소가 늦게 끝나서 주변이 조용하면 괜히 무서워서 우리끼리 큰소리로 떠들면서 안 무서운 척했다. 그러면서 그 건물을 나가기 직전에 다들 후다다닥 뛰어서 도망갔다.

-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계기가 참 별게 없는게 그냥 어떤 친구가 축구할사람?이라고 물어봤는데 그냥 나가서 같이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책 보는걸 좋아해서 쉬는시간마다 자리에서 책만 봤는데 그런 내가 나가서 운동을 한다는게 지금 돌아보면 너무 신기하다.

- 4학년 때 학예회에서 사물놀이를 했다. 꽹과리, 장구, 북, 징 중 하나를 택해야 되는데 장구가 제일 멋있어 보였지만 어려울 거 같아서 꽹과리를 했다. 그런데 가르쳐주시는 분이 나를 상쇠로 택했다. 지휘자같은 역할이라서 내가 시작과 끝을 정하고 신호를 보냈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을 했다. 지금도 꽹과리 자체는 칠 수 있다. 가락을 많이 까먹어서 문제지만....

- 맹장수술을 했다. 동생이랑 싸우다가 엄마한테 혼나서 한바탕 울고 났는데 이상하게 배가 아팠다. 체한 줄 알고 매실 액기스를 마시고 손가락을 땄는데도 점점 아파와서 검사를 받았더니 맹장염이라고 해서 바로 수술을 했다. 이때 학교를 빠져서 6년 개근상을 못 받았다.

- 5학년 때 컴퓨터실에서 방과후 학습 같은 걸 하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알아버렸다. 웃긴건 스타크래프트 멀티플레이 하는 방법을 컴퓨터 선생님이 알려준 것이다. 첫 멀티플레이를 했는데 1대 1 대결에서 내가 이겼다. 프로토스를 해서 딱 캐리어 1기를 생산해서 공격을 갔는데 친구가 졌다고 했다. 이때 재미가 들려서 아빠한테 졸라서 스타크래프트 CD를 샀다.

-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신규 선생님이었는데 애들한테 참 잘해주셨다. 한명씩 같이 사진을 찍고 오려서 책깔피를 만들어주셨다. 아직도 집에 그 책깔피가 걸려있다. 하지만 여름방학 때 아빠의 직장 때문에 수원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학기 중간에 이사를 가서 처음에는 거의 대부분 집 안에만 있었다. 그래도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하는 친구들이랑 금방 친해졌다. 


중학생


- 전학와서 같이 친해진 친구 중 한명이 중학교를 멀리 다니게 되었다. 평준화 지역이라 소위 뺑뺑이를 돌렸는데 그 친구만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나머지는 근처 학교로 가게 되었다. 1년만에 이사를 했다. 그래봤자 원래 집에서 이사한 집까지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지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오른쪽으로 가던 길을 왼쪽으로 가니까 느낌이 이상했다.

-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서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1시간 일찍 등교를 해서 축구를 하고 수업을 받았다. 그냥 마음만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신체적인 조건도 좋지 않고 기술도 없으면서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만년 후보로 있다가 2학년이 되면서 그만두고 그냥 즐겼다.

- 한참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졌다. 학교에서는 내내 딴 생각을 하다가 집에 가서 친구들이랑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게임 방송을 보다가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내내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했다. 시험때만 바짝 벼락치기 하고 평소에는 놀았으니 성적은 그냥 중간정도만 했다.

- 2학년 때 내 앞 번호인 여자애랑 많이 놀았다. 내 생각은 논 거였지만 사실 많이 괴롭혔다. 약올리고 도망가고 다시 약올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정도까진 아니고 관심이 있었나보다. 초등학교때도 그렇고 중학교때도 그렇고 여자애들이랑은 거의 이야기도 안 했는데 그 여자애한테만 이야기도 하고 장난치고 했었던 거 보면. 

