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ay 8 - 먼 데를 먼저 본 사람

자신의 아이보다 오실 이를 먼저 축복한 아버지, 즈가리야

by 나그네 한

그날의 이야기는 이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었다. 오랜 침묵 끝에 한 노인의 입이 열렸고,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어떤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아들을 위한 축복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며 노래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요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하지만 정작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보다도, 노인의 찬양이 가리키는 방향이 더 궁금했다. 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그날의 분위기를 말해준 이는 여러 명이었지만, 나는 특히 그 늙은 여인의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는, 한 늙은 여인이 내게 들려준 그날 아침의 공기였다.


“그이 눈빛이 달라졌어,”


그녀는 말했다.


“한밤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이른 안개가 걷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지. 즈가리야가 조용히 일어났을 때, 마치 그가 한참 전부터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어. 아이의 이름을 적으면서도 손이 떨리지 않았고… 우리가 그걸 읽고 있는 동안, 그는 고개를 들더니 갑자기,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했어.”


그 노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고 했다. 노성은 아니었지만, 마치 오래 묵혀진 생각들이 한꺼번에 흘러나오는 것처럼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흐름이었다고.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 단지 한 아이가 태어난 일이 아니오. 이건 시작이오. 우리에게 약속되었던 어떤 것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요.”


그가 입을 연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사가랴의 말에는 강요가 없었다. 그는 어떤 설득도 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나 간절한 사람처럼, 아니, 오랫동안 참았던 어떤 이야기를 마침내 꺼내는 사람처럼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웃 남자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말이지? 아이 얘기가 아니었어?”


또 다른 이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지금… 저분이 말하는 건, 다른 아이…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말하는 건가?”


“구원자라니, 다윗의 자손이라니… 설마 우리가 듣던 그 이야기?”


한 여인이 흠칫하며 속삭였다. 눈을 떼지 못한 채.


“즈가리야가 무언가를 본 거야. 그동안 입도 열지 못하던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또렷하게 말하는 걸 보라고.”


누군가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공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무거워졌고, 그러나 이상하게 따뜻했다. 마치 모두가 같은 것을 막연히 상상하던 순간, 누군가 그 상상을 갑자기 현실처럼 말해버린 느낌이었다.


그가 꺼낸 첫 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아직 이 땅에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가 남긴 말들을 여러 번 들었다. 각각의 입에서 조금씩 다른 색깔로 전해졌지만, 그 중심은 같았다. 그는 그를 ‘능력 있는 구원자’라고 불렀다.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일으켜 주신 분”이라고도 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이야기들이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처럼. 그는 눈앞의 아이보다 더 먼 시간과 사건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 오고 있다는 감각, 그것은 사가랴 한 사람의 착각이라 하기엔 너무나 분명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예언자들의 말, 수백 년 전부터 사람들이 귀 기울이던 약속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이론처럼 말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하듯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이토록 오래 기다려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소. 우리의 기다림은 끝이 아니라 준비였소.”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제 우리는 드디어 자유롭게 하느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소. 겁내지 않고, 숨지 않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삶 말이오. 올곧고 떳떳하게, 사람답게… 그렇게 살 수 있는 날이 온 거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오래 생각에 잠겼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말은 어쩌면 비종교적인 사람들에겐 낯선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가 말하는 건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중심을 다시 찾는 일에 가까웠다. 외부의 억압이나 내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그것이 즈가리야가 말하던 구원이었다.


그는 뒤늦게야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의 말투는 마치 이미 많은 것을 다 본 사람의 고요한 확신에 가까웠다.


“아가야… 너는 그분보다 앞서 갈 것이다. 사람들에게 준비하라고 말하는 자가 될 거야. 이 길이 어딘지를, 어둠 속을 걸어온 이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겠지.”


그 말에서 나는 즈가리야가 얼마나 자기 아들을 사랑했는지를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 아이를 자기 것으로 붙잡지 않았다. 그가 품고 있는 사랑은 소유가 아니었다. 그는 아이의 사명을, 아이의 길을 미리 내다보며 그 길의 어려움까지도 조용히 품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조용했지만 가장 따뜻했다.


“우리는 모두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오. 어둠 아래에 오래 있었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빛이오. 죽음의 그림자에 눌려 있던 우리 삶을 밝혀 줄… 자비의 빛.”


나는 그날 즈가리야를 본 사람이 남긴 기록을 두어 개 더 확인했다.






그 순간, 내 안에도 이상하게 고요한 울림이 번져갔다. 그것은 소리 없는 물결처럼 마음 깊은 곳에 내려앉았고, 오래된 질문 하나가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지금, 어디쯤을 걷고 있는가.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때때로 어둠 속에 머문다.


눈을 감고 싶은 날도 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무거운 날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조용히 멈춰 섰던 순간이 내게도 있었고, 누군가 옆에서 말없이 불을 켜주길 바랐던 적도 있었다.


즈가리야의 말이, 그 침묵 끝에 터진 노래가, 마치 내 마음속 오래된 방 하나를 천천히 열어주는 듯했다. 자신의 아들을 향한 축복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목소리 안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희망 하나를 더듬고 있었다.


그가 노래를 마치던 날, 마을은 조용했다.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고, 아이의 울음조차 잠시 멈춘 듯했다. 어떤 이는 말했다.


“바람이 멎은 줄 알았소. 그런데… 내 안에서 뭔가 움직였소.”

또 어떤 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즈가리야는 단지 한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닫혀 있던 시간을 열었고, 말 없는 기다림에 한 줄의 빛을 더했다. 그 빛은 이 마을을 바꾸었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오늘도 다시 한 줄을 적는다.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이 기록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히 닿기를 바라며.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외진 곳에서 입을 열 준비를 하는 이가 있을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곳에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실을 조심스럽게 꺼내려는 사람이. 그가 말을 시작할 때, 나는 이 노래를 기억하고 싶다. 이건 단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작고 조용하게 시작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작지만 확실한 신호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67-79"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누가복음 #스가랴의찬가 #요한의탄생 #침묵의끝 #노인의노래 #빛을기다리는사람들 #하느님의약속 #구원의시작 #진짜예배 #예언의성취 #구원자의길 #믿음의회복 #사명의아이 #누가복음1장 #예수보다먼저 #하느님을섬긴다는것 #올곧은삶 #자비의빛 #어둠속의희망 #침묵의영성 #누군가를위한기록 #잊지않기위한기록 #세상의빛 #진심의고백 #고요한울림 #브런치에세이 #영혼을두드리는글 #성경묵상글 #조용한변화 #작지만확실한신호


keyword
이전 07화Day 7 - 이름을 부르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