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물가, 그리고 예수의 첫걸음
그날 사람들의 얼굴엔 저마다의 사연이 얹혀 있었다. 시장 골목을 지나 요단강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말없이 줄을 서 있었고, 서로를 힐끗 보면서도 눈길을 오래 두진 않았다. 아이를 안고 선 여인의 눈엔 간절함이 고여 있었고, 허리 굽은 노인은 양손에 지팡이를 꽉 쥔 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기다림은 공기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었고, 그 기다림 속엔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누구도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지만, 모두의 눈빛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단순히 살기 좋아지기를 바라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어떤 이는 죄책감과 상실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 그곳에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언젠가 누군가 와서 이 고단한 시대를 바꿔줄 거라는 그 약속—그 약속이 드디어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그들의 기다림은 말보다 오래된, 몸에 밴 절실함이었다.
그 중심에는 요한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처음엔 이상한 소문이었다. 광야에 누군가 나타났는데,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낙타털로 된 거친 옷을 입고, 허리엔 가죽띠 하나만 두른 채, 메마른 강가에서 메뚜기와 야생 꿀로 연명하며 산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를 따라갔다. 며칠을 걸어야 하는 길인데도, 그를 한 번 보기 위해 도시에서, 마을에서, 심지어 사마리아 쪽에서도 왔다고 했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그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 사람, 처음엔 무서웠어요. 말이 얼마나 쏘아붙이는지, 다 들춰내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요…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속을 시원하게 해 주더라고요.”
“회개하라! 물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야 한다!”
요한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외쳤다고 한다. 누군가는 찔린 표정으로 돌아섰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며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어떤 교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다. ‘너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너희 안에 무엇이 진짜인가’ 하고 묻는, 그런 말들이었다. 죄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사람들 사이에선 수군거림이 생겨났다.
“혹시 저 사람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분이 아닐까?”
“메시아 말이야? 설마… 그렇지만, 요한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기대와 혼란이 뒤섞인 그 소문은 바람처럼 번져갔다. 어떤 이는 조심스레 기대를 품었고, 어떤 이는 아예 단정 지었다. 하지만 정작 요한 자신은 그 말들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요한은 단호하게 말했단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씻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곧 오시는 분은, 물이 아니라 불과 같은 존재야. 그분은 안으로부터 사람을 바꾸실 거야. 나는 그분의 신발 끈도 감히 풀 자격이 없어.”
그 말은 충격이었다. 요한조차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온다고?
어떤 이는 그 말을 듣고는 곧장 돌아갔다.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그 말을 가슴에 품었다. 정말 그런 분이 오신다면, 나도 준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요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고 한다. 맑은 물가에 선 그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졌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씻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곧 오시는 분은, 물이 아니라 불과 같은 존재야. 그분은 사람의 겉이 아니라 속을, 마음 깊은 곳을 바꾸실 거야. 나는 그분의 신발 끈조차 감히 손댈 수 없는 사람이야.”
그 말을 들은 이들 중 몇몇은 서로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불로 씻는다고? 그게 뭘 뜻하는 거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온다니… 저 사람이 메시아는 아니라는 거잖아.”
누구는 낙심한 듯 고개를 떨구었고, 누구는 찬바람을 맞은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그럼 도대체 그분은 누구란 말인가? 요한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고?”
어떤 이는 그 말을 듣고는 턱을 굳게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난 더 이상 이런 얘기 안 듣겠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그는 짚신을 툭툭 털며 먼지를 일으키고는, 혼자 발길을 돌려 사라졌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그 말을 조용히 마음에 새겼다. 어떤 중년 남성은 강가에 오래 앉아 있다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손에 쥐고 말했다.
“만약 정말 그런 분이 오신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 거겠지.”
그날의 대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가르고, 어떤 이의 가슴엔 불을 붙였고, 어떤 이의 기대엔 다시 꺼지지 않는 불씨를 남겼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불로 씻는 사람. 물이 아닌 불로, 겉이 아닌 속을 바꾸는 사람. 그건 단지 뜨거운 감정이나 격한 열정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요한은 그 사람을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고르는 이로 비유했다. 손에 든 도구 하나로 곡식을 공중에 던져, 바람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게 한다고. 무게 있는 것만이 땅에 떨어지고, 껍데기뿐인 건 날려버려 져 결국 불에 태워진다고 했다.
그 말은 날카로웠다. 그분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보지 않으신다. 말이 화려한지, 지식이 많은지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신다. 중심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사람을 살리는 알맹이가 있는가, 아니면 텅 빈 껍질뿐인가. 나는 문득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됐다. 만약 내가 그 바람 속에 던져진다면, 나는 떨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흩날려 버리는 쭉정이에 불과한 걸까?