- 3학년 때 미술을 잘했다. 모든 수행평가에서 A를 받았다. 목판에 용 그림을 그리고 깎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지금봐도 잘했다. 어떻게 했지?


고등학생


- 고등학교를 약간 멀리 다녔다. 버스타고 20분정도 가서 교문을 지나 5분간 급경사를 오르면 교실이 있었다. 따로 운동을 안해도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되는 기분이었다.

- 갑자기 농구 바람이 불어서 축구 말고 농구를 했다. 점심, 저녁 시간만 되면 밥을 마시다시피 하고 농구를 했다. 완전 초심자라서 드리블은 당연히 못하고 슛도 못 날렸다. 그래서 주말에 혼자 집 근처에서 농구 연습을 했다.

- 1학년 때 심화반에 처음 들어갔다. 성적순으로 상위 10%만 심화반에 들어가는데 모의고사를 잘 봐서 들어갔다. 야자를 할 때 보통은 교실에서 하는데 심화반만 다른 공간에 모여 공부를 했다. 이후 졸업할 때 까지 심화반에 갔다가 못갔다가 했었다. 그 중에서도 상위 30명은 심화반 A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는데 꼭 거기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근처도 못 갔다.

- 2학년 때 이과를 선택했다. 수학을 못하고 따라가기도 버거웠지만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1학년 때 사회 과목 중 경제부분이 너무 재미없고 이해도 안됐기 때문에 경제 안 배우려고 이과를 갔다. 선택 자체는 결과만 보면 나한테 잘 맞았지만 그 과정에서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수학을 못하는 이과생은 정말 눈물겹다.

- 3학년 때는 나름 정말 열심히 했다. 수학을 못하는데 이과를 갔으니... 한번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밤 10시에 왔는데 갑자기 너무 열이 받았다. 문제를 봐도 이해를 못하겠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지 떠오르지 않아서 책을 던져버리고 화를 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랬는지 미래가 무서워서 그랬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니 펑펑 울었다.

- 수능을 망쳤다. 역시 수학이 문제였다. 보통 모의고사에서 수학이 3~4등급 나왔는데 하필 그해 수능이 물 수능이라 등급이 잘 안나왔다. 6등급이라는 말도 안되는 숫자를 보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수학을 필수로 보지 않는 이과를 가진 학교를 간신히 찾아서 들어갔다. 그래도 다른 과목들은 2~3등급이라서 학과 내에서는 꽤 상위권으로 들어갔다.


대학생


- 충주에 있는 대학에 갔다. 재수를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막상 대학생활 자체는 괜찮아서 자연스럽게 재수, 반수 생각이 사라졌다. 

- 입학식 때 안내를 하는 ROTC를 보고 쫌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씨앗이 되어 ROTC가 되었다.

- 1학년 때 정말 미친듯이 놀았다. 기숙사에서 게임하고 축구 동아리에 들어가고 인라인 스케이트 동아리에 들어갔다. 다들 기숙사 아니면 자취였기 때문에 술도 엄청 자주 마셨다. 그래도 2학기 때는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아빠 회사에서 등록금이 나왔기 때문에 장학금 절반은 부모님 드리고 절반은 내가 가졌다. 이 돈으로 겨울 방학 때 컴퓨터를 샀다.

- 2학년 때 ROTC 시험을 봤다. 같이 축구를 하던 1년 선배가 ROTC가 된 것을 보고 입학식 때가 기억이 났다. 그저 멋있었다는 기억만 가지고 시험을 봤는데 어찌어찌 붙어버렸다. 아마 체력 등급만 보면 내가 최하위 기록을 세웠을 텐데 어떻게 붙었는지 모르겠다.

