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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2 –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어요

예수를 처음 알아본 이들과, 기록하는 이의 조심스러운 고백

by 나그네 한

나는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래된 성전의 돌바닥에 고요히 앉아, 그녀가 남긴 자국을 더듬었다. 어떤 기도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으면 알 수 있다. 오래도록 깨어 있었던 마음이 남긴 흔적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게로 다가온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파누엘의 딸로, 아셀 지파의 핏줄.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였다고 한다. 예언자라기보다, 나는 그 여인이 ‘시간의 사람이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느낀다. 일곱 해 남편과 함께한 삶. 그리고 그 뒤로 여든넷이 될 때까지, 오직 성전에서 보낸 시간. 그녀의 인생 대부분은, 사랑보다 기다림으로 채워졌고, 그 기다림은 사람보다 하느님을 향해 있었다.


낮이면 안나는 늘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성전 동편,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기둥 옆. 사람들은 그녀를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기억했다. 입은 움직이지 않아도 손은 하늘을 향해 있고, 눈은 반쯤 감긴 채였다. 누군가 물었다.


“저 노파는 늘 저기 있네요?” 그러면 옆에 있던 상인이 대답했다. “몰라요. 저 여자는 여기서 사는 것처럼 보여요. 새벽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먹는 걸 본 적도 없고.”


아이들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말없이 앉은 채 먼 데를 바라보는 모습이 처음엔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커서, 내게 말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나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한텐 큰 위로였어요. 마치, 누군가 하늘을 대신 쳐다봐 주는 것처럼.”


밤이 되면 안나는 기둥 사이로 몸을 옮겼다. 모닥불도 없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경비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 말이죠. 추울 땐 걱정돼서 두꺼운 겉옷이라도 주려 했는데, 항상 정중히 거절하더군요. 대신 내게 부탁했어요. '혹시라도 누군가 오늘 밤 성전 문 앞에 울며 올지도 모르니, 내가 있는 걸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어떤 날은 다가오는 이를 조용히 불러 세우곤 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는, 무엇을 기다리나요?”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냥 눈을 피한 사람들이 많았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멈춰 서서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들에게 안나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예루살렘이 다시 숨 쉴 날을 기다립니다. 그 아이가 올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들은 사람 중 한 명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이미 노인이 되어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했다.


“그 여인은 하느님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소. 다만 우리 민족이, 이 예루살렘이, 언젠가 구원을 얻게 되기를… 그걸 위해 평생을 그곳에 두었지. 우린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여인은 그걸 믿었어요. 끝까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성전 마당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예식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향 냄새가 낮게 깔리고, 제사장의 낭랑한 목소리가 기둥 사이를 울렸다. 늘 그 자리에 앉아있던 안나는 그날도 같은 자세로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이 어느 순간 스르르 떠졌다. 마치 무언가를 느낀 듯,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한 부부가 아이를 안고 성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가난한 옷차림, 초조하게 주위를 살피는 걸음. 많은 사람들 중 한 가정이었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나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늘 지켜보던 한 성전 수위가 깜짝 놀라 다가갔다.


“어머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괜찮으세요?”


안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들어 보였다. 그 눈빛에는 어떤 결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천천히, 마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을 건너는 듯한 걸음으로, 아기 앞에 섰다. 제사장은 아직 축복의 기도를 마치지 않았고, 부모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노인의 등장에 당황해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는 말없이 안긴 채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손을 대지도 않고, 이름을 묻지도 않고, 다만 아주 오래 기다리던 무언가를 마주한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오셨군요… 오셨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근처에 있던 몇몇 사람이 고개를 돌릴 만큼 진지했다.


“이 아이가… 바로 그분이에요. 구원을 위해 보내진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은 예수였다.


안나는 그 이름을 듣지도 않았고, 부모에게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래도록 기도했던 사람이 알아보는 건, 이름보다 깊은 진실이었다.


부모는 어리둥절했고, 제사장은 잠시 동작을 멈췄다. 지나가던 한 중년 여인이 속삭였다.


“또 무슨 말을 시작하는 거지… 늘 저러시잖아.”


하지만 그 말에 옆에 있던 한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아뇨, 이번엔… 이번엔 뭔가 다른 눈빛이었소. 나, 저 노인네 30년을 봤는데, 저런 표정은 처음이오.”


안나는 아이를 축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손을 들고 조용히 기도했다.

“하느님, 내가 그 얼굴을 보게 하셨군요… 이제는 됐습니다. 이 아이가, 어둠을 비출 것입니다. 이 아이로 인해 우리의 눈물이 닦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 동안, 안나는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 이 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소처럼 조용히 지나치던 사람들이 멈춰 섰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우리 민족이 오래 기다려온 구원… 그게 저 아이예요.”

