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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May 12. 2020

[배유기] 2화_ 생애 첫 기사는 '방신봉 은퇴'

- 초보기자의 배구판 3년 유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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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기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 특별한 것 하나 없었다. 평소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를 두루두루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였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뒀던 때다. 나이로는 스물일곱. 정신 차리고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나이였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똑같기 싫었던 나는 조금 달랐다. 평범한 어학점수 준비, 천편일률적인 스펙 쌓기는 괜히 싫었다.


그런 것보다는 돈 버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 전역 후부터 하던 국어 입시강사 일을 3년째 하던 중이었다. 혼자서 열심히 취업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기보단, 사회경험을 통해 성장하자는 취지도 있었다. 국어강사 일이 나름 재밌기도 해서 이쪽 길을 내 직업으로 택할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배구 취재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지원했다. 딱 하루 남은 공고였다.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도 없었지만 ‘일단 부딪히자’라는 생각이었다. 도전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국어강사 직업에 회의를 느낀 것도 이유였다. 강사는 전적으로 아이들 성적에 따라 내 평판이 갈린다. 내가 아무리 열정을 갖고 수업하고, 숙제를 내주고, 공부 방법을 알려줘도 아이들이 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내가 쏟은 노력 대비 결과물이 뚜렷하지 않았다. 어린 친구들의 성장을 바라본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천방지축 아이들을 옳게 이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면 기자는 본인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기사를 작성한다. 강사와 비교해 결과물이 확실한 직업이었다. 물론 내가 좀 더 실력있는 강사였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자는 내가 취재한 만큼, 글을 쓴 만큼 이름이 나가는 것이니 만족스럽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무작정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내려갔다.


툭툭 써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만의 특색이 담긴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준비했던 게 ‘스포츠 이력서’였다. 지금까지 어떤 스포츠를 보고 즐겼는지 써내려갔다. 배구는 물론이고 축구, 야구, 농구 한국 4대 프로 스포츠. 그 뿐만 아니라 테니스, 골프, 이종격투기도 썼다. 사실 큰 내용이 있진 않았지만, 써놓고 나서 스스로 만족했다.


돌이켜보면 합격 비결은 ‘배짱’이었다. 면접 자리에서 했던 대답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좋아하는 책 문구가 있냐는 말에 ‘막상 말하려니 생각이 잘 안 난다’라고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뭐든 잘 아는 것처럼 하지 않고 모르는 걸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했다. 후에 회사에서 내준 최종과제에서도 당돌함을 유지했다. 1년 전 잡지를 살펴보고 비판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칭찬이 1이었고 비판이 9였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먹혀들었다. 당시 나를 택했던 편집국장께서는 후에 내게 ‘멋모르는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단 아무것도 모르면서 달려드는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것이 훨씬 잘 될 거라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렇게 ‘운 좋은’ 배구기자 생활이 시작됐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첫 기사. 아직도 가끔씩 들여다본다. 네이버 스포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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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이 결정되고 어리둥절할 때 내려진 첫 미션은 ‘황금방패’ 방신봉의 은퇴 기사였다.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기사는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내게 갑작스레 큰 건이 내려왔다. 편집국장께서 방신봉에게 은퇴 사실을 듣고 내게 연결해줬다. 그 당시 배구를 제대로 알진 못했지만, 방신봉이 대단한 선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40대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선수로 덕망이 높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들어 방신봉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통화로 선수의 은퇴가 팬들에게 알려진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가시질 않았다. ‘이런 중요한 소식을 왜 신입기자인 내게 맡기는 걸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사실 그 때 상대방 이야기나 음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이 떨었다. 글이 제대로 나왔을 리 만무했다. 일반적이었다면 1시간 이내로 끝났을 일이었지만, 혼자 오만가지 고민을 하며 기사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2시간이 족히 지나서야 글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국장께선 아무런 말 하지 않으셨다. 옆에서 묵묵히 막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사를 받아들고는 나를 옆에 앉혔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레 피드백을 해줬다. ‘이 부분은 좋다, 이건 아니다’라고 하나하나 이야기해줬다. 불필요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내 기사는 금세 가벼워졌다. 훨씬 읽기 좋은 것이 그제야 평소 인터넷에서 자주 읽던 기사 같았다.


황금방패 방신봉 전격 은퇴 선언. 화려한 내용의 이 기사가 내 데뷔작이었다. 내가 스스로 해낸 건 정말 일부분에 불과했지만, 내 이름으로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가니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첫 단추를 잘 꿰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기자 생활에도 수월하게 적응해 나갔다.


‘왜 내게 그 기사를 맡겼을까’하는 궁금증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직접 물어보지 않아 그 뜻을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새로 온 막내가 좀 더 자신감을 갖길 바라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볼 뿐이다. 그리고 그 배려는 기자로서 첫 출발에 힘을 더해줬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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