- 2학년 겨울방학 때 입영훈련을 갔다. 머리를 빡빡 밀고 맞지도 않는 전투복을 입고 성남 군사학교로 향했다. 눈이 펑펑 와서 군사학교 연병장에 있는 눈을 중장비를 동원해서 치우고 있었다. 엄청 추운 3주였지만 다들 같은 학교 동기라서 재미있게 지냈다. 기훈지도소대장 운도 좋아서 우리한테 잘해줬다. 훈련은 힘들고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 3학년이자 ROTC 1년차 때는 기숙사에만 있었다. 과생활 동아리 생활 모두 참여하지 않고 기숙사 안에서 동기들이랑만 지냈다. 다들 군대를 가고 남은게 학군단 동기였고, 기숙사는 2년차 선배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이어서 유일한 휴식처였다. 그래서 기숙사 안과 밖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 3학년 여름 훈련을 마치고 생애 첫 소개팅을 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자기가 친한 여자를 소개시켜줬다. 하필 훈련을 갔다온지라 머리도 완전 짧았는데 그냥 경험해보자는 기분으로 나갔다. 1, 2학년 때도 남자들이랑만 놀고 과도 공대라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여자를 대하는 법을 완전히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그 소개팅은 이불킥감이다. 결과는 당연히.

- 4학년 때 처음으로 자취를 했다. ROTC 2년차는 기숙사를 나온다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핑계를 대면서 꿈에 그리던 자취를 시작했다. 같은 건물에 동기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아침운동을 가고 야식도 시켜먹고 재미있게 놀았다.

- 동아리에 신입생이 왔는데 그 중 한명을 좋아하게 되었다. 표현 방법도 모르고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몰라서 그런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어영부영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끝났다. 3학년 때 소개팅 했던 여자가 최초 여자 ROTC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락을 했고 그냥 친구로 가끔 만났다.

- 임관시험에 합격하고 취업 걱정이 없는 4학년 2학기를 보냈다. 졸업학점도 다 땄지만 학군단 때문에 조기졸업을 못했기 때문에 수업을 거의 안 들었다. 1학년때보다 더 열심히 축구하고 노래방가고 게임하면서 놀았다.

- 졸업 후 임관 전까지 산업인력공단에서 알바를 했다. 


군인


- 조치원으로 병과학교에 입소해서 3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소위로 임관하고 자대로 가기 전 자신의 병과에 대한 집중 교육을 받았는데, 공부 보다는 동기들이랑 지내는게 더 재미있었다. 주말 외박을 기다리면서 운동도 무진장해서 아랫복근까지 선명한 진정한 식스팩이 있던 시기였다.

- 자대에 배치받자마자 작전진지로 올라갔다. 3개월 간 진지에만 있어야 하고 한달에 한번 주말 휴가만 가능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면서 실제 작전을 했고, 중대장이 엄청 갈구고 뭐라하고 쪼아서 너무 힘들었다. 고봉밥에 라면에 과자 폭식을 하면서도 2~3kg 씩 몸무게가 빠졌다. 우유 200ml + 커피믹스 2개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궁극의 단맛이다.

- 작전진지를 내려와서 부사관들이랑 스타크래프트 2에 빠졌다. 가끔씩은 주변 공원에 배드민턴도 치면서 부사관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주기가 맞아서 동기랑 같은 숙소에서 지내면서 2개월간 지냈는데 중대 생활에서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 2013년 6월 대대 참모로 임명되었다. 중대장의 지옥같은 갈굼과 괴롭힘에서 벗어나서 정말 좋았다. 같은 중대에 있었던 행정보급관이 내가 대대에서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대대에는 동기들도 많고 정작과장님도 잘 대해주셔서 수월하게 지냈다.

-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소개팅한 여자인데 여자 최초 ROTC를 하면서 연락하게 되었고 내가 휴가일 때 가끔 만나면서 혼자 좋아했었다. 1월 1일에 만나서 고백하고 3주 후에 사귀기 시작했다.

- 전역 일주일 전까지 훈련을 하고 전역했다. 기숙사 짐을 가지러 부모님이 부대에 와주셨다. 전역신고를 하고 동기 중 한명이 종로에 자취한다고 해서 같이 가서 점심 먹고 집으로 왔다.


