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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9 - 그물보다 먼저 무너진 마음

‘지금은 아니다’라 말하던 그에게 다가온 초대

by 나그네 한

그날도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해가 중천을 넘긴 무렵, 겐네사렛 호수 근처에서 낚시 바구니를 말리고 있던 노인이 잠깐 짬을 내어 내 앞에 앉았다. 그는 시몬(베드로)이라는 어부의 조카였다고 했다. 자신은 그 집에서 오래 머물렀고, 병상에 누웠던 시몬의 장모가 열에서 벗어나 거뜬히 일어나 밥상을 차리던 날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예수가 시몬의 집에 다녀간 뒤로, 집안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했다.


“삼촌 말이에요, 예수가 장모님 손을 잡고 일으켰을 때, 표정이… 말이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뭔가가 시작된 거죠. 삼촌 마음속에서요.”


그날 이후 시몬은 예수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선뜻 따라나설 수는 없었다. 고기를 잡는 일은 하루라도 손을 놓기 어려웠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어딘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보였고, 예수가 무리를 고치거나 말씀을 전할 때면 어김없이 가까운 데서 지켜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 삼촌이, 예수가 다시 호숫가에 오셨을 때, 아무 말도 않고 자기 배를 내주더라고요.”


노인은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숫가는 고요했다. 바람도 잠잠했고,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앉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호숫가에 정박된 배들 사이로 물결이 조용히 밀려들고 있었고, 물새들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예수에게 건의했다.


“배에 올라타 말씀을 전하시면 어때요? 물 위라 더 잘 들릴 거예요.”


예수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바닷가에 대어 둔 두 척의 배 중 하나를 골랐다. 시몬의 배였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 배는 그날… 고기를 잡으려던 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데 쓰였지요...”


시몬은 원래 그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부터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온 참이었다. 밤새도록 일했다. 노를 저으며 깊은 데로 나가고, 찬물 속에 손을 넣어가며 그물을 던지고 또 걷었다. 그래도 빈손이었다. 고기 한 마리 건지지 못한 채, 몸은 축축하고 무거웠고, 손은 갈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지쳐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장모는 여느 날처럼 시몬이 잡아온 생선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날 아침, 시몬은 아무것도 들고 가지 못했다.


사실 그는 몇 주 전부터 이상한 변화 속에 살고 있었다. 예수가 그의 집에 다녀간 이후부터였다. 열병으로 앓아누웠던 장모가 예수의 손에 일어선 날, 시몬은 모든 걸 봤다. 병이 나은 것을 본 것이 아니라,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무엇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시몬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어부였다. 배를 끌고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게 그의 삶이었고, 생계였다. 매일의 삶은 그물로 시작해서 그물로 끝났다. 그가 버려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가족도, 어업도, 마을도, 습관처럼 해오던 일과 생각들도. 예수를 따라나선다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모든 걸 새롭게 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망설였다. 예수가 다른 마을로 떠날 때에도, 병든 사람들을 고칠 때에도, 시몬은 곁에서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이대로 살아야 한다. 지금은… 아니야.’


그런 그에게, 예수가 다시 다가왔다.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시몬의 배에 오르셨다. 시몬은 놀라지도 않았다. 말없이 예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시몬의 머릿속엔 생각이 많았다.


‘적어도 이 배라도 드릴 수 있다면… 나를 부르셨을 때, 아무것도 내어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작은 답이라도 될 수 있겠지.’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계속 쌓여가던 미안함이 있었다. 그날 장모가 일어나던 순간부터 그는 부름을 받은 듯했지만, 끝내 따라나서지 못했던 그 시간들. 시몬은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여겼다.


‘남들은 고침 받았다고 길을 떠나는데, 나는 아직도 그물 붙들고 있구나…’


그 배를 내어드린 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몬 나름의 고백이었다. 그는 물러서 있었지만, 완전히 등을 돌린 건 아니었다.


그 작은 마음이, 그날을 바꾸었다.








예수는 배에 앉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호숫가엔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고,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삼키며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셨는지는 끝까지 들은 이가 없다고 했다. 다만 그 목소리가 잔잔하고 낮았고, 때로는 바람보다 더 조용히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한다.


예수가 말하는 동안, 시몬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배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거칠었고, 옷자락은 아직도 밤새 던졌던 그물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그렇다고 멀리 떠나지도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 어딘가 붙잡혀 있는 사람처럼.


그런데 갑자기, 예수가 사람들을 향해 말하던 입술을 멈추더니, 시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대화의 흐름이 끊긴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보게.”


그 말은 조용했지만, 의외였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주변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몇몇 사람들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지금 고기를 잡으라는 건가?'

'말씀은 다 끝난 건가?'

잠시 조용해졌던 호숫가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시몬도 당황했다. 그 순간이 그의 의지를 시험하는 자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말 한마디에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예수의 얼굴이 보였다. 특별한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한 사람을 향해 아주 오래 기다려온 눈빛 같았다.


시몬의 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금 이 시간에? 한 마리도 없었다고요, 밤새도록...’


