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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1 -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는 이야기

누구도 묻지 않았던,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장면

by 나그네 한

어느 날, 나는 예루살렘의 성전 근처를 걷고 있었다. 거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사를 드리려는 이들, 구경꾼들, 장사꾼들, 그리고...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따라, 특별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래전, 내가 들었던 이야기 하나. 아주 작고 조용해서 대부분은 지나쳤을 그 순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조용한 장면에 세상의 비밀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부부가 예루살렘 성전 안뜰로 들어섰다. 햇빛에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여자는 품에 작은 아기를 안고 있었고, 마치 숨이라도 쉬면 깰까 봐, 한 손으로 천을 부드럽게 눌러 아이의 얼굴을 덮었다. 남자는 그녀의 곁을 따라 걸으며, 틈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괜찮아?” 그가 조용히 물었다.


여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안 깼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두 사람은 한 손에 작은 새장도 들고 있었다. 새장 안에서는 비둘기 두 마리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날갯짓 하나 없이, 그저 조용히 안쪽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정해진 날에, 아이가 태어난 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부모는 성전으로 가서 간단한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때, 형편에 따라 어떤 제물을 가져오는지도 정해져 있었다.


어떤 이들은 어린양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 부부는 비둘기를 준비했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많은 걸 갖지 못했다는 데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부족해 보일까 조심스러운 마음은 숨기지 못했다.


“이거면 되겠지?”

남자가 새장을 내려다보며 중열이듯 말했다.


“그럼요,” 여자가 대답했다.

“우린 할 수 있는 걸 다 한 거예요.”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품속의 아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히 팔에 힘을 줬고, 남자는 새장을 조금 더 단단히 쥐었다. 먼 길을 걸어온 흔적이 그들의 옷자락에 남아 있었지만, 걸음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성전 안에서의 의식은 그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범한 하루와는 달라 보였다.


여자의 눈길은 안긴 아기에게 머물렀다. 아이는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잠든 채였다. 마치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의 소음과 무관하게 고요 속에 있었다. 그 아이를 안고 걷는 이 길은 단순히 어떤 전통을 따라가는 걸음이 아니었다. 이 부부에겐, 낯선 도시에서 아이와 함께 내딛는 첫걸음이자, 앞으로의 삶을 시작하는 하나의 장면이었다.





그날, 성전 뜰의 볕은 유난히 부드러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제사와 의식, 저마다의 기도를 위해 분주히 오갔지만, 오래된 성전의 한쪽 벽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노인을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시므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은 오랜 세월 그곳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일부러 눈에 띄려 하지 않았고, 그날도 평소처럼 조용히 성전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조금 달랐다. 마치 어딘가를 향해 이끌리듯, 또렷하고 깊은 시선을 따라 걷는 듯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한 부부를 바라보았다. 아기를 안은 젊은 여인과 그 옆에 선 남자. 낯선 얼굴이었다. 옷차림은 평범했고, 손에 든 새장엔 조용히 몸을 움츠린 비둘기 두 마리만이 움직였다.


그는 그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기의 머리를 감싼 천, 여인이 조심스레 쥔 손끝, 남자의 미세한 숨결까지. 시간이 그들 주변만 멈춘 듯한 순간이었다. 그러더니 시므온은 조용히 앞으로 다가갔다.


“실례하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지만, 어딘가 단단한 울림이 있었다. 요셉은 낯선 노인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고, 마리아는 아기를 안은 팔을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제가 아이를... 잠깐만 안아보아도 될까요?”


그 질문은 너무 조심스러웠고, 너무 뜻밖이었다. 요셉은 본능적으로 마리아를 바라봤고, 마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아기가 자고 있었고, 사람들 틈에서 낯선 노인이 다가와 아이를 안겠다고 한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뭔가 이상하게 느꼈다. 이 노인의 눈빛 속엔 경솔함도, 호기심도 없었다. 오히려 오래 기다려온 사람처럼, 아이를 안을 기회를 애타게 기다린 사람처럼 보였다. 마리아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고, 몸을 돌려 시므온 앞에 아기를 내밀었다.


노인은 마치 숨을 멈춘 듯 조심스럽게 두 팔을 뻗었다. 마리아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를 품은 순간, 그의 팔은 의외로 단단했고,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그는 아이를 가슴 가까이 안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기의 체온, 숨결, 그리고 품에 안긴 무게.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이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그의 눈가에 주름이 깊어졌고, 목소리는 떨렸다.