요한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그건 삶에 대한 정직한 진단이었다. 사람의 무게를 가늠하는 말, 내가 지금까지 붙잡고 살아온 것이 과연 진짜였는지를 묻게 하는 말. 그리고 그 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열어줬다. 누구는 겉만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었고, 누구는 조용히 속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걸 구분해 낼 수 있는 분이 곧 오신다는 것. 그것이 요한이 던진 가장 두려운 예고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요한에게 다가왔다. 조용하고 고요한 얼굴을 가진 이였다. 그는 말없이 다른 이들과 함께 줄을 섰고, 아무런 특별한 요구도 없이 요한이 주는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 특히 요한은 그 순간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구원의 상징처럼 등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죄를 씻는 의식을 받았다.
조용한 충격이 흘렀다고 했다.
“그 이름은…… 예수였다.”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그 순간, 하늘이 열렸다고 한다. 구름이 걷히는 것과는 다른 일. 빛이 내리쬐는 것도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 틈 사이로, 마치 비둘기처럼 무언가가 내려왔고, 그 사람 위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 앞에 낯선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날도 강가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회개의 말에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고, 머뭇거리다 돌아서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쯤,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조용했다. 묵묵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의 얼굴은 담담했다. 흔히 보는 죄책감의 표정도, 감정에 겨운 눈물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고 한다.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낯설었다고.
요한은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고 전해진다. 어떤 이는 말했다.
“요한이 그 사람을 보고 잠깐 말을 멈췄어요. 마치 뭔가를 느낀 듯했죠.”
그 남자는 아무런 요구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물속으로 들어갔고, 요한은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물로 그를 씻었다. 누구보다도 조용히, 아무 의식도 없이, 그 의식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이상한 정적에 휩싸였다고 했다.
“저 사람… 누구야?”
“왜 요한이 말을 못 이어가지?”
“저 표정… 우리가 아는 누군가랑 달라.”
그는, 구원을 말로 떠들던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징처럼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 땅의 누구보다 먼저 사람들 앞에서 죄 씻는 물에 몸을 담갔다. 충격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웅성이지도, 소리치지도 못했다. 그저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이름은, 예수. 모두가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가… 정말 오신 걸까?”
그 순간, 하늘이 열렸다고 한다. 맑게 갠 날씨의 해가 아니라, 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어떤 이는 말했다.
“그건 빛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었어요. 그냥, 세상이 조용해졌어요.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았죠.”
그 틈 사이로, 마치 비둘기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무언가가 내려왔다. 그것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고, 아무도 흔들지 않았는데도 공중에서 곧장 예수의 머리 위에 머물렀다. 그것은 하느님의 숨결 같았고, 오래된 약속의 조용한 도착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이는 분명히 들었다고 했다. 조용한 물결 사이를 비집고, 마치 바람처럼 스쳐간 그 소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기쁨이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고 했다. 한 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속에서 무너졌어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하늘이 말을 건넸는데, 내 얘기인 것처럼 들렸어요.”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머릿속에서 그 장면은 계속 그려졌다. 마치 내가 그 강가에 있었던 것처럼, 물비린내와 햇빛, 사람들의 숨죽인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목소리—하늘이 직접 내려준 한 사람의 이름.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정체성을 선물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그는 누구인지, 왜 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모두 담아내는 한 문장. 누구도 그를 대신 해석할 수 없게 만든 그 말 한 줄.
놀라운 건, 그런 존재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앞서지도, 따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줄 가장자리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고,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울고 회개하는 그 물가에서, 그는 누구보다 낮게 자신을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분, 처음 봤을 때는 몰랐어요. 그냥 조용한 사람이구나 했죠.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조용히 계셨던 분이, 사실은…”
나는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에게 물었다.
“왜요? 그분이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냥 스스로를 드러낼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담담히 말했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분은 우리처럼 그 길을 걷기로 하신 것 같아요. 회피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똑같이 줄 서서 물속에 들어가셨죠. 오히려 그래서, 저는 그분이 더 믿어졌어요.”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위대함은,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무름으로 드러난다. 그날 강가에선 아무도 모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그분은 서른 살이 되자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그 나이는 누가 봐도 더 이상 어린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다. 남의 말에만 기대어 살 수 없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기도 하고, 이미 인생의 쓴맛을 몇 번쯤은 본 사람들이 도달하는 그 시기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요셉의 아들, 예수 말이지? 나사렛 출신. 목수잖아.”
그에게 ‘평범함’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사렛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이름 있는 학자도 없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말보다 살아낸다는 말이 더 익숙한 동네. 예수는 그곳에서 자라며 나무를 다듬고, 연장을 들고, 손에 못자국이 생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집은 작고, 옷은 수수했으며, 특별한 호칭 없이 사람들은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런 평범한 틀 안에 가장 비범한 이야기를 숨기신다는 것을. 드러나는 삶보다, 감춰진 마음을 보시는 분. 화려한 무대보다, 골목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택하시는 분.
그래서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좇고 있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를 직접 봤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단지 그들의 기억을 이어 붙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떤 조각은 흐릿해서 망설이게 했고, 어떤 조각은 너무 또렷해서 되레 내 해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이 이야기는 오래된 문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이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묻고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질문은 단지 그분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내 안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나는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조심스럽게 다음 사람을 만나러 간다.
또 다른 조각을 찾아,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3:15-23a"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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