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불편해했다. 그러나 시선을 거둘 수는 없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예수는 자주 안식일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처음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고요한 날이었다. 해가 지고 촛불이 켜지면, 집집마다 빵 냄새가 감돌고, 한 주 동안 지친 손과 발이 쉬는 날. 마치 시간마저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그 평화의 날을, 누가 굳이 흔들고 싶어 할까.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 자꾸 안식일에 뭔가를 해.”
어느 날 들은 이야기 속 장면은 이랬다. 갈릴리 북쪽, 초여름 볕이 사선으로 밀려오던 오전이었다. 좁은 길 양옆으로 누렇게 익은 밀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예수와 그의 일행이 천천히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은 다소 지쳐 보였고, 말수가 많지는 않았다고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배가 고파 보였다는 이도 있었다.
그때 몇몇이 밭 가장자리에서 이삭을 꺾었다. 손바닥에 올리고 두 손으로 비볐다. 바삭한 껍질 사이로 드러난 작은 낟알을 털어낸 뒤, 그것을 입에 넣었다. 허기를 달래는 일. 그것은 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동작이었다. 어쩌면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그 손동작이 문제의 시작이 될 줄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 회색 옷자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선 사람들. 바리사이파였다. 그들 중 누군가 눈썹을 찌푸렸고, 또 다른 이는 옆 사람의 팔을 툭 건드렸다. 작게, 그러나 날카롭게 속삭였다.
“봐. 안식일에 저런 걸 하잖아.”
“저건, 곡식을 베는 거야. 율법을 어긴 거지.”
“예수라는 자, 또 저러네. 매번 그날을 건드려.”
그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져갔다. 작은 파문처럼 번졌고, 이윽고 누군가 예수 앞에 섰다. 눈빛은 의심에 차 있었고, 말투는 다분히 공격적이었다.
“왜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합니까?”
그 말은 묻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것이었다. 이미 결론이 난 채로. 안식일의 고요한 공기는 그 한 문장으로 깨졌다. 바람이 멈춘 듯했고, 밀 이삭도 더는 흔들리지 않는 듯했다. 예수를 따르던 이들 중 몇은 손에 남은 낟알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것이 죄라도 된다는 듯이. 누군가는 손을 허리춤에 감췄고, 누군가는 말없이 예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오래 머물렀다. 그 말—“왜?”라는 그 짧은 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 물음이 아니라, 그 판단이 예수를 향해 어떻게 던져졌는지를.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한다. 낯선 침묵. 불편한 시선. 허기를 달래던 손이 멈추고, 그늘이 드리운 얼굴들. 제자들은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았고, 판단은 이미 내려졌으니. 대신 예수가 말했다. 다윗을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집에서 먹은 빵을 꺼냈다. 사제들만 먹을 수 있었던 그 빵. 하지만 다윗은 굶주린 일행과 함께 그것을 먹었다. 누군가는 율법을 어겼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생명을 지켰다고 말했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안식일은 율법을 위한 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날이라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고.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 한 마디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큰 울림을 남겼다. ‘주인’이라는 단어가. 누가 주인이냐는 건, 누가 이 날의 의미를 온전히 알고 있느냐는 질문과 같았으니까. 예수는 자신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안다고 했다. 누군가는 교만하다고 여겼고, 누군가는 의아해했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지켜왔던 법의 울타리가 한 사람의 말 앞에서 흔들리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이 흘렀다. 또 다른 안식일, 또 다른 회당. 마을은 조용했고, 회당 안은 더 고요했다.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말소리, 두루마리 펼치는 바스락 거림, 바닥에 스치는 옷자락 소리만이 가끔씩 들렸다. 예수는 앞에 서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말은 크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그의 눈치를 더 보고 있었다.
회당의 벽 쪽, 기둥 옆 그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오른손이 말라 있었다. 처음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는 늘 그러듯, 손을 외투 속 깊숙이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거의 펴지지 않았고, 팔꿈치부터 손끝까지는 무언가 말라붙은 나뭇가지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눈을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회당 구석에서부터 작은 소리들이 번졌다.
“저 사람, 저기 또 왔네.”
“안식일마다 뭔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지 않나?”
“이번에도 병자를 고칠 셈인가 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필 오늘이 안식일인데.”
눈빛들이 예수를 따라 움직였다. 그들이 주목하는 건, 그의 손짓 하나, 시선 하나였다. 어떤 이는 두 팔을 가슴 앞에 꼬고선 고개를 갸웃했고, 어떤 이는 고의로 더 가까이 다가와 발언을 들으려 했다. 그러나 누구도 직접 말을 걸진 않았다. 대신 모두가 기다렸다. 예수가 먼저 움직이기를.
예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없이 그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한순간, 주변의 모든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놀람과 두려움, 당혹감이 얼굴을 지나갔다. 회당 중앙—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서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자리로 나가라는 말.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예수의 눈을 다시 마주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은 조심스러웠고, 눈빛은 바닥만을 향했다. 오른팔은 여전히 외투 안에 있었고, 어깨가 기울어진 듯했다. 사람들이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떤 이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또 어떤 이는 시비를 가릴 재판장처럼 팔짱을 꼈다.
그는 회당 한가운데 섰다. 침묵이 길어졌다. 말라버린 오른손은 여전히 가슴께에 묻혀 있었다. 나는 상상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섰는지. 무수한 시선과 속삭임 사이에서, 예수와 자신 사이에 어떤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나섰는지를.