그의 손끝은 본능처럼 움찔거렸고, 마음은 갑자기 거센 물살을 만난 듯 요동쳤다.


‘하지만... 이분이 말씀하시니까.’


그가 전에 본 손. 병든 장모의 손을 잡던 그 손. 눈을 감고도 떠오를 만큼 따뜻했던 손. 그 손이 그물보다 깊은 곳에서 시몬의 마음을 당기고 있었다. 그래서 시몬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밤새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씀하시니, 그물을 던져보겠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노를 저어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엔 아직도 머뭇거림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물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났다. 그물을 던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물아래서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처음엔 몇 마리쯤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물은 금세 끌어당기는 힘에 못 이겨 팽팽해졌고, 버둥거리는 고기들이 뒤엉켜 물살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그물은 찢어질 듯 흔들렸고, 시몬은 곧장 동료들을 불러 손짓했다.


다른 배가 다가왔고, 모두가 달려들어 그물을 함께 끌어올렸다. 그 순간, 물고기들이 배 위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깊은 데서 무언가가 터져 나온 듯, 끊임없이 튀어 오르고, 배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배는 물에 잠길 듯 무거워졌고, 모두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시몬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에선 아직도 물비린내가 났고, 무릎 위에는 축축한 그물이 엉켜 있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기쁨이 아니었다. 놀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이건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그는 이 사람을 계속 외면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손 내미시는 걸 알면서도, 끝내 자신의 세계 안에만 머물렀다는 걸.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장면이 떠올랐다. 장모가 고침 받던 순간, 예수의 눈빛, 자꾸만 도망치던 자신, 그물에 얽힌 삶.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그를 덮쳐왔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었지만, 눈은 들지 못했다.


“선생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노인은 눈을 감았다.


“그날 시몬은, 그물보다 먼저 무너졌지요.”


놀란 건 시몬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서 함께 고기를 잡던 요한과 야고보, 그들도 숨을 쉬는 것도 잊은 듯 그물을 붙잡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물 속에서 튀어 오르던 물고기들이 아니라, 예수가 시몬에게 던진 그 한마디에 세 사람 모두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요한과 야고보는 시몬과 함께 오랜 시간 물살을 헤쳐 온 동업자들이었다. 같은 배를 탔고, 같은 거친 물살 속에서 그물을 나눠 들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예수가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마을을 지나며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그들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예수는 분명 시몬을 보고 말했다. 직접 말을 들은 건 시몬뿐이었다.


“두려워 말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야.”


단순히 물고기 대신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 말에는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몬의 어깨에서 뭔가가 툭—하고 떨어져 나간 듯했다. 요한과 야고보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시몬의 귀를 향했지만, 동시에 요한의 가슴에도, 야고보의 깊은 속에도 가닿았다.


‘지금까지 그물은 살아 있는 것들을 가두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분이 말하는 건, 놓아주는 쪽이 아닐까… 자유롭게 해주는 쪽이 아닐까.’


그들은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알고 있었다. 마음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조용히, 배를 몰아 육지로 향했다. 뭍에 닿자마자, 그들은 묵묵히 그물을 내려놓았다. 도르래에 매달려 있던 밧줄, 무릎 위로 걸쳐졌던 그물, 생선 비늘이 묻은 헝겊 조각들... 모두 그대로 두었다.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세 사람은 동시에 걸음을 떼었다.


예수의 뒤를 따라.


그건 어떤 감정적인 충동도 아니었고, 잠깐의 감동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 생각해 온 결정이었고, 마침내 다다른 선택이었다. 노인은 내 손을 잡았다. 거칠고 두꺼운 손,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맞으며 닳아버린 손이었다.


“그날 잡은 고기들 말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내다 팔았어요. 많이 받았지요. 그날은 평소보다 값도 좋았고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 그게... 그들이 짐 정리하고 집안일 마무리하고, 마음 편히 길을 떠날 수 있도록 마지막 뒷바라지가 된 셈이었죠. 하느님이 다 준비하셨던 걸까요.”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물은 찢어졌지만, 그날 그 배는 가장 귀한 걸 건졌지요. 세 사람의 마음.”









나는 조용히 펜을 놓았다. 겐네사렛 호수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결이 잔잔히 수면을 어루만졌고, 멀리서 그물을 정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호숫가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인생의 깊은 데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건네는 말 한마디, 그 말이 예상하지 못한 길로 사람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시몬을 통해 배웠다. 시몬의 배처럼, 누군가의 지친 일상이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예수의 눈빛을 마주한 적도, 그의 손을 직접 잡은 적도 없었다. 시몬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이고, 나는 그 이야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부러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몬을 부르신 그 음성이, 내 마음 깊은 데도 닿았다는 것을. 나를 움직인 것도 한마디 말이었다.


“조심스럽게 살피고, 정확히 써야 한다.”


내 안에서도 시작된 그 부름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고 있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그가 누군가의 마음을 낚았고, 지금도 누군가를 깊은 곳으로 초대하고 있다는 것. 시몬에게처럼, 나에게도.


그리고... 누가 그러더군요.

그 초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5:1-11"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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