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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0 - 무너지지 않은 마음

몸은 누워 있었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by 나그네 한

나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난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병은 단순히 몸의 일부가 썩어간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손끝이 저리다거나, 피부 감각이 무뎌지는 식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증상은 곧 얼굴, 팔, 다리 같은 신체의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까지 번졌다. 살은 갈라지고, 진물이 흐르며, 뼈와 근육이 드러난 채 마치 몸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변해버린다. 어떤 이들은 손가락이 떨어지고, 어떤 이는 코가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외형의 변화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저주받은 자’라 불렀다.

사람들은 죄를 지어 하느님께 벌을 받았다고 믿었다. 심지어 부모나 조상의 죄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누군가 나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사람은 즉시 마을 바깥으로 쫓겨났다.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직업도,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사람들 사이에선 “하느님이 더럽다 하신 자다”, “가까이 가면 너도 물든다”라는 말이 떠돌았고, 아이들은 그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눈도 마주치지 마. 그 눈빛도 병을 옮긴다잖아.”

“제사장에게 그는 걸렸다고 확증받았잖아. 그건 하늘의 심판이지.”

“죄가 많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경고라고, 경고.”


그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누군가 다가오면 외쳐야 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자신이 더럽고 위험한 존재임을, 입으로 먼저 인정해야 했던 사람. 바람이 세게 불면 사람들은 길 반대편으로 피해 다녔다. 혹시라도 바람을 타고 병이 옮을까 두려워서였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법보다, 격리하고 내쫓는 법이 더 익숙했던 시대였다. 그들은 고통받는 사람을 ‘불쌍하다’가 아니라 ‘꺼림칙하다’고 여겼다.


그는 그렇게 살아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이미 그를 죽은 자로 여겼다. 묻히지 않은 시체처럼, 숨 쉬는 그림자처럼, 바람과 먼지와 쓸쓸한 시간 속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단다. 모두가 외면하고 저주하던 자가, 금기를 깨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 순간, 장터는 술렁였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상인들은 장막을 걷어쥐고 뒤로 물러섰다. 어떤 이는 그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미쳤군! 저주받은 놈이 왜 이 안으로 들어와?”

“부정하다! 너 같은 자는 죽어야 해!”

돌멩이가 날아들었고, 누군가는 마른 나뭇가지를 뽑아 들며 위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자신에게 재앙이 닥칠까 두려워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입술은 부르르 떨렸고 다리는 힘이 풀려 흔들렸지만, 그의 눈은 어떤 방향 하나만을 향해 있었다. 그였다. 그가 있는 그 자리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땅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꿇은 게 아니라 거의 쓰러지듯 엎드렸다. 얼굴이 땅에 닿고, 손끝은 먼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침묵이, 분노가, 경멸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그 자리에... 그는 주저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엎드린 것이 아니었다. 그 앞에서만은 자신이 죄인이나 버려진 자가 아니라, 온전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두려움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신뢰였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고 했다.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 안엔 너무도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당신이 능력이 있으시면’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수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남은 건 단 하나였다.

당신이... 나를 원하시느냐는 것.
내게 손을 내미는 것을, 기꺼이 하시겠느냐는 것.

모두가 피하는 이 더럽고 부정한 몸에... 당신은 다가오고 싶으신가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고 한다. 그 말보다, 그 상황보다 더 놀라운 건 예수의 반응이었다. 예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놀라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예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거칠게 갈라지고 진물로 얼룩진 살결 위에, 따뜻한 손바닥을 얹았다. 세상 누구도 감히 닿지 않으려 했던 그 피부 위에, 가장 온유한 손길이 닿은 것이다.


“그래, 내가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그 순간, 사람들의 분노는 침묵으로 바뀌었고, 환멸은 경이로 뒤바뀌었다. 그의 몸에서 병이 물러갔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졌던 그의 '부정함'도 함께 무너진 듯했다. 예수는 능력으로 고치신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 했던 그를, 눈으로 마주했고 손으로 만졌고 말로 받아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나병환자라는 단어를 같은 방식으로 부를 수 없었다. 그는 단지 병든 자가 아니었고, 단지 버려진 자도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간청했고, 예수는 진심으로 응답했다


"... 깨끗하게 되어라."


