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익숙한 기준 안에 머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만난 첫 번째 사람은, 말보다 손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던 이였다. 그의 손등은 울퉁불퉁했고, 피부는 마치 오래된 땅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오래된 세관 자리.
“거기요. 거기서 다 시작됐지.”
그는 말을 아꼈지만, 눈빛은 정확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의 이름은 레위였다고 했다. 세관원. 로마의 권한으로, 유다인의 동전을 받아내던 사람. 사람들에게 미움받았고, 그 스스로도 그런 시선을 무시하며 살아갔던 사람.
“그 사람... 그냥 조용했어요. 웬만하면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자리에 딱 붙어 앉아서 하루 종일 계산하고 도장 찍고… 사람 취급을 못 받아도, 아무 말도 안 했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세관 터를 한참 바라봤다. 아마도 그 자리에선, 떠나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더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어떤 사람이 나타나 단 한마디로 바꾸었다고 한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 말에, 레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긴 침묵이 지나가듯 마음이 멈췄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오랜 시간 붙들고 있던 삶을, 단 한마디에 내려놓는 일. 나 같으면 그 자리에 앉아 ‘왜’라고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군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라고. 하지만 레위는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 말이에요. 이상하게도... 무언가에 오래 지쳐 있었던 것 같았어요.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요. 누군가 나를 부를지, 아니면 끝내 부르지 않을지. 그 경계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 있잖아요.”
그 말을 전한 이는, 레위의 동료였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는 잔치에도 있었고, 예수와 한 자리에 앉았던 이였다. 그날, 레위는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그가 살던 집, 늘 계산기와 문서와 동전들이 굴러다니던 그 공간에, 그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늘 비껴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린요... 그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초대를 받은 적도 별로 없었고, 누군가의 집에서 편히 웃어본 기억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따뜻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 따뜻함은 음식 때문이 아니었다.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 말없이 건네는 눈빛, 말보다는 분위기로 전해지던 안도감. 그 자리에 예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예수를 따르던 이들이 처음으로 세리들과 외인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는 모습을. 그들 역시 처음엔 불편했을 것이다. 피하려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앉았다. 함께 식사했다. 묵묵히, 혹은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멀리서 지켜본 이들이 있었다. 바리사이 사람들과 율법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따지듯 물었다고 했다.
“왜 저런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가?”
나는 이 질문이 그저 예의나 규율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함께 먹는다는 건, 단지 밥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가 된다는 의미였고, 너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었다. 예수는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 말을 들은 이는 많았지만, 그 의미를 끝까지 따라간 이는 많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물었고, 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나왔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그 말은 단식이라는 행위의 유무보다도, 그들의 태도와 식탁의 대상에 대한 의문이었다. 바리사이 사람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했지만, 예수의 무리는 계속 먹고 마셨다. 그런데 그 ‘먹고 마심’은 잔치의 기쁨이라기보다, 무언가를 회복하는 행위처럼 보였다고도 했다. 예수는 다시 비유로 답했다고 한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신랑이 떠나는 날이 오면, 그때는 단식할 것이다.”
그 말은 예수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것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요...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했어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는 느낌이랄까요.”
그 다음에 이어진 비유는 낯익은 말들이었다. 새 옷에서 조각을 떼어 낡은 옷을 기우는 일.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일. 예수는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새 것은 새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는 낡은 질서 속에 새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선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짧고도 오래 남은 한마디.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묵은 것이 낫다고 말한다.”
그 말에 대해선 어떤 이도 단정짓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이상하게도 가슴에 오래 남았다고 했다. 내가 만난 이들 대부분은 그 말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묵은 것의 향, 익숙함, 안정감. 그리고 그 안에 스며 있는 변화의 거부... 나는 그 말을 기록하지 않고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지금의 내가 어떤 맛에 길들여져 있는지를,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 그날의 이야기는, 단지 잔치 하나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었고, 낯선 식탁이 새로운 시대를 미리 보여준 풍경이었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불편해했고, 누군가는 환대라 여겼다. 그러나 모두가 기억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식탁 끝자락에 혼자 앉아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끝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묵은 포도주가 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새 포도주를 마시기엔 제 안의 부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았거든요.”
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듯 조용히 옮겨 적었다. 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그 잔치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의 눈빛... 불편했지만 떠나지 않았던 제자들의 침묵... 의문을 던졌지만 대답 대신 생각에 잠긴 이들의 표정...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끝자락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의 고백.
‘새 포도주를 마시기엔 제 안의 부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그 말은 떠나지 않고 내 안에서 천천히 울렸다. 나는 기록자다. 증언을 모으고, 이야기를 짜 맞추고,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익숙한 언어, 낡은 습관, 안전하다고 믿었던 기준들...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왔는지를, 나는 그 잔치의 이야기 속에서 마주했다. ‘묵은 것이 더 낫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예수가 앉으셨던 그 식탁은 단지 밥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 식탁은 사람들의 틀을 흔들었고, 마음을 드러내게 했고, 말없이 삶을 바꾸는 시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식탁을 바라보는 사람으로만 머물 수 없었다. 기록하는 일이 끝났을 때, 나는 내가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물었다. 그가 새 포도주를 부으신다면, 나는 그걸 담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는 다시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단지 그의 이야기를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더 깊이 듣기 위해서.
"나는 다시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그날 그 식탁에서 시작된 변화가,
지금 이 조용한 기록 속에서도 조금씩 번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5:27-39"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누가복음묵상 #레위의부르심 #예수와세리 #식탁의은혜 #묵은포도주 #새포도주 #새부대의용기 #복음의비유 #잊히지않는말 #조용한변화 #신앙기록자 #예수의말씀 #누가의시선 #예수의초대 #말없는고백 #삶의전환점 #비신자를위한복음 #루가복음묵상 #복음의은유 #예수의식탁공동체 #묵상의기록 #마음의식탁 #말보다눈빛 #소외된자들과함께 #예수의시선 #함께앉은식탁 #경계의사람들 #기록자의사명 #복음의시간 #브런치묵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