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광 May 10. 2020

[배유기] 1화_ 안녕, 그리고 안녕

- 초보기자의 배구판 3년 유랑기

도드람 2019~2020 V-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조기종료됐다. 종료되기 전 무관중으로 약 2주 정도 경기를 치른 바 있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를 당시 현장 모습.


'일신상의 이유로 3월 31일 퇴사를 결정합니다.'


지난 3월 31일. 만으로 3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4월부터는 기자 명함을 내려두고 ‘백수’ 이름표를 가슴팍에 달았다. 백수가 되자마자 했던 건 또다시 ‘기록’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쉼 없이 썼으면서도, 백수가 된 첫 날부터 노트북을 켜고 글을 적었다. 천성을 속일 순 없나보다.


2주 정도 흐르고 나서 다시 그 날 썼던 글을 돌아봤다. 그땐 담담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읽어보니 그렇지 않다. 3년 내내 풀리지 않았던 것들, 그리고 그것을 향한 분노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조용히 혼자 갖고 있길 잘한 것 같다.


‘시간’은 가장 위대한 진통제다. 느리지만 효과 하난 확실하다. 이제는 부정적 생각보단 긍정적인 에너지가 더 많이 남아 있다. 덕분에 보다 차분하게 지난 3년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도드람 2019~2020 V-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조기종료됐다. 종료되기 전 무관중으로 약 2주 정도 경기를 치른 바 있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를 당시 현장 모습.


생각해보면 정말 숨 가쁜 20대 후반을 보냈다. 멋모른 채 도전했던 기자 업무는 다행히도 적성에 잘 맞았다. 덕분에 즐겁게 일했다. ‘출근길에 웃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자부심만으론 안 되는 게 사회였고 세상이었다. 때론 억지로 싫은 이야기를 내가 쓴 것처럼 내야 했다. 누군가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줄 때도 있었다. 열심히 싸워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끊일 줄 모르던 ‘의욕’이라는 불꽃에 찬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자라는 타이틀이 가진 무게에 대해 느낀 건 그 때쯤이었다. 바쁜 나날에도 지칠 줄 모르던 내 몸은 식어가는 가슴과 함께 굳어갔다. 


지난 1월 열렸던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아시아예선전'이 열렸던 태국 나콘라차시마 코랏 찻차이 홀 모습.


뒤돌아본 3년엔 정말 많은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있다. 이제부터는 복잡한 그 기억을 조금씩 돌아보며 기록하려 한다. 지난 3년 동안과 마찬가지로 키보드를 두드려볼 테다. 다만 기자 때는 객관적인 사실을 적었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기억에 의존해 꺼낸다. 다분히 주관적이다. 이전에 하지 않던 것을 하려니 설렘이 가슴 한 곳에서 살살 피어오른다. 


열심히 살았던 지난 3년에겐 뜨거운 안녕을, 그리고 다가오는 내 새 인생과 새롭게 적힐 추억에겐 반가운 안녕을 전한다.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지난 1월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아시아예선전에서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


이 기록에 가장 큰 이유 하나를 대자면 ‘잊고 싶지 않아서’다. 내 경험이 대단히 특별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다. ‘모든 경험에는 배울 점이 있다’라는 게 평소 신념이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분명 배울 것이 있다. 그리고 이는 다음을 살아가는 데에 큰 자양분이 된다. 실제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군대에서 약 2년 동안 살면서 손으로 쓴  다이어리, 일기장은 지금도 내게 많은 힘이 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년 동안 배구잡지 <더스파이크>에서 일했다. 한국에서 유일한 배구전문 매거진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공유’다. 기자는 주로 기사를 통해 팬들과 소통한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직접 영상 매체에 나서 독자들과 소통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 기자가 기사를 쓰고 2) 이에 대해 팬들이 반응을 보이는 일방적인 소통이 주류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늘 이것에 불만이 컸다. 보다 팬들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라고 부르는 핑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비록 지난 일을 돌아보며 쓰는 글이지만 혹여나 그 때를 기억할 분들에겐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한국 배구판을 부지런히 움직인 것 하나만큼은 자부하는 기자의 일상, 생각이 궁금한 독자들에겐 앞으로 있을 이 글이 소소한 즐길 거리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격동하는 미디어 시장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필드에서 뛰며 글을 쓰는 선후배 기자들께 존경을 표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