말을 끝낼 때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마치 그 말을 몇십 년 전부터 되뇌고 있었던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물론 모두가 그녀의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노망이 난 게지. 저런 애를 두고 뭘 안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는 어느 중년 남자의 말을 기억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그 아이의 눈을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그 눈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보는 것 같았어요.”


나는 믿는다. 그날, 그 여인이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깊은 자리에서, 오래 기도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말은,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 속에서 가장 낮은 음성으로 들려오지만… 가장 진실된 소리로 가슴에 남는다. 마치 오래된 종소리처럼. 한 번 울리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리로.





그 아이의 이름은 예수.

그를 데려온 이는 요셉과 마리아였다. 예식이 끝난 후, 그들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고향이었다. 해가 지면 닭의 울음보다 먼저 어두워지는 마을. 마른 돌과 붉은 흙이 뒤섞인 길, 낮은 담벼락 너머로 올리브 나무들이 고요히 바람을 맞이하던 곳. 나는 그 마을에도 다녀온 적이 있다. 낮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퍼지고, 저녁이면 창문마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곳. 나사렛은 작고, 따뜻하고, 별다를 것 없는 동네였다.


예수는 그곳에서 자랐다. 아주 평범한 아이로.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던 구두장이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아이 말입니까? 뭐, 별다르진 않았어요. 그저 참 조용했지. 장난도 치고, 친구들이랑 흙장난도 하고… 근데 어쩐지 그 눈빛이 좀 달랐소. 사람 말을 그냥 듣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삼키는 것 같달까…”


그 말이 처음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나사렛에서 만난 사람들 중 열이면 아홉이 비슷한 말을 했다.


“예의가 바른 아이였지.” “생각이 깊은 아이.” “요셉의 아들, 맞아요. 그 목수 말이죠. 아들이 하나 있는데, 손재주가 좋더라니까요.”


사람들은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 불렀다. 이름보다 관계로 기억되는 것이 작은 마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어른들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을 예수에게서 느끼곤 했다고 했다.


“그 아이, 말수가 적은데도 묘하게 신뢰가 갔어. 그런 애들이 있어. 말보단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아이.”


그리고 어느 해,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였다. 그해 과월절,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손을 잡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처음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열두 살은 과월절 의무가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열세 살부터 공식적으로 성인 대열에 들며 성전에 참여할 자격을 갖는다. 하지만 요셉은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성전에 들어가기 전날, 마을 회당에서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요셉, 이번에도 올라가시나 봅니다?”

“예. 이번엔 예수도 데려가려 합니다.”

“아, 이제 벌써 열두 살인가요?”

“네. 아직 어리긴 하지만…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이 어떤 곳인지, 그 공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마리아는 조용히 미소 지었고, 예수는 말없이 어른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날 예수의 손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작은 여행용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나뭇결이 아직도 살아 있었고, 꼭대기에는 십자가도 별도 아닌 작은 매듭이 매어 있었다. 그 지팡이를 꼭 쥐고, 그는 부모의 뒤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은 명절 기간 동안 언제나 붐볐다. 기억을 따라 그때의 광경을 그려본다. 사람들의 발자국, 마른 흙먼지, 머리 위로 퍼지는 찬송가 소리와 염소 울음소리, 고기 굽는 냄새, 동전 부딪히는 소리… 그 모든 것이 공중에 얽혀 있었다. 예수는 그 틈에서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화려한 제단도, 성전의 흰 기둥도 아니었다.


기다란 그림자 아래서 자신의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어느 노인의 모습. 그 앞에 작은 새 두 마리를 들고 선 젊은 부부.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굳게 다문 한 어린아이. 예수는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말없이, 그러나 깊이.


마치 이 도시가 품고 있는 기도들과 고통과 기다림, 그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야기는 아직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작의 자리엔 언제나 ‘그 아이’가 있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그러나 스스로 걸음을 내딛던 아이.

말없이 그러나 놀랍게 깊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


그리고 나사렛의 모든 평범한 하루들이, 사실은 그를 위한 시간이었다는 걸…

나는 그 마을을 떠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명절이 끝났다. 사람들은 짐을 꾸리고,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천천히 다시 제 고향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북적였지만, 떠나는 이들의 걸음에서 명절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요셉과 마리아도 무리에 섞여 있었다. 함께 길을 나선 친척들과 이웃들, 아이들은 여기저기에서 웃고 뛰며 몰려다녔고, 어른들은 발걸음보다 말이 먼저였다. 하루를 넘겨 집에 도착할 거라며, 마리아는 보자기에 싼 마른 빵을 꺼내 조카 하나에게 건넸고, 요셉은 낙타 끌고 가는 친구와 발맞추어 걸었다.