취업 준비


-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만나는 횟수부터 여러가지가 맞지 않았다. 내 서운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방식으로 말하다 보니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토익 공부에 완전 집중했다. 아침 8시에 학원에 도착해서 강의를 듣고 자습을 하고 저녁때 쯤 집에 갔다. 집에서 학원 숙제하고 공부하면서 2달만에 토익 800점을 넘겼다. 스트레스 해소로 피아노도 배웠다.

- 2015년 상반기에 서류전형을 한군데도 붙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력서에는 자격증이며 대외활동이며 빼곡한데 나는 정말로 쓸게 없었다. 처음으로 살아온 길을 후회했다.

- H사 방산부문에서 첫 면접을 봤다. 첫 면접인데 스터디도 하지 않아서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회사의 핵심 가치 중 어떤게 나랑 어울리냐는 질문에 답을 못했다. 회사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광속탈락

- 2016년에 취업스터디에 들어갔다. 수원역의 스터디카페에서 몇번 진행하다가 남문에 무료로 장소를 빌려주는 곳이 있어서 장소를 옮겼다. 아침 9시에 모여서 저녁 6시까지 자기소개서를 쓰고 서로 첨삭해주고 인적성 공부하고 면접 연습을 하면서 보냈다. 나도 간절했고 스터디원들도 정말 독한 사람들만 모였다. 아직까지도 스터디원들과 연락하면서 정기적으로 모인다.

- 취업에 성공했다. 시흥에 있는 일본계 커넥터 제조회사의 커넥터 설계자로 입사했다. S사 반도체부문 면접을 앞두고 있었지만 확률에 기대하고 싶지 않아서 포기하고 입사를 했다.


첫 직장


- 한달 동안만 즐거웠다. 그리고 나머지는 너무 힘들었다. 한국기업보다 더 보수적인 기업문화에 하루 평균 14시간의 근무시간, 그리고 은근히 갈구는 사수까지. 분명히 또래에 비해 연봉은 높은 편이었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회사를 다녔다.

- 일본 연수를 갔던 파트장이 복귀했다. 파트장 + 사수의 갈굼이 시작되었다. 두분 다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고 내가 봐도 일을 잘 했지만 나랑은 맞지 않았다. 방목형 스타일에 간섭이 많은,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다른 부서 선임에게 물어보러 갔더니 '너네 파트장님이 다 알고 있는데? 왜 나한테 와서 물어보라고 하신거야?'라는 말까지 들었다.

- 2016년 하반기에 다른 회사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페이스북에서 신영준 박사님과 완벽한 공부법을 알게 되었다.

-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남 교보문고에서 서점투어에 온 신영준 박사님을 처음 만났다. "신입사원인데..."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럼 이 책 2번 읽고 독후감 써서 나한테 보내"라고 답해주셨다. 평소같았으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 말대로 집에 가서 이틀만에 완벽한 공부법을 다 읽었다.

- 12월 31일 이수역 강연에 참석했다. 한겨울이라서 지하철역 내부도 꽤 추웠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엄청 오랫동안 강연을 하셨고 그걸 또 다 듣고 사진까지 같이 찍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력이 필요하며, 일단은 책부터 왕창 읽자는 결심을 했다. 자기계발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 빅보카스터디에 들어갔다. 일요일 아침 8시까지 강남역에 모여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테스트하는 스터디였다. 워드로 10페이지가 넘는 영어 기사를 번역한 후 참가하였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책을 읽거나 취업 준비를 했다. 주말에는 전공 관련 교육을 들으면서 준비했다. 운이 좋게도 포기했었던 S사에 다시 지원해서 합격을 했다. 금요일 오후 5시쯤에 합격 명단을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봤다. 화장실 문을 꼭 닫고 그 안에서 소리만 내지 않고 온갖 환호를 했다. 집에 가면서 엄마한테 이 소식을 알렸다. 진짜 너무 좋아하셨다.

