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는 고백
들판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나는 종종 보아왔다. 해가 기울 무렵, 땀에 젖은 어깨와 흙 묻은 손, 그들의 걸음은 조용했지만 묵직했고, 하루를 마친 사람의 침묵은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해주곤 했다.
그날 나는, 예수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던 길목에서 전했다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그 이야기는 짧았지만, 듣는 이들 모두에게 오래 남았다고 했다. 예수는 먼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남을 죄짓게 만드는 자는 참으로 불행하다. 이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
이 말을 전해준 이는, 그 장면에 함께 있었던 어느 노인이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분은 '작은 자'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믿음이 약한 이들, 처음 걸음을 시작한 이들을 말하셨지요.”
그는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떨구었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념과 말이, 누군가의 믿음을 꺾고 마음을 닫게 만든 일이... 예수는 그러한 일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를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다음 말씀은 이렇게 이어졌다고 들었다.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너에게 죄를 짓고, 그때마다 돌아와 잘못했다고 말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여러 사람이 조금씩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익숙하면서도, 실제로 지켜내긴 어려운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회개하지 않는 이도 용서하라 하신 적도 있지 않소? 그런데 왜 여기선 회개를 조건으로 두셨을까?”
누군가는 그렇게 물었고,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건 공동체 안에서의 일이었소. 이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 이야기니까.”
어떤 해설도 단정되진 않았지만, 모두가 그 말씀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었다.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다시 돌아온 자를 받아주는 것. 그 둘은 함께 가야 하는 일이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앞서 들은 말씀들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를 반복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마음의 넉넉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기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그 대답은 조금 뜻밖이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요청에, 예수는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생명력을 말하신 것이다. 당시 이 말씀을 들은 한 여인이 이렇게 회상했다.
“그분은 ‘작은 믿음’이라도 살아 있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건 크지 않아도, 방향을 바꾸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무거운 것들도 옮기게 만들 수 있다고요.”
그 겨자씨의 비유는, 그가 말한 실천들, 용서와 인내를 가능하게 하는 속의 힘을 설명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말씀은, 종에 대한 이야기였다.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내 저녁을 준비하여라. 시중을 들고 나서 네가 먹고 마셔라’ 할 것이다.”
이 비유는, 앞서 말한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결론처럼 들렸다고 한다. 예수는 종이 하루 종일 수고했다 해도, 그가 한 일이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단지,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자로서 마땅한 일을 한 것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종의 삶을 아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종은 주인이 시킨 일을 다 해도, 고맙다는 말 하나 못 듣는 게 당연했소. 밥을 먼저 먹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예수는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고 했다. 그 말씀은 누구보다 예수를 따르던 이들에게 들려준 말씀이었다.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용서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모든 일이 높은 수준의 도달이 아니라, 제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
예수는 이렇게 마무리하셨다고 한다.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이렇게 말하여라.‘우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그 문장은, 어떤 이들에겐 해방이었고, 어떤 이들에겐 질문이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 말은, 내가 누군지를 잊지 않게 해 줍디다.”
나는 그날 들은 이 모든 이야기를 천천히 기록했다. 하나하나가 짧지만,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눈빛을 바꾸었다는 말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예수가 어느 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지역을 지나가셨다고 들었다. 그 경계 지대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이 아니었고, 두 민족 사이의 긴장감이 오래 머문 땅이었다. 예수는 그곳에서 한 마을에 이르렀고, 그 마을 가까이에서 나병환자 열 명을 마주하셨다고 한다.
그들은 예수께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었다. 그 이유는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을 안에서 살 수 없었고, 정상적인 접촉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 나아가지 못한 채, 멀리서 외쳤다고 한다.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선생님’이라 부른 것은, 그가 가진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침은 단순한 구호 요청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이해받고 싶었고, 도움을 간청한 것이었다. 예수는 그들을 보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이때, 예수는 그들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그렇게 명하셨다. 치유가 먼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말씀을 들은 순간 그들의 몸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움직였다. 예수의 지시에 따라 사제들에게로 향한 것이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서 나음을 입은 사람은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확인을 받아야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 규례는 레위기 13장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이 율법의 절차에 따라 그들을 이끌었으며, 그들은 명령을 따라 사제에게로 갔다.
그 길을 가는 도중에 그들의 몸은 깨끗해졌다고 한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다시 예수께 돌아왔다. 그는 큰 소리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물었을 때, 전해주는 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명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뿐이란 말이냐?”
예수는 열 사람 중 한 사람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셨고, 그 돌아온 사람이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
이 말은 예수의 이전 가르침에서도 반복되던 주제와 연결된다. 이스라엘의 내부에서는 오히려 하느님의 일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그 외부에서 하느님의 역사에 응답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그는 다른 아홉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병에서 깨끗해졌지만, 오직 이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단순한 병의 치유를 넘어선 다른 말이 주어졌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이 말은, 예수가 그 사람의 반응을 통해 구원의 의미를 확인하신 것으로 해석되었다. 다른 아홉 명은 분명 치유되었고, 자유를 얻었으며,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예수께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이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이었다.
그가 예수께 돌아온 것은 단순한 예의나 감사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받은 치유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증언들이 있다.
예수의 여정에는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았지만, 그 도움에 응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랐다. 예수께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은 열 명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이 장면을 전해준 이들은 그 한 사람의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용히 기록했다. 예수의 길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 중, 이 사마리아 사람의 걸음이 남긴 흔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길 위에선 말보다 태도가 더 오래 남는다. 예수의 여정을 따라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것을 여러 번 확인하게 되었다. 말이 많았던 날보다, 조용한 고백 하나가 더 깊게 기록되었고, 누군가의 설명보다, 침묵 속에서 떨구어진 눈빛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날의 말씀들은 하나같이 분명했다.
실족하게 하지 말라.
회개한 이를 받아주라.
작은 믿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을 했든지 자랑하지 말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살아가라.
말은 단순했지만, 안에 담긴 무게는 누구에게나 같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 무게를 책임으로 받아들였고, 어떤 이는 부담으로 느꼈고, 어떤 이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멈춰 섰다.
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느꼈다. 예수가 말씀하신 ‘믿음’은, 어떤 기준을 넘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향이었다. 남을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누군가의 잘못을 반복해서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고, 받은 것을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용기. 그 모든 방향들이 모여 하나의 자리를 만든다.
그 자리는 ‘믿음’이라 불릴 수 있었다.
믿음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깊었다.
그것은 뽕나무를 옮기는 힘이 아니라,
남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말 한마디를 아끼는 사람의 조용한 선택이었다.
종의 비유는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을 높이지 않는 태도,
누구보다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자리.
"우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그 고백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인식이었다.
나에게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그리고 예수는, 말보다는 그 자리에서 보여주셨다. 길 위에서 조심스럽게 걸으셨고, 돌아오는 사람을 향해 멈추셨고, 자기 몫의 십자가를 앞두고도 침묵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따라 이야기들을 모았다. 믿음은 소리보다 방향이었다. 나를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내,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남긴다.
누가.
믿음이 작아도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17:1-19"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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