해가 기울 무렵, 마리아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수는 어디 있지?”


처음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분명 사촌들과 어울려 있을 거라고, 늘 그러듯 마지막 무리에 끼어 천천히 따라오고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고, 사람들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혹시 예수를 봤어요?” “글쎄요, 아까도 안 보이던데…”


그때부터 걸음이 멈췄다. 그들은 함께 지나온 길을 되짚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요셉은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고, 마리아는 점점 숨을 거칠게 쉬었다. 무리 속에서 아이가 하나 없어졌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마리아는 말하면서도 떨리는 손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낯선 도시, 이미 사람들은 흩어졌고, 거리는 한층 조용해져 있었다. 그들은 골목마다 물었다.


“혹시, 열두 살 남자아이 하나 보셨나요? 키는 이만하고, 눈빛이 아주 또렷한 아이예요.”


“모르겠어요.” “그런 아이 못 봤는데요…”


낮과 밤이 흐르고, 또 다음 날이 왔다.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더 지쳐갔다. 마리아의 눈엔 잠이 사라졌고, 요셉은 말이 없어졌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그냥 걸어갔을까?’ ‘어디서부터 놓친 걸까?’


그리고 셋째 날.


성전 앞에서, 그들은 아이를 발견했다. 예수는 한 무리의 어른들 가운데 있었다. 성전 구석, 큰 기둥 사이.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예수가 있었다. 나란히 앉아 말을 듣고, 때로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며, 짧지만 깊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훗날, 그 자리에 있었던 학자의 손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애 말입니까? 처음엔 그냥 신기했죠.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는 것도 대단했지만… 뭔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우리가 놓친 부분을 정중하게 짚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가 그 아이에게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눈빛도 그랬어요. 아주 오래된 사람처럼… 듣고도 잊지 않을 눈이었죠.”


요셉과 마리아는 그 장면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리아는 입을 떼기까지 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아이에게 다가갔다.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게 했니? 우리가 얼마나 너를 찾아 헤맸는지 아니?


아이 예수는 잠시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왜 나를 찾으셨어요?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어요.”


나는 그 말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어요.’


그것은 단지 장소를 말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왜 거기 있어야만 했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치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는 아이처럼. 그리고 그 자리에 있으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을 들은 부모는 아이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열두 살 아이가 예루살렘 성전이 자신의 자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이가 아니라 예언자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고개를 숙였고, 요셉은 조용히 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예수는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부모의 손을 따라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작고 조용한 마을,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곳. 그곳에서 예수는 다시 평범한 아이처럼 살아갔다. 순종했고, 일했고,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러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날의 말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어요.’


그 말은 그날 이후, 마리아의 마음속에도 남았다. 어쩌면 그녀는 예수의 모든 걸음마다,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해석했을 것이다.


‘지금도, 저 자리가 예수가 있어야 할 자리일까?’


나는 이 말을 기록한 이후에도 종종 되새긴다. 누군가 진심으로 자기 자리를 아는 순간, 그 존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날 성전에서 울려 퍼졌던 이 한 마디. 그것은 예수라는 인물의 시작을 알리는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단 한 번의 대답으로 열렸다.





그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들, 그를 스쳐간 사람들의 눈빛, 그리고 그 기억들이 말없이 가리키는 방향 속에서… 나는 조용히 그 아이를 따라가고 있다.

그는 어디에 있었고, 어디로 갔으며, 왜 돌아왔는지를. 그리고 그가 걸어간 자리에 무엇이 피어났는지를.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오래된 침묵을 걷어내야 했고, 때로는 말끝을 머뭇거리던 이들의 숨결에서 한 조각씩 이야기를 모아야 했다.


“그 아이가요…”

“그날 그 눈빛이요…”

“그 말이 잊히지 않았어요.”


이야기들은 다 다르지만, 하나의 결로 흘렀다.

한 아이가 남긴 발자국.

그 길 위에, 나는 귀를 대고 마음을 붙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도록, 한 줄씩 조심스레 써 내려갔다.


내가 본 것도 아니고, 내가 겪은 것도 아니지만…

이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길이라고 믿었기에.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말했던 그날처럼, 나도 지금 이 자리에 머물며, 그가 걸어간 길의 시작을 이 작은 글 속에 남긴다.


그 길의 이름은 —

예수.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2:36-52"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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