그리고 그 순간, 예수가 입을 열었다. 단호했지만 다정한 목소리였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과 나쁜 일을 하는 것, 사람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쪽이 옳은가?”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멈췄다. 갑자기 돌처럼 무거워진 공기.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였던 몇몇조차 침묵했다. 질문은 모두를 향한 것이었고, 그 누구도 감히 '악한 일'을 옹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누구도 ‘예수의 편’이라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예수는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 시선은 회당 안을 천천히 휘돌고 나서, 마침내 가운데 서 있는 남자에게로 돌아왔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예수의 시선을 떠올린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똑바로, 조용히.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의 평화는 이미 금이 가 있었다. 법을 지키느라, 사람을 잊고 있는 그들. 예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손 마른 사람을 바라봤다.
“손을 펴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움츠러들었던 손이 펴졌다.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예수는 누구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날 해야 할 일을 했다. 안식일에 해야 할 선한 일. 그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 손을 낫게 하는 것으로, 이 날의 의미를 보여줬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찬물이 끼얹어진 듯했다.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다. 방금 일어난 일이 사람 하나를 낫게 했다는 사실보다, 그 일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벌어졌는지가 더 중요해져 버린 것이다. 특히 바리사이들과 서기관들, 그들은 노골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저건 명백한 어김이야.”
“안식일을, 회당 안에서, 대놓고!”
“우릴 조롱하려는 건가?”
그들은 한쪽 구석으로 모여들었다. 예수와 거리를 두고, 그러나 시선을 놓지 않은 채. 속삭임은 점점 거칠어졌고, 눈빛은 날이 서 있었다. 손가락 끝이 떨릴 만큼 분노한 이도 있었고, 예수의 얼굴을 노려보는 시선을 숨기지 않는 이도 있었다.
그들에겐 회당은 율법의 질서를 지키는 울타리였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어떤 말이 허락되는지, 누구의 손이 높아져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정해왔던 사람들. 그런데 지금, 누군가 그 울타리 한가운데서 그들 없이 사람을 고쳤다. 아무 말도 묻지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예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 안에서는 이미 선이 그어졌다.
“이 사람은 그냥 위험한 자가 아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말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처럼 들렸지만, 그것은 결의였다. 회당 안의 고요는 이미 깨졌고, 그들의 마음속엔 어떤 결론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따르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어떤 이들은 불편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미워하던 이들조차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예수는 그들을 흔들었다. 안식일의 평화를 흔들었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확신마저도 흔들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그 흔들림 안에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누군가는 외면했고, 누군가는 멈춰 섰고, 누군가는 조용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예수는 자주 혼자 있었다. 아니, 혼자 있으려 했다. 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는 큰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세상은 그를 향해 등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는 이 일을 이어갈 이들을 찾아야 했다. 함께 길을 걷고, 언젠가는 홀로 남겨질 사람들. 그들이 필요했다.
밤이 깊고, 별빛이 산허리에 내려앉을 무렵, 그는 기도를 멈추었다. 새벽이었다. 아직 이슬이 남아있을 시간, 예수는 사람들을 불렀다.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중 열둘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사도’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름은 시몬(그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안드레,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돌로매, 마태오,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시몬(그는 ‘혁명당원’이었다), 유다, 그리고 다른 유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다시 천천히 되짚어보게 된다. 사람의 손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어디까지일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저 들은 것을 정리했을 뿐인데,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안식일의 밀밭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걸었다. 배고팠던 이들이 이삭을 비벼먹은 그 작은 순간조차도 문제시되던 날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밀알보다 사람을 보셨고, 율법보다 허기진 삶을 살폈다. 그리고 그분은 그날의 침묵 속에서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을 위한다”는 말을, 조용히 살아냈다.
회당에서 병든 이의 손을 펴게 하신 일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일부러 그 사람을 회당의 중심으로 부르셨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없이 서 있는 그를 통해 예수는 물으셨다.
“착한 일이 옳은가, 악한 일이 옳은가.”
그 물음 앞에서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멈추지 않으셨고, 한 사람의 굳어 있던 손을 펴게 하셨다. 그 손 하나가 펴지는 순간, 나 또한 알 수 없는 울림을 느꼈다. 말보다, 논쟁보다, 더 강한 어떤 진실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예수는 조용히 산에 올라가 기도했다. 밤이 새도록 홀로. 어떤 결정을 앞두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새벽, 열두 명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그 이름들 앞에서 나는 멈췄다.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출신과 배경을 떠올리며, 도무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생각했다. 정리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그들은 정리된 이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따랐다. 그게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느 하나도 당연한 일은 없었다. 율법을 피해 간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설득한 것도 아니었다. 예수는 율법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히셨고, 오래 굳어 있었던 손을 펴게 하셨으며,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걷게 했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록하려 했다. 그러나 그 기록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알 수 없다. 이 글이 그가 한 일을 다 담고 있는지. 다만 분명한 건, 그 모든 순간마다 내가 놀랐다는 사실이다.
율법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놓는 그분의 시선에.
말이 아니라 손으로 보여주는 선한 행동에.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그 부르심에.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머뭇거리지 않은 사람들에.
믿음은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그 시작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6:1-16"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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