“이 아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을 이름이 될 겁니다. 누구도 이 아이를 쉽게 지나치지 못할 거예요.”


요셉이 무언가 말하려다 멈췄다. 마리아는 시므온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시므온은 고개를 들고 마리아를 보았다.


“알겠더군요. 어떤 아이는... 얼굴을 보기도 전에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겠지만, 난 지금 알아차렸습니다. 아주 오래 기다렸던 것 같아요. 이런 아기를.”


마리아는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잠든 아기의 이마를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가 서늘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요셉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았다.


“이 아이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겁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되겠지요. 진심을 감추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숨을 돌릴 수 있는 바람 같은 존재가 될 거예요.”


그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다시 마리아에게 안겼다. 마리아는 본능적으로 품을 열었고, 다시 아기의 온기가 가슴에 닿았다.


“아이를 지키는 일이 쉽진 않을 거예요,”


시므온은 작게 말했다.


“이 아이가 크면서, 당신의 마음이 아플 날도 분명 있을 겁니다. 누군가 이 아이를 거부하는 걸 보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그건 이 아이가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이의 이마를 한번 쓰다듬었을 뿐이다. 잠시의 침묵 끝에 요셉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이렇게 이야기해 준 적 없었습니다.”


시므온은 조용히 웃었다. 눈웃음만 살짝 지으며,


“그럴 줄 알았어요. 때론,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침묵 속에서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될 겁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마지막 인사처럼, 짧고 깊은 고개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성전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그의 발끝을 따라 흔들렸다. 누구도 그를 붙잡지 않았지만, 잠시 그 자리에는 말 없는 고요가 머물렀다.






그 말은 짧았지만, 오래도록 울림이 남는 말이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시므온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 한 문장은 축복인 듯하면서도 예고처럼 들렸다고 한다. 희망의 말이었지만, 동시에 어떤 무거운 그림자도 함께 안겨주는 말.


나는 지금도 그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말을 들은 마리아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아기를 막 품에 안은 어머니가, 그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으로 다가왔을까.


사람들은 종종 위대한 존재를 영광스럽게만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이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사람이 아직 태어난 지 몇 주밖에 되지 않은 아기라면. 어쩌면 그날 마리아는 처음으로, 아들이 앞으로 걸어가게 될 길이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모두의 박수를 받는 길이 아니라, 기꺼이 외면당하고, 오해받고, 때로는 침묵으로 견뎌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시므온의 손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손은 분명 떨리고 주름져 있었을 것이다.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의 손은 다 그렇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의 품이 놀라울 만큼 평온하고 안정감 있었다고 말한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그 순간, 시므온의 두 팔은 단단했고,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나는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아마 그는 오래 기다려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에 대한 모든 답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기다렸고, 마음을 열고 있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종종 커다란 일에만 주목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장면, 누구나 환호할만한 순간. 하지만 내가 기록한 이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조용했고, 작았고,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순간 속에 어떤 시작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지금, 오래된 기록들 사이에 앉아 있다. 낡은 두루마리, 누군가 남긴 이야기들, 어딘가에서 전해 들은 조각난 기억들… 그 사이에서 나는 이 한 장면을 붙들고 있다. 손에 쥔 펜은 가벼운 도구지만, 이 이야기를 쓴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내가 본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직접 만난 것도, 체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었고, 마음을 기울였고, 조각처럼 흩어진 기억들을 하나씩 꿰어보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 내 앞엔 빈 종이 한 장이 놓여 있고, 나는 그 위에 한 자 한 자 적는다. 내가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낀 것들은 분명하다. 마치 먼 데서 들려오는 바람처럼,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나를 움직이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날 시므온의 말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지금,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지나쳤을지도 모를 그 장면을 글로 남긴다. 말없이 아이를 안아보겠느냐 묻던 노인, 잠시 주저했지만 결국 아이를 내어준 부부, 그리고 마침내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가만히 입술을 떼던 그 순간.


나는 그것을 조용히 기록한다.
너무 요란하면, 진짜 중요한 것이 가려질까 봐.
너무 확신에 찬 말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닫게 할까 봐.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다. 그 장면이 단지 과거의 한 조각이 아니라, 누구든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마음의 장면이라는 것을. 때로는 낯선 노인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장면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에 되뇐다.


"그 아이는 누군가에겐 빛이고, 또 누군가에겐 거울이 될 것이다."


그 말이 단지 한 아이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어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2:22-35"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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