- 신체검사까지 받고 퇴사하겠다고 통보했다. 일주일 간 인수인계를 하고 하루 쉰 다음 연수원에 입소했다.


현재 직장과 결혼


- 연수원에서 온갖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딱딱한 교육이 아니고 활동적인 것도 있고 조별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경쟁구도라서 새벽 2~3시까지 준비하다가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이 지속되었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즐거웠다.

- 연수가 끝나고 온양에 있는 부서에 갔다. 거기서 부서 배치를 하는데 1~2년간 기흥에 있는 부서로 간 다음 그 부서와 함께 다시 내려오는 것으로 되었다. 집이 수원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 한동안 동기들과 놀다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읽을 시간을 아끼기 위해 퇴근할 때는 통근버스를 타지 않고 전철을 탔다.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해서 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멘토링 프로젝트 2기에 참여했다. 데일리리포트를 쓰고 일주일에 한권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었다. 매주 토요일에 모여 신박사님 강연을 듣고 서로 했던 일을 나누는 모임이다. 이 두달 동안 내 한계를 한번 뛰어넘었다. 미션 중 하나인 자신만의 이야기거리 만들기를 하기 위해 한강을 서울 기준으로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걸었다. 6시간 동안 30km를 걸었다. 이상하게 행군보다 더 힘들었다. 오래 걸으면 옆구리와 복근에 알이 베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 3교대 근무를 시작했다. 부서의 절반 이상이 천안으로 가서 셋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야간에는 일이 많이 없었다. 일한 시간보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은 시간이 더 많았다.

- 옆 부서의 형의 소개로 지금 아내를 소개받았다. 이상할 만큼 말이 잘 통했다. 원래 처음 만나면 어색해서 말도 못하고 뚝뚝 끊기는데 아내를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몇 번 더 만나고 사귀게 되었다.

- 부서 전체가 천안으로 이동했다. 라인을 셋업하면서 양산도 해야해서 너무 바빴다. 동시에 교대조 리더를 맡으면서 후배들도 챙겨야 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더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 상견례를 하기 위해 양가 부모님을 뵈었다. 이상하게 내가 더 긴장을 했다. 부모님들을 뵙고 상견례를 하고 나서 몸살이 심하게 왔다. 아내보다 내가 더 긴장을 많이 했었나보다.

- 결혼 준비를 하면서 씽큐베이션 2기에 참여했다. 일주일에 한권을 읽고 서평을 써서 인증을 해야 하는데 주말에는 결혼 준비를 해야 하니 주중에 잠을 아껴가며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사내 헬스장에 다니면서 체지방을 14%까지 낮췄다.

- 결혼 전날에 씽큐베이션 모임에 참석하고 다음날 결혼식을 했다. 주례를 빅보카스터디 리더께서, 축가를 빅보카스터디원께서 해주셨다. 친구들 이야기로는 내가 결혼식 내내 웃고 있었다고 한다. 

- 신혼여행으로 몰디브에 갔다. 신혼부부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노부부들이 많았다. 경비행기 대기실에서 결혼 35년차 독일인 부부를 만났다. 은퇴하고 나서도 몰디브 같은 곳에 부부가 여행올 수 있는게 너무 부러웠고 멋져 보였다. 인생의 목표 중 하나를 은퇴 후에 몰디브에 아내와 다시 오는 것으로 정했다.

- 후배가 퇴사를 했다. 나 다음에 들어온 후배이자 내 교대조 후배였는데 과장님의 일을 서포트하게 되면서 잠시 빠졌었다. 그때 힘들고 설비 엔지니어로서 하는 일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느끼고 있던 점이라서 말리지 못했고 표현은 못했지만 내심 많이 아쉬웠다. 내가 제대로 리딩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 일을 하면서 그나마 즐거운 부분을 찾았다. 수많은 숫자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보고 해석해서 문제의 원인과 현상을 찾아내는 데이터 분석이 재미있다. 데이터 분석쪽으로 나가고 싶어서 파이썬과 통계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