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살던 이들에게 먼저 찾아온 빛
나는 오래전, 베들레헴 근처 어느 마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밤을 지새우며 양을 돌보던 몇몇 목자들이 있었다. 추운 밤공기를 이겨내기 위해 둘러앉아 작은 불을 피우고, 가끔 들려오는 양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들이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도 그다지 주목받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 익숙한 삶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지금, 낡은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드는 골방에 앉아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내 숨결이 유리창을 뿌옇게 덮는다. 옷깃을 여며도 손끝은 서늘하고, 펜을 쥔 손이 자꾸만 굳어간다. 그 밤, 들판에 앉아 양들을 지키던 목자들의 손도 이처럼 얼어붙지 않았을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불꽃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을까. 그들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나는 이 조용한 방 안에서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밤, 그 평범한 일상 속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누군가 갑작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고, 눈부신 빛이 목자들을 감쌌다고 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들판이 마치 낮처럼 밝아졌고, 그 가운데 어떤 존재가 나타났다. 그들은 그 빛과 존재 앞에서 얼어붙었다. 놀라움보다 더 깊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그들을 휘감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존재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밤, 너희를 위한 놀라운 소식이 있다.”
그 말이 끝나자 목자들 사이엔 숨죽인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놓치며 속삭였다.
“지금 우리한테 말한 거야…?”
또 다른 이는 눈앞을 손으로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 말을 해… 천사인가…?”
불빛 주위에 모여 있던 그들의 눈은 두려움으로 번뜩였고, 몸은 움직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자신들이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건 아닌지, 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 다정한 음성은 거센 바람을 뚫고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 존재는 이어 말했다.
“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는 다윗의 고을에서 태어났으며, 너희를 위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게 될 것이다.”
“구유라고?”
한 목자가 되뇌었다.
“짐승 밥통에… 아기가 있다고?”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더 말도 안 되는 일일 테고, 진실이라면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증거였다. 여물통에 누운 아기라니,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믿기 힘든 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더 많은 존재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빛이 출렁였고, 어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하늘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이는 그걸 '평화의 노래'라 불렀다."
그것은 그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고, 평생 다시는 듣지 못할 말이기도 했다. 이 세상 끝에 서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는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이 말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목자들은 더 머뭇거리지 않았다. 즉시 발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들 마음속에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찾은 곳은 작고 조용한 우리였다. 그 안에는 젊은 부부와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는, 정말로 구유에 누워 있었다.
그 장면 앞에서 목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천사들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는 순간, 그들은 마치 멈춰 있는 시간 속에 들어선 듯했다. 조심스레 다가간 한 목자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 아기, 오늘 밤에 태어나신 건가요?”
요셉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을 구할 수 없어서... 여기서 아이를 낳게 됐습니다.”
목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더니,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린 들판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밝아졌고...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이곳에 태어난 아기가 우리를 위한 징표라고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포대기를 조금 더 감싸며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예요. 그 말씀, 저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어요.”
목자 중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우린 이 아기를 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이 아이가... 세상을 바꿀 거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선 목자들의 등장을 경계하던 사람들도 그들의 말을 들으며, 하나둘씩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또 다른 이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조용히 들으며,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듯했다. 말은 적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깊었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더 큰 이야기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내가 만난 이는 바로 그 목자들 중 한 명의 후손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할아버지는 그 밤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고 했다. 처음엔 꾸며낸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할아버지는 늘 같은 장면을 그리듯 말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빛, 온몸이 떨릴 만큼 조용했던 그 순간, 그리고 젖은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던 마리아의 얼굴.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노트에 옮겼다. 문장을 적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여러 번 펜을 놓았다. 아, 그때 그 들판에 있던 이들이 누구였는지, 이름이라도 하나 남아 있었더라면. 나를 감동시킨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당시 이름조차 뚜렷이 불리지 않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기에, 세상이 기억하지 못했던 사람들. 하지만 하느님은 그들을 먼저 부르셨고, 그 밤의 빛은 그들의 이름 없이도 충분히 찬란했다.
사실과 믿음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중간 어디쯤 서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세상은 늘 강하고 힘 있는 이들에게만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어떤 밤, 가장 외롭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셨다. 내가 지금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그 이야기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조차도 이 감동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밤, 누군가는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도—조용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한참을 골방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먼 별빛이 유난히 또렷해 보이던 밤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목자들은 무언가를 믿으려고 애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일했고, 그날도 어김없이 양들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억될 이름도 없이, 조용히, 묵묵히.
그런데 바로 그런 이들에게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왜 그들이었을까. 왜 그 밤이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렇게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외롭고 낮고 조용한 이들에게 다가가셨다는 것.
그 밤을 잊지 못한 목자의 눈빛은, 우리가 살아가며 잊고 있던 어떤 소망을 다시 일깨운다. 세상은 여전히 빛보다 어둠이 더 커 보이는 때가 많다.
우리도 종종 그 목자들처럼 누군가의 주변에 머물며, 이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밤처럼, 뜻밖의 순간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어줄 수도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를 위한 소식이 있다.”
그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구유 곁에 머물 용기가 있다면,
우리도 사랑받고 있다는 걸—어쩌면 처음으로, 진심으로—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이 이야기를 남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 따뜻한 빛 한 줄기를 다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2:8-21"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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