그 짧은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살아야 했던 외로운 날들, 누구와도 밥을 먹을 수 없고,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나날들이 끝이 났다. 이제 그는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병이 나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로, 삶 속으로, 관계 속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를 향해 닫혀 있던 문이 드디어 열렸다. 그 사람은 병이 나았을 뿐 아니라, 사회 안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지켜야 할 절차가 있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방식대로, 그는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병이 나았다는 증거로 예물을 드려야 했다. 그래야만 사람들도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런 요청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여라. 그리고 정해진 예물을 드려라.”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그 장면을 누군가는 분명히 지켜봤을 테고, 누군가는 그가 마을에 다시 들어오는 걸 보았을 테고, 누군가는 그가 다시 사람들과 식탁에 앉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말했을 것이다.

“그 사람, 나병 환자 아니었어?”

“어떻게 저렇게 멀쩡해졌지?”

그렇게 이야기가 돌았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하나의 소문이 되어 퍼져나갔다. 그 일을 겪은 이가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을 꺼린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그가 원했던 건 사람들의 환호나 유명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병을 고치는 능력만을 주목했다. 모두가 그에게 몰려들었고, 자신도 고침 받고 싶다고 외쳤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사람들의 틈을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말이 많아질수록, 주변이 시끄러워질수록, 자신의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조용히 혼자 머물며 시간을 보냈고, 자신을 다잡는 그 시간이 어쩌면 꼭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을 잃기 쉽다. 자신이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중심을 지키려 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보였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번엔 중풍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던 사람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누군가를 찾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팔도 다리도 자유롭지 않았고, 누운 채로 살아가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했다. 그런 그를 데리고 온 사람이 네 명 있었다.


친구였는지, 가족이었는지, 지나던 행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날도 집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소문을 따라온 이들, 병을 고치고 싶은 이들, 그저 구경하러 온 사람들까지 뒤섞여 안팎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그 넷은 방향을 바꿨다. 지붕으로 올라간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돌고, 기왓장을 걷어냈고, 천장을 뚫었다. 그 구멍으로 침상을 묶어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사람들 눈앞으로, 방 안 한가운데로... 누운 채 움직일 수 없던 그가, 천장에서 내려온 것이다. 당황한 사람도 있었고, 놀란 사람도 있었다. 지붕이 무너진 줄 알았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안 되는 상황이더라도, 이 사람만큼은 거기까지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말보다 먼저 드러난 건 그들의 결심이었다. 이해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살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저 문 앞에서 기다렸다면, 평생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 예기치 않은 말이 나왔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누구도 그런 말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이 낫게 해 달라는 말도 없었고, 죄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자리에 있던 율법 교사들과 종교인들은 얼굴을 굳혔다.


‘하느님 외에는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조용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이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아무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를 향한 또 다른 말이 이어졌다.


“일어나, 네 자리를 걷고 집으로 돌아가라.”


모두가 그 말을 듣고 예수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의심했고, 누군가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예수는 주저하지 않았다. 자리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상을 걷어 들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가렸고, 누군가는 말을 잃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느낀 것은 단지 놀라움만은 아니었다. 평생을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났다는 사실 너머에, 자신들이 믿고 있던 질서와 해석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죄가 용서된다는 말이, 눈앞에서 일어난 회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게 단지 상징이나 의례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찬탄했고, 누군가는 두려워했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장면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 사람은 다시 걸어 나갔고, 방 안에 남은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 모든 이야기를 나는 몇 번이고 되새겼다. 단지 병이 나았다는 기록으로 넘기기엔, 그 안에 담긴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온몸이 무너진 채로 사람들 틈을 뚫고 마을 안으로 들어온 사람, 사람들의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지붕을 뜯어 친구를 아래로 내린 사람들... 그들은 단지 바라는 마음만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움직였고, 결심했고, 마침내 도달했다.
그들의 믿음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상황을 돌파하는 힘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자리에서, 말보다는 침묵이 많았다고 한다. 그 침묵 속에서 어떤 말보다 더 또렷하게 드러난 것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 '원함'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다는, 고쳐지고 싶다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그 말들 속에 담긴 삶의 의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처럼 행동했는가? 내가 절실히 바라는 일이 있을 때, 그 절실함만큼 움직였던 적이 있었는가?


이 글을 쓰며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그 질문을 되뇌었다. 믿음이란 마음속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몸과 말과 선택 속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그들을 통해 다시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의 중심에는
누군가의 손길,
누군가의 응답,
누군가의 조용한 수용이 있었다.
그건 소란스럽지 않았고,
큰소리로 외치지 않았고,
누구를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마주했고, 조용히 손을 내밀었고, 조용히 일으켰다.


나는 여전히 이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엮어가고 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들의 회복이 단지 병이 낫는 것을 넘어서 무너진 삶의 틈을 다시 잇는 일임을 알기에...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를 읽는 누군가도,
그들처럼 조용히
자기 안의 믿음을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5:12-26"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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