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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9 – 광야의 침묵, 구유의 숨결

작은 시작들이 들려주는 더 큰 이야기

by 나그네 한

나는 그 아이를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이름은 내 마음 한편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그 아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그를 알아야 예수가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조심스럽게, 어떤 이들은 오래된 추억처럼 그를 이야기했다. 처음엔 단편적인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조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구도 그의 삶을 온전히 말해준 이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조각난 기억들이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지만, 진실에 가까운 자리를 찾아가고자 한다. 어쩌면, 나는 질문과 기억 사이에 선 조용한 조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다. 사람들이 그를 ‘광야의 사람’이라 불렀다. 그러나 내가 수소문 끝에 만난 한 노인은 그를 그렇게 단정하지 않았다.


“광야의 사람이라고요? 그건 좀 거창한 이름이지. 나는 그 아이를 ‘침묵을 배우던 사람’이라고 기억해요. 늘 조용했거든요.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속이 깊었지요.”


그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 몇몇은, 아직도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 아이는 말없이 잘 참는 아이였지요,”


어떤 노파는 나를 부엌까지 데려가 따뜻한 허브차를 내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릴 적에도 울지도 않고, 남 흉도 보지 않고… 늘 어디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속삭이듯 중얼거렸어요. 난 그게 하느님한테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걸 잘했어요,”


마을 우물가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던 중년 남자는 톱질을 멈추고 덧붙였다.


“남자애들이 모여 소리 지르고 뛰어다닐 때도, 요한이는 혼자 나무 그늘에 앉아서 돌멩이를 만지작거리곤 했어요. 누가 말 붙여도 대꾸는 잘 안 했지만, 무시하는 건 아니었어요. 듣고는 있더라고요. 그냥… 대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나는 들려온 이 조각조각의 기억들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요한은 성인이 되면서 스스로 광야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를 억지로 내몬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사라지듯, 마치 기다리던 부름을 따라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떠났다. 몇몇은 그가 떠난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이요? 해가 맑게 떴는데, 아주 조용했어요,” 나이 든 목동 하나가 말했다. “그 애가 우리 집 앞을 지났거든요.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고개만 한번 끄덕이고, 손에 작은 보퉁이 하나만 들고 가더라고요. 이상하게, 다시는 못 볼 것 같았어요.”


광야는 그리 너그러운 곳이 아니었다. 나무도 드물고, 물도 귀했다. 나는 그곳에 직접 가 보았다. 발끝에 닿는 모래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너무 차가웠다. 밤이 되자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별들이 머리 위에서 쏟아질 듯이 반짝였다. 그 풍경 안에서 나는 문득, 요한의 뒷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꺼내어놓지는 않았을까. 말 대신 침묵으로, 대답 대신 기다림으로 그렇게 그의 마음은 다져졌을지도 모른다.






한편, 내가 들은 이야기들 가운데는 모두를 뒤흔들었던 명령 하나가 있었다. 로마 황제, 사람들이 ‘아우구스도’라 부르던 권력자가 내린 호적 등록령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금을 걷으려면 사람 수부터 정확히 알아야 하거든요.”


이 단순한 행정 명령 하나는,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단지 이름을 적는 일이 아니었다.


“우린 그걸 ‘세금 전쟁’이라 불렀어요.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적어서, 나중에 싹 걷어가는 거죠. 그것도 한 푼 두 푼이 아니었어요.”


한 노인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안 가면 벌금이었고, 가도 돌아오는 데 며칠씩 걸렸지요. 멀쩡한 장사도 접어야 했고, 노인들은 길에서 병이 났어요.”


당시 사람들은 ‘호적 등록’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이 굳어졌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때를 겪었다는 어느 여인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무슨 군대 가는 줄 알았어요. 집집마다 무거운 짐을 싸고, 아이들 데리고 먼 길을 떠났거든요. 고향으로 가야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말했죠. 황제는 우리 사는 곳까지 간섭한다고.”


그 대열 속에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이라는 이름의 남자도 있었다. 그는 약혼한 여인 마리아와 함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향해야 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직접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베들레헴 근처에서 만난 한 노파가 말했다.


“예쁜 여자가 하나 있었어요. 배가 많이 불렀는데, 남자가 손을 꼭 잡고 있었죠. 피곤해 보였어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네요.”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다. 그래서 그의 고향도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이었다. 낯선 행정 명령과 무거운 여정, 그리고 낯선 도시. 그저 순종했을 뿐인 한 부부의 이동이, 예언된 이야기의 조각을 하나 맞추는 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내가 들은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그 부부가 일부러 그곳으로 향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황제의 명령이 있었고, 그 명령이 그들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을 억누르려는 명령이, 누군가를 이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통로가 되다니. 아니, 어쩌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힘을 가진 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예언에 따르면 메시아는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고,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 조각은 맞춰졌다.


그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수많은 돌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여관 주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미 죽은 자들의 명단에 이름이 있었지만, 그의 손자에게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밤, 많은 이들이 방을 구하러 왔지요. 저희는 이미 자리가 다 찼고… 한 부부가 왔을 땐, 그저 축축한 마구간밖엔 남지 않았어요."


축축한 마구간. 그 차가운 구석에서 태어난 아이. 마리아가 낳은 첫 아이였다. 그녀가 얼마나 지쳤을까. 낯선 곳, 낯선 냄새, 그리고 낯선 고통.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아기를 감쌌다. 그리고 곁에 있는 요셉은, 그저 곁을 지켰다. 내가 들은 증언들엔 요셉의 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깊고 단단한 울림처럼 느껴졌다.


그 구유. 사람들은 말한다. 그저 동물들이 먹던 그릇이라. 하지만 내가 걷던 베들레헴의 골목에서 만난 노파는 말했다.


"그 구유는 아주 좁은 바위틈에 있었어요. 찬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곳이었지요. 겨울에는 손끝이 얼 정도였어요."






아이는 그런 곳에서 태어났다. 벽도 제대로 없는 바위틈, 찬 공기가 스며드는 곳, 말들이 숨을 쉬던 자리에.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왜 하필 그런 자리였을까. 왜 하필, 그렇게 작고 춥고 낯선 곳이어야 했을까.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그 답을 명확히 말해준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이들의 눈빛은,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그날 밤, 이상하게 별이 밝았어요.”


“사람들 마음이… 뭐랄까, 조용히 떨리던 밤이었죠.


누구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가운 구유 속에서 세상이 아주 잠시, 조용히 따뜻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저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쩐지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건 누군가의 믿음을 설득하려는 글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아주 작게 시작되었던 순간을 따라가는 일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 아이가 세상에 왔던 날을 이야기할 때마다 목소리를 낮추었고, 눈빛은 멀어졌다. 마치 그날의 공기와 냄새, 분위기가 다시 떠오르기라도 한 듯이.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조용히 다가오는 진실 앞에서 조금 작아지는 존재들 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한 걸음 멈춰 서서 묻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광야에 살았던 아이도, 구유에 태어난 아이도, 그렇게 아무도 준비하지 않은 세상 한복판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환호도 없었고, 깃발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가며 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80